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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6 (월)

[세상사는 이야기] 진정한 평화를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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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광복절을 지내면서 가수 나훈아 씨가 "광복은 아예 없는 편이 좋았다. 타국이 우리를 지배하는 일이 애당초 없었어야 한다는 얘기"라고 한 말이 떠올랐다. 너무 공감되는 말이다. 역사에는 만약이란 없지만 우리 왕실과 신하들이 강대한 나라를 만들었다면 이렇게까지 우리나라가 역사 안에서 유린당하지 않았을 거다. 용기를 내어 소리를 내지 않으면 공공연한 비밀도 진짜 비밀로 묻혀버린다. 2차 세계대전 후 전후 처리에 유럽은 어땠을까? 특히 프랑스는 정치, 군사, 홍보, 행정 등 나치 협력자들의 엄청난 범죄를 방치하는 것은 국가에 전염하는 흉악한 종양(腫瘍)이라 하여 기록상으로만 1만명의 부역자를 처단하였다. 이들은 대부분 지식인층이었다.

광복 후 우리나라는 어땠을까? '반민족행위특별위원회'(1948~1949)는 기능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오히려 반민특위 사무실이 경찰의 공격을 받는 등 해괴한 일이 벌어졌다. 아무리 훌륭한 실무자가 없었다지만 어제까지 독립군을 고문하던 조선인 일본 경찰이 한국 경찰의 옷으로 바꿔 입었다. 이런 경우는 정치, 군대, 문화 등 다른 분야에서도 부지기수였다. 친일 청산 문제가 광복절 7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까닭이다.

라틴어 속담에 'Si vis pacem, para bellum(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이라는 말이 있다. 힘과 능력이 있어야 전쟁이 억제된다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뮌헨으로 날아간 영국의 체임벌린 총리는 히틀러와 이탈리아 무솔리니, 프랑스 총리와 합의해 '뮌헨협정'을 체결했다. 영국 총리는 체결문을 흔들며 "독일에서 명예로운 평화를 들고 돌아왔다"며 국민들의 환호를 받았다. 다시는 지긋지긋한 전쟁은 없을 것이라고 영국 국민들은 굳게 믿었다. 히틀러의 달콤한 말과 그럴듯한 조약문은 사실 모두 거짓이었다. 영국 총리는 전쟁을 무조건 피하겠다는 생각에 너무 몰입하여 오판을 했다. 1933년 권력을 장악한 히틀러는 계속 독일 영토를 넓혀나가다 갑자기 폴란드를 급습하며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뮌헨 조약문이 휴지 조각이 되는 순간이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왕과 정치가들이 잘못했는데 그 피해는 순전히 힘없는 백성들, 특히 약한 여성이나 아이들이 더 많이 짊어져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 인조 시대 서울 외곽의 홍제천에서 양반, 천민 등 많은 여성들이 몸을 씻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인조는 홍제천에서 몸을 씻으면 과거는 묻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 현실은 전혀 달랐다. 전쟁에서 패배하자 서민은 물론 양반의 부인들까지 많은 여성들이 적국으로 끌려갔다. 운 좋게 도망을 치거나, 많은 돈을 주고 풀려난 여성들도 있었다.

그러나 고국으로 돌아온 그녀들을 기다리는 건 환대가 아니라 정절을 잃고 돌아온 환향녀(還鄕女)라는 비난이었다. 양반 가문에서는 돌아온 환향녀들에게 이혼이나 자결을 강요하는 일도 많았다. 양반 집안에 먹칠을 했다는 것이 이유다.

국가와 가정을 지키지 못한 남자들이 환향녀들의 절개가 중요하다는 개도 안 먹을 자존심을 세웠다. 남자 가장들이 나라와 가정을 못 지킨 대가로 자결을 해야 하는 것이 순리에 더 맞다. 역사는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우리가 자신을 보호할 힘과 능력을 상실하면 누군가 우리를 짓밟고 노예로 만든다.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세계 질서는 수백만 년이 흘러도 절대 변하지 않는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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