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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7 (화)

거세진 핵전쟁 위험 소용돌이, 그 최전선에 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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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국제 환경운동 단체인 그린피스가 2022년 1월 ‘핵무기를 금지하라’는 문구의 조명을 쏘아 독일 베를린의 국회의사당 건물을 밝히고 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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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러시아·중국이 핵군비를 강화하고 핵무기 사용의 문턱은 낮아지고 있다. 지난달 20일 뉴욕타임스는 미국이 지난 3월에 ‘핵운용 지침’(Nuclear Employment Guidance)이라는 극비 전략문서를 작성했다고 보도했다. 이 문서는 고도의 보안 유지를 위해 전자문서를 생산하지 않고 제한된 부수의 종이문서만 인쇄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말께 공개판이 발표되기 전까지 외부에 개요만 설명할 수 있도록 허용된 인사도 두어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미국의 최신 핵전략이 냉전시대와 다른 점은 위협의 중심이 러시아에서 중국으로 이동했고 중국뿐 아니라 러시아 및 북한을 ‘결합된 위협세력’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협에 대한 대응은 다른 핵보유 동맹국들과의 핵능력 결합보다는 주로 미국 단독의 핵무력 증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한국이나 일본에 대한 핵무장은 결코 ‘허용’하지 않으면서 핵작전의 지원 체계로 통합하려 한다. 미국의 핵무력 증강은 양적으로 핵탄두의 수를 늘리고 질적으로 전술 및 작전 수준의 ‘사용 가능한’ 핵무기를 고도화하는 것이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에 따르면 현재 미국과 러시아는 각각 약 3700기와 4500기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다. 그중 작전배치된 전략핵탄두는 공히 1700기 정도다. 양국은 2010년 뉴스타트(New START) 군축 협상에서 2026년 2월까지 전략핵탄두 수를 공히 1550기로 줄이기로 합의했지만, 2023년 2월 러시아가 이행 중단을 선언한 상태다. 미국의 정보 판단에 따르면 중국은 현재 500여기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으며 2030년까지 1000기, 이후 1500기까지 증강할 것으로 보인다.





핵무기 사용 문턱 낮아질 우려





최근년의 핵무기 사용 위협은 러시아로부터 나왔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특별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하여 2022년 9월21일 러시아 티브이(TV) 연설에서 미국과 서방국가들을 상대로 “우리 영토가 위협받을 때 러시아는 영토와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사용할 것이다. 이는 엄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핵무기 사용도 불사하겠다는 의미다. 이에 대하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아마겟돈의 핵위험이 최고 수준에 달했다”고 우려했다. 2022년 10월 나토는 핵억제 훈련인 ‘스테드패스트 눈’(Steadfast Noon)을, 러시아는 핵전투 훈련인 ‘그롬’(Grom)을 실시했다. 이후 푸틴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핵사용 가능성을 언급하거나 암시했고,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도 거들었다. 2023년 3월에는 벨라루스에 전술핵무기 배치를 합의하고 5월부터 핵무기의 이동에 착수했으며 현재 배치가 완료된 상태로 평가된다.



중국은 소위 ‘최소억제전략’하에서 핵무기 보유량을 300기 정도 수준으로 유지하다가 최근 몇년간에 500기로 늘렸다. 미국의 정보 판단대로 2030년대에 1500기 정도를 보유하면 더 이상 ‘최소억제’라고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더욱이 기존에 대륙간탄도탄(ICBM)을 동굴 진지에서 레일을 통해 밖으로 빼내어 발사하던 방식을 사일로에서 직접 발사하는 방식으로 전환함으로써 작전반응시간을 크게 단축한다면 위협의 심각성이 커질 것이다. 중국의 비교적 ‘이성적’이라 할 수 있는 ‘선제 핵사용 포기’ 정책이 변화할 징후는 보이지 않지만 핵사용 문턱이 낮아지는 상황에서 미래를 예단하기 어렵다.



북한은 2017년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으며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뒤 다시 핵무력의 ‘완성도’ 제고에 매진해왔다. 2022년 9월 최고인민회의에서 핵정책을 법제화하여 북한판 핵 선제타격과 ‘자동타격’ 체제를 수립했다. 올해 6월 러시아와 조약을 통해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음으로써 핵무기 운반 수단의 고도화를 위한 기술 협력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약 60기의 핵탄두를 보유한 것으로 평가되지만 핵사용 문턱은 가장 낮은 ‘핵보유국’이라 할 만하다.



핵무력 증강에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미국을 따라갈 나라는 없다. 부시 행정부는 2차 대전 이후 계속 노후화되고 있던 핵전력을 본격적으로 현대화하기 시작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1조3000억달러(약 2000조원) 규모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추진해왔으며 2030년까지 평화와 국가안보를 수호한다는 명목으로 예산 규모가 2조달러로 늘어날 예정이다. 미국의 핵사용 문턱은 전술핵무기의 개발을 통해 낮아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벙커버스터’로 알려진 ‘지표 관통 핵폭탄’(NEPB)이다. 지하 목표물의 깊이에 따라 수 킬로톤에서 메가톤급까지 다양한 위력의 벙커버스터는 전술핵무기로 분류되지만 그 파괴력과 영향 범위는 전략급에 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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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전쟁 반대, NPT 준수 촉구해야





강대국 간의 핵경쟁을 핵보유국도 아닌 한국이 막을 방법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러나 핵전쟁은 인류적 문제라는 사실과 당장의 한반도 핵대결 상황의 심각성에 비추어 볼 때 뉴욕타임스 보도에 대한 정부와 주류 언론의 ‘침묵’은 불안과 절망감을 더해준다. 인류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책임 있는 중견국으로서, 윤석열 정부가 추구하는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첫째, 핵전쟁에 대한 분명한 반대 입장을 정부가 공식적으로 반복적으로 천명해야 한다. 미국 또는 다른 특정 국가를 콕 집어 반대하기가 부담스럽다면 그냥 ‘모든 핵보유국’이 핵확산금지조약(NPT) 정신과 규정에 따라 핵군축 노력을 진지하게 기울일 것을 촉구하면 된다.



둘째, 우리의 ‘실존적’ 문제인 한반도 핵위협을 제거해야 한다. 북한 핵무장의 일방적인 해제는 불가능하더라도 핵위협은 해소할 수 있다. 한반도 비핵화를 장기적 목표로 견지하면서 북한의 핵보유가 남한에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진정 불가능한 일인지 자문해보아야 한다.



셋째,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유익하지도 않은 소위 ‘독자 핵무장론’을 확실히 버리고 국가안보를 위한 외교와 과학기술 능력의 제고에 힘써야 한다.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이나 미국 핵무기의 한국 배치 문제는 제기하면 할수록 손해만 초래할 수 있다. 35년 전 세계평화의 탈냉전 시대가 열리는가 싶더니 이제 다시 핵전쟁의 위험성이 고조되고 있다. 그 최전선에 한반도가 있다. 이성의 빛이 희미하게라도 남아 있다면 그 빛을 향해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전 국방대 교수





노무현 정부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기획실 국방담당, 문재인 정부의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다. ‘군사과학기술의 이해’ 등의 저자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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