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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7 (화)

[특파원 칼럼/임우선]‘뇌 임플란트’, 신경기술 시장 혁명 이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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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임우선 뉴욕 특파원


예전에 봉사 갔던 미국 요양원에서 한 청년을 봤다. 그는 식물인간 상태로 보였다. 눈은 초점 없이 의미 없는 허공을 향해 있었고 몸은 어느 한 곳 꼼짝하지 않았다. 영양분은 튜브로 공급됐다. 직원들은 그가 그렇게 된 지 10년이 돼 간다고 했다.

그런데 놀랐던 건 그가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봉사자들이 그를 위해 소리내 기도할 때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고 했다. 그는 ‘운 것’일까, 아니면 ‘눈에서 물이 나온 것’일까. ‘그’는 아직 ‘그 안에’ 있을까?

얼마 전 뉴욕타임스(NYT)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코넬대 등 6개 기관의 신경학자로 이뤄진 연구팀이 241명의 식물인간 등 의식의 징후가 없는 환자에게 ‘테니스를 치는 상상’ 등을 주입했더니 4명 중 1명이 건강한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뇌파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들에게 ‘의식’이 있다는 뜻이었다.

새로운 세계 문 연 뇌 신경기술


이 연구는 뇌 활동을 기록하도록 고안된 전극으로 덮인 헬멧을 통해 이뤄졌다. NYT는 “이번 연구는 미국에만 최소 10만 명으로 추정되는 식물인간 환자들에 대한 접근을 바꿀 수 있다”며 “언젠가는 사고, 루게릭병 등으로 인해 자신의 몸 안에 갇힌 사람들이 뇌 임플란트를 통해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뇌 임플란트’라는 말은 그 단어의 조합만으로도 공상과학 같지만 미국에서는 이미 현실이다. 의료진들은 루게릭병으로 전신이 마비된 환자의 뇌에 전극을 이식해 그의 ‘생각’이 만드는 뉴런의 반응과 전파를 수집하고, 이를 컴퓨터로 보낸 뒤 인공지능(AI) 기술을 통해 99% 이상 정확한 말과 음성으로 구현하고 있다.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신경기술기업 ‘뉴럴링크’ 역시 사지마비 환자의 뇌에 전극이 달린 칩을 심어 ‘생각만으로’ 마리오카트 게임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에는 정말로 힘이 있었던 것이다.

미국의 기술기업들은 이미 사람들의 ‘정신’을 데이터로 보고 상품화하고 있다. 애플은 지난해 사용자 뇌의 신호를 측정할 수 있는 차세대 에어팟 센서 시스템에 대해 특허를 출원했다. 설계도를 보면 이어폰의 귓속 삽입부에 뇌의 활동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전극 센서가 배치돼 있다. 한때 청춘 드라마에서는 음악이 흐르는 이어폰을 나눠 끼는 게 로맨스의 상징이었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이랬다가는 온갖 마음과 생각을 다 들켜버릴지도 모른다.

뇌 데이터 시대… 한국은 어디에


미국에서는 향후 2년에서 5년 안에 이 같은 신경기술이 이른바 ‘챗GPT 모먼트’를 맞을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뇌 데이터에 기반한 시장이 수백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몇 달 전 콜로라도주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개인정보보호법으로 보호해야 할 ‘민감한 데이터’에 뇌파를 의미하는 신경 데이터를 포함시켰다. 더 이상 기술 혁신의 속도에 밀려 소비자 보호를 놓치지 않겠다는 의미가 담긴 선제적 조치였다.

사람의 뇌와 정신을 이용한 다양한 혁신 기술들의 공통점은 오랜 기간 꾸준한 연구가 지속됐다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식물인간 241명에 대한 뇌파 반응 연구는 꼬박 7년이 걸렸다고 한다. 당장 눈에 띄는 성과나 시장성이 안 보이더라도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가 이어져 이제 그럴듯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혁신 기술로 인한 문제에 대응할 법과 제도 역시 빠르게 만들어지고 있다. 미국의 신경과학기업, 나아가 기술기업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부러움이다. 또 한국에서도 더 자주 보고 싶은 모습이다.

임우선 뉴욕 특파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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