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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7 (화)

“한국, 일본 ‘간토 대학살’ 모르쇠에 제대로 항의한 적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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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923년 간도대지진 당시 일본 자경단을 중심으로 군·경이 가세해 벌인 조선인 학살과 관련해 오충공 감독이 일본 도쿄 한 작업실에서 새 다큐영화 ‘이름이 새겨지지 않은 묘비’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다. 도쿄/홍석재 특파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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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간토대지진은 일본 역사이고, 당시 조선인 학살은 재일동포의 역사 아니냐’고 하는 사람이 지금도 있어요. 하지만 이건 조선인 수천명이 집단학살된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에요.”



지난 6일 도쿄 미나토구 신바시의 한 작업실에서 만난 오충공 감독(69)은 답답함을 토로했다. 오 감독은 1983년 ‘숨겨진 발톱자국: 관동(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기록영화’로 1923년 벌어졌던 간토대지진 당시 일본 자경단과 군·경에 의해 벌어진 조선인 학살을 고발했다. 이후 40년 넘게 관련 다큐멘터리를 만들며 억울한 원혼들을 위로하고, 일본 정부에 반성과 사과를 촉구해왔다.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은 1923년 9월1일 일어난 규모 7.9 이상으로 추정되는 지진이 일어난 가운데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 같은 헛소문이 퍼지며 자경단이 조선인을 학살하고, 여기에 군과 경찰이 가담한 사건이다. 일본에선 한·일 시민들이 함께하는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1970년대 초반 이후 50여년간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희생자 추모 활동이 이뤄져왔다.



이날 만난 오 감독의 말 속엔 사건 발생 101년, 본격적인 추모활동이 시작된지 반백년이 지나도록 일본 정부뿐 아니라 한국 정부도 별로 달라진 게 없다는 안타까움이 배어 있었다. 그는 “간토 대학살 이후 100년 넘게 일본 정부가 사과를 안한 건 물론이고, 우리나라 정부도 해방 이후에도 제대로 사과를 요구한 적이 없다”고 꼬집었다.



20대 청년 시절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 기록 작업을 처음 시작했는데, 어느덧 일흔 가까운 나이가 됐다. “지금도 일본에는 간토대지진 때 ‘조선인이 일본인들을 죽이려고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말을 믿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렇게 되면, 피해자였던 조선인이 누군가에게는 지금까지 가해자로 남게 되는 거예요. 이번 영화 제목이 ‘이름이 새겨지지 않은 묘비’인데, 정작 당시 희생자 6600여명은 한국, 일본 어디에도 이름이 온전히 새겨지지 않았어요.”



간토대지진 당시 ‘4대 학살 피해자’로 불리던 조선인, 중국인, 일본의 자유주의자, 무정부주의자 가운데 가장 참혹하면서도 대규모로 희생된 게 조선인이었다. 또 당시 범죄 성격을 정부가 조장 내지 방조한 국가 범죄, 자경단·청년단 등이 벌인 민중 학살, 민족간에 벌어진 민족 범죄로 구분했을 때, 조선인 학살은 이 세가지가 모두 작용한 끔찍한 일이었다.



오 감독은 1955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민족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1982년 요코하마 방송영화전문학원(현 일본영화대학)에서 졸업작품을 준비하던 즈음 간토 대지진 당시 가장 처참했던 조선인 학살 현장의 하나로 알려진 도쿄 스미다구 아라카와강 인근에서 피해자 유골 발굴이 시도된다는 뉴스를 접했다. 당시 일본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 문제가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고, 그는 이를 영화로 만들기로 했다. 결국 발굴 현장에서 유골은 나오지 않았지만 그는 그 자리에 멈추지 않았다. 발굴 시도가 있었던 이듬해 ‘숨겨진 발톱자국’을 세상에 내놨고, 이어 ‘불하된 조선인’(1986년), ‘1923 제노사이드, 93년간의 침묵’(2017년) 같은 작품으로 참혹했던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을 조명했다. 현재 그는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 관련 새 다큐 ‘이름이 새겨지지 않은 묘비’를 올해 안에 개봉하기 위해 막바지 편집 작업을 하고 있다.



오 감독은 101년이 넘도록 역사적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는 일본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일본 정부가 눈감고 있지만, 당시 조선인 학살 자체는 이미 한·일 학계와 시민단체 등의 노력으로 상당 부분 확인이 됐다”며 “지금이라도 일본 당국이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과 사과, 반성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오 감독은 한국 정부의 태도에도 실망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한국 정부가 지난해에는 ‘간토대학살 100년’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그나마 형식적으로라도 여러 행사를 치렀지만, 특히 한국 내에서 올해는 그런 분위기 조차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 제주 4·3 사건, 5·18 광주민주화항쟁, 1987년 6월 항쟁처럼 한국 근현대사에 아픈 역사가 많지만, 식민시대 처절한 아픔을 겪은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 희생자와 유족들은 방치되다시피 하고 있다.



오 감독은 “간토 대학살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일본 정부를 향해 한국 정부가 제대로 된 항의문이라도 보낸 적이 있냐”며 “적어도 간토대지진 문제에 대해서는 과거 노무현·문재인 정부 등 민주당 집권 시기에도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지금도 민주당이 국회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데 간토 대학살 관련 특별법은 왜 통과가 안되는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국회에선 2014년 이후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진상규명 등에 관한 법안이 잇따라 폐기돼왔고, 22대 국회에서는 지난 7월 ‘간토 대학살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안’이 행정안전위원회 소위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최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한일 역사문제와 관련해 한국 정부로부터 잇단 ‘양보’를 얻어낸 뒤 “미래 지향적 한·일 관계”를 거듭 언급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도 오 감독은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은 사람이 사람을 죽인 사건이다. 그것도 집단적으로 총으로, 칼로, 나무에 목을 매 다른 민족 수천명을 학살한 ‘제노사이드’”라며 “발밑에 깔려 있는 아픈 역사를 계속 밟으면서 어떻게 미래로 갈수 있냐”고 반문했다.



도쿄/홍석재 특파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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