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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7 (화)

“입시는 국민과 약속...의대 정원 바뀌면 학부모 줄소송 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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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 증원 백지화 주장에… “195개 대학, 수시 접수 이미 시작

“재외국민 전형 접수는 7월에 끝나 “증원 취소 물리적으로 불가능”

조선일보

2025학년도 대학입학시험전형 수시모집 원서접수를 하루 앞둔 8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학원 건물에 의대 입시 홍보문이 붙어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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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이 ‘여·야·의·정 협의체’를 만들어 2026학년도 의대 정원에 대해 협상하자고 의료계에 제안했지만, 의료계는 여전히 “2025학년도 증원부터 백지화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당장 올해 고3들이 치르는 2025학년도 입시는 9일부터 수시 모집 원서 접수를 시작했다. 선발 인원은 적지만 재외국민·외국인 특별전형의 원서 접수는 이미 지난 7월 초 끝났다. 이 때문에 교육계에선 “지금 의대 증원을 백지화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그런 주장을 하는 것도 전국 50만 수험생들을 큰 혼란에 빠뜨리는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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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철원


정정순 전국대학교입학관련처장협의회 회장(영남대 입학처장)은 “9일 원서 접수를 시작으로 입시 프로세스가 이미 시작됐다”면서 “의대를 포함해 모든 수험생들이 지금도 원서를 내고 있고, 대학도 매일 원서 접수 현황을 파악하고 있는데 이제 와서 모집 정원을 변경하는 건 불가능할 뿐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불가역적”이라고 말했다. 입학관련처장협의회는 4년제 대학 186곳 입학처장들의 모임이다. 정 회장은 “응급실 문제가 상당히 심각하지만, 그 해결책으로 입시를 건드리는 것은 부작용이 너무나 크다”면서 “지금 의대 모집 정원을 바꾸는 것은 전 국민의 ‘약속’으로 진행하는 입시의 적법성과 신뢰성을 크게 훼손하는 일”이라고 했다.

법령상 대학의 모집 정원이나 수시 모집 일정을 바꾸는 것은 4년제 대학 총장들의 모임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소관이다. 양찬우 대교협 입학지원실장은 “대학이 입학 정원을 조정하려면 통상 그해 4월 말까지 대교협에 신청해 심의를 받고 5월 말엔 바뀐 모집 요강을 홈페이지에 올린다”면서 “수험생들은 그걸 보고 어떤 학과에 지원할지 전략을 짜는데, 이제 와 모집 인원 숫자가 바뀌면 경쟁률 자체가 달라져 수험생들이 큰 피해를 보게 된다”고 했다. 전국 의대 정원은 2024학년도 3113명에서 2025학년도 4610명으로 1497명 늘어났다. 의대 정원이 다시 줄어들면 약대, 수의대 등 다른 의학 계열 학과와 상위권 대학 다른 학과 경쟁률이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고교 현장에서도 수험생 혼란을 우려한다. 강동완 진학지도장학사위원회 위원장(부산시교육청 장학사)은 “지금 의대 증원이 백지화되면 학생들은 정말 난리가 난다”면서 “작년 같았으면 의대에 못 갈 텐데 올해는 정원이 늘어서 갈 수 있는 애들이 많다. 그런 학생들이 증원이 백지화되면 가만히 있겠느냐”고 했다. 그는 “의대 입시는 ‘전국 1등부터 3000등까지 갈 수 있다’는 식으로 굉장히 단순하다”면서 “본인 성적에 따라 뻔히 입학 가능성을 아는데, 4600명 뽑는다고 했다가 갑자기 3000명만 뽑는다고 하면 어떤 학생이 받아들이겠느냐”고 말했다. 강 위원장은 “진학 지도 업무를 20년 넘게 했지만, 원서 접수한 다음 모집 정원이 바뀐다는 건 들어본 적도 없다”면서 “올해처럼 입시 예측 가능성이 떨어진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강 위원장은 고교 진학 담당 교사로 15년 일했고, 교육청 진학 담당 장학사가 된 지 6년 됐다. 경북 경구고(구미) 3학년 담임 박준형 교사는 “발표된 모집 요강대로 입시 전략 짜고 진학 상담도 다 했는데, 이제 와 뒤집는 건 계약서 다 써 놓고 바꾸겠다는 것”이라며 “증원 백지화는 학생, 학부모뿐 아니라 교사도 못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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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철원


교육계에선 지금 정부가 의대 증원을 취소하면 수험생들이 정부를 상대로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과 행정 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보고 있다. 법조계는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구연희 교육부 대변인은 9일 브리핑에서 “지금 의대 정원을 원점으로 되돌리면 수험생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한다”면서 “수험생들이 제기한 집행정지 가처분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질 것이고, 본안 심사에서도 정부가 절대 유리하지 않다. 저희가 이길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가처분이 인용되면 수험생은 일단 의대가 증원된 상태로 수시 모집 일정을 밟겠지만, 만약 추후 본안(本案) 소송에서 학생들이 패소하면 가처분 효력이 사라져 교육 현장엔 대혼란이 벌어질 수 있다.

의료계 일각에선 1990년대 정부가 한의대 모집 정원을 감축한 것을 예로 들면서 이번 의대 증원도 백지화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당시 모집 정원을 줄인 것은 원서 접수가 시작되기 전으로, 이미 원서 접수가 시작된 올해와는 상황이 다르다고 교육부는 밝혔다. 의료계는 포항 지진으로 수능 시험이 일주일 연기된 2018학년도 입시도 증원 백지화 근거로 들고 있다. 이에 대해서도 당시엔 입시 일정이 일주일 미뤄진 데 그쳤지만, 의대 정원 변경은 훨씬 시일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실현 불가능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의료계는 이미 원서 접수를 시작한 수시 모집은 예정대로 진행하되, 12월 정시 모집에서 아예 의대 신입생을 뽑지 말자는 주장도 한다. 올해 의대 정원 4610명은 수시에서 3118명, 정시에서 1492명을 뽑는다. 정시모집 선발 인원이 의대 증원분(1497명)과 비슷하기 때문에 정시에서 신입생을 뽑지 않으면 ‘증원 백지화’와 같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 역시 의대 총 모집 정원을 바꾸는 일이기 때문에 절차가 복잡하고 학생들 혼란이 커서 불가능하다는 것이 교육계 의견이다.

올해 입시는 특히 고3 수험생뿐 아니라 N수생(재수생 이상), 직장인들도 많이 준비하고 있다. 의대 증원으로 다시 수능을 쳐서 정시 모집으로 의대에 도전하려는 이들이 많다. 수험생들은 13일까지 수시 원서 접수를 한 다음 곧장 두 달 후 수능 시험(11월 14일) 준비에 집중해야 한다. 그런데 ‘의대 증원 백지화’ 주장이 계속되면 수험생들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8일 수험생들이 많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관련 글들이 올라왔다. 한 수험생은 “혹시나 (의대 증원을) 백지화하면 전형 자체가 날아가는데 수시 원서 1장 날리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고 썼다. 일부 대학은 올해 늘어난 의대 정원으로 ‘교과전형’이나 ‘학생부종합전형’ 등을 아예 새로 만들었다. 수험생들마다 유리한 전형이 따로 있는데, 혹시 의대 증원이 취소되면 본인이 지원한 전형이 다시 사라질까 걱정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수시 접수하고나서도 백지화될 수 있다. 나중에 혼란 생길 게 뻔하니 마음의 준비 해둬야 한다” “곧 접수 시작인데 백지화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글도 올라왔다.

[김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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