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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7 (화)

“나는 실패한 작가…내 소설로 실패한 사람들 자유로워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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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67번째 천산갑’ 출간
대만 스타작가 천쓰홍 첫 내한
성소수자 경험 진솔하게 녹여
“소설로 사회적 차별 맞설 것”


매일경제

신간 ‘67번째 천산갑’ 출간을 기념해 처음 한국을 찾은 대만의 스타 소설가 천쓰홍이 9일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작품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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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실패한 작가이고 실패에 관한 소설을 썼다. 실패한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조금 더 자유롭게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힘들면 크게 울어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대만 출신 스타 작가 천쓰홍(43)은 9일 서울 중구 광화문 인근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이달 초 국내에 출간한 신작 ‘67번째 천산갑’을 실패자에 대한 책이라고 소개했다. 이달 11일까지 열리는 서울국제작가축제 측 초청으로 처음 한국을 찾은 그는 “나는 일단 성소수자이고 문과를 졸업해서 소설을 쓰고 있으니 대기업에 취업하거나 고향에 갈 때 금의환향이라고 할 만한 사람은 아닐 것”이라며 “하지만 소설을 읽고 쓰면서 천천히 자신감을 얻어 여기까지 왔다. 해방된 것 같은 기분도 들지만 아직은 아닌 것 같다”고 밝혔다.

‘67번째 천산갑’은 작가의 역작이라 할 수 있는 ‘귀신들의 땅’ 이후 4년 만에 선보인 장편소설이다. 유년 시절에 만나 평생에 걸쳐 우정과 헌신, 상처를 주고받는 한 게이 남성과 헤테로 여성의 독특하고 아름다운 관계를 통해 고독과 치유를 이야기한다. 두 작품 모두 자유에 대한 작품이지만 ‘귀신들의 땅’이 백색 테러라는 대만의 근현대사 배경을 통해 인간의 비극성을 드러냈다면, ‘67번째 천산갑’은 좀 더 개인적인 차원에서 성소수자의 삶과 그들의 고통을 그린다. 천쓰홍은 “이번 소설을 쓸 땐 내가 개인적으로 경험했던 부분을 많이 녹였다”고 말했다.

사실 ‘실패’는 천쓰홍과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귀신들의 땅’은 출간 이듬해인 2020년 대만의 양대 문학상인 ‘금장상’ 문학도서부문상과 ‘금전상’ 연도백만대상을 수상했다. 12개 언어로 번역 출간돼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한국에서도 지난해 말 출간돼 반년 만에 1만5000부가 팔리는 등 독자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았다. 하지만 천쓰홍은 “한국 출간 때만 해도 잘 안 팔릴 것이라 생각했는데 작가 사인회에서 한국 독자들이 긴 줄을 서서 정말 놀랐다”며 “한국 사회가 가부장적이고 경직된 대만 사회와 유사한 점이 있어 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신 게 아닐까 싶다. 자기도 성소수자라며 위로가 됐다고 말해준 독자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가 자신을 실패한 인생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간 성소수자로 살면서 사회적으로 많은 부침을 겪은 탓이다. 천쓰홍은 “대만에서 특히 청소년 시기엔 정말 죽고 싶었고 여러 슬픔을 많이 겪었다. 30세 때 커밍아웃을 했는데 그때 많은 비판을 받았다”며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성소수자들이 비슷한 환경에 처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대만은 동성 결혼이 합법화 됐기 때문에 좀 더 나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대도시 외 지역에선 여전히 성소수자가 살아가기 힘든 환경”이라고 밝혔다. 독일 베를린으로 도망치듯 이주한 것도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의 냉혹한 시선 때문이었다는 설명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멸종위기종 천산갑은 이런 성소수자가 처한 상황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장치다.

천쓰홍은 앞으로도 소설을 통해 성소수자를 대변하겠다고 했다. 그는 “소설이라고 하는 건 충돌하는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힘이 있다면 소설을 통해 부딪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평소 K팝을 즐겨 듣는다는 그는 “유명한 아이돌 스타들도 굉장히 억압된 환경에서 지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도 언젠가는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며 “여자 아이돌은 언제나 외모가 예뻐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가 있는 것 같다. 30년이 흐른 뒤 나이가 들어서도 이들을 좋아해줄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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