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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7 (화)

‘한인 납치 살해’ 필리핀 경찰, 종신형 선고 후 도주…유족 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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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고(故) 지익주씨 피살 사건 상원 청문회에 나온 라파엘 둠라오. [일간 인콰이어러]


[헤럴드경제=나은정 기자] 2016년 한인 사업가 지익주(당시 53세) 씨를 납치 살해한 주범인 필리핀 전직 경찰 간부가 8년 만에 유죄가 인정돼 종신형이 선고됐지만, 당국의 체포를 피해 행방을 감춘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9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필리핀 경찰은 지난 7월 중순 주범 라파엘 둠라오에 대한 형 집행을 위해 주거지 등을 수색했으나 현재까지 행방을 찾지 못하고 있다. 둠라오는 6월 말 항소심 재판에서 종신형(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형 집행까지 2주 사이에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에 고인의 부인 최경진(57) 씨는 "실체적 진실 파악이 전혀 안 되고 있다"면서 "달아난 주범 검거 및 사건 실체 규명을 위해 한국 정부가 나서달라"고 호소했다.

둠라오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이 재임 기간 주도한 '마약과의 전쟁' 당시 경찰청 마약단속국 팀장을 지냈으며, 퇴임 후에는 변호사로 활동해왔다. 필리핀 마닐라 항소법원은 지난 6월 26일 그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에 대해 '중대한 재량권 남용'이라며 종신형(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둠라오의 하급자로 범행에 가담한 마약단속국 소속 경찰관 산타 이사벨과 국가수사청(NBI) 정보원 제리 옴랑은 1심과 같이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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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2017년 1월 마닐라 대통령궁에서 자국 경찰관들에 의해 납치·살해된 한국인 사업가 지익주(당시 53세) 씨의 부인 최경진 씨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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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민사회에서는 한국대사관 등 외교 당국이 둠라오의 도주 가능성에 대비해 선제적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필리핀 사법 체계의 경우 유죄가 선고된 피고인은 형 집행 전까지 불구속 상태가 유지되는데, 그의 이력을 고려하면 항소심에서 유죄가 인정될 경우 그가 인맥 등을 동원해 도주할 공산이 크다는 우려가 이미 퍼져있었기 때문이다.

최씨는 "전직 경찰 간부이자 변호사인 주범이 도주할 수 있다는 건 누구나 예상했다. 도망가게 놔둘 거면 그동안 재판해온 게 무슨 소용인가"라면서 "내 기다림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고 울분을 토했다.

현직 경찰관들이 벌인 지씨 살해 사건은 잔혹한 범행 수법 때문에 필리핀 전역을 충격에 빠뜨렸다.

지씨는 2016년 10월18일 앙헬레스시 자택에서 이사벨과 옴랑에 의해 납치된 뒤 경찰청 마약단속국 주차장으로 끌려가 살해당했다. 수사 결과 이들은 다음 날 화장장에서 지씨의 시신을 소각한 뒤 유해를 화장실에 유기했다.

필리핀 검찰은 수사를 통해 이듬해 둠라오 등 5명을 재판에 넘겼고, 1심 결과가 나오는 데까지 약 6년이 걸렸다. 지난해 6월 이사벨과 옴랑은 무기징역을, 둠라오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나머지 2명 중 1명은 수사에 협조해 '국가증인'으로 풀려났고, 다른 1명은 코로나19에 걸려 사망했다. 사건은 피고인들의 항소로 대법원으로 넘어갔다.

최씨는 앞으로 외교부 장관과 재외동포청장 등에게 면담을 재차 요청해 필리핀 당국의 협조, 재외동포 안전 등을 위해 정부가 적극 도와달라고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당시 필리핀 대통령은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 국가배상을 약속했다"며 "남편 사건이 한인들을 대상으로 한 사건·사고가 많은 필리핀에서 제대로 된 판례를 남기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better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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