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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6 (월)

잔금 대출 막힌 계약자들 "아파트 날릴 판인데 위약금 날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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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금 대출만 믿고 계약했는데 '대출불가'…위약금 날벼락까지

전세금으로 잔금 못치러…입주 앞둔 올림픽파크포레온 '혼란'

실수요자 아우성에 이복현 금감원장 "실수요자 보호책 만들 것"

[이데일리 정병묵 박지애 기자] 40대 A씨는 ‘계약금부터 대출이 나온다’는 시행사의 홍보를 보고 내년 입주인 수원의 한 아파트 분양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최근 시중은행의 대출 규정이 바뀌며 계약금 대출이 불가하다는 통보와 함께 계약을 파기하면 위약금을 내라는 통보를 받았다. A씨는 “1000만원만 있으면 계약금부터 대출이 나온다는 시행사의 말을 듣고 계약서를 덜컥 작성했는데 대출이 막혀 계약을 해지할 수밖에 없고 이에 위약금까지 내라 하니 난감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조이기에 실수요자들이 극도의 혼란에 휩싸였다. 이달부터 개인의 대출 한도를 줄이는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규제를 시행한 가운데 은행이 자체 대출 제한 조치를 추가로 적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실수요를 보호하면서 가계대출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겠다고 했지만 당장 주택을 계약해야 하거나 잔금을 치러야 하는 실수요자들은 돈줄이 막혀 발만 동둥 구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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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현 금융감독원장(가운데)이 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KB국민은행 신관에서 열린 가계대출 실수요자 및 전문가 현장간담회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은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 오른쪽은 이진우 삼프로TV 진행자.(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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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대출 폭증세 역대급…애먼 실수요자만 피해

4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 8월 말 가계대출 잔액은 7월 말보다 9조 6259억원,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8조 9115억원 늘었다. 증가폭은 5대 은행에서 확인할 수 있는 2016년 1월 이후 시계열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금융당국은 폭증하는 가계대출을 줄이기 위한 강경책을 펼치자 애먼 실수요자가 피해를 보는 상황이 늘고 있다.

A씨처럼 갑자기 대출이 막혀 계약을 해지하려 하니 위약금을 내야 하는 경우부터, 중도금까지 치르고 입주를 앞둔 상황에서 잔금 대출이 막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까지 곤혹스러운 경우가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실제 1만 2000세대의 단군 이래 최대 규모 재건축 단지인 올림픽파크포레온(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에서도 입주 두 달을 남기고 큰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주요 은행이 ‘조건부 전세자금 대출 취급 제한’을 두고 엇갈린 정책을 펴면서다.

KB국민·우리·NH농협은행은 일반 분양 주택을 비롯한 모든 주택에 대해 조건부 전세자금 대출 취급을 일괄 제한하기로 했다. 즉, 일반 분양자가 전세 임차인을 구하고 임차인이 전세대출을 받는 당일 그 보증금으로 분양대금을 완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실상 ‘갭투자’ 수요를 막겠다는 조치지만 전세를 놓아 잔금을 치르려는 수분양자에겐 날벼락이다.

둔촌주공아파트 청약 당첨자는 초기 계약금 20%를 치렀고 8월 22일까지 6차례에 걸쳐 중도금 대출을 받았다. 입주하기 위해서는 잔금 20%와 중도금을 내야 한다. 이 단지의 전용 84㎡ 기준 분양가는 약 13억원으로 앞으로 잔금과 취득세 등을 합하면 최소 3억원 이상의 현금이 필요하다. 스트레스 DSR 2단계 적용으로 소득이 적은 가구는 대출 한도가 줄어들며 자금 조달에 비상등이 켜진 상황이다.

한 수분양자는 “자금조달 계획을 오래 세웠는데 전세를 못 놓아 잔금을 못 치르면 집을 날려버리라는 얘기냐”며 “어렵게 당첨된 청약 기회를 날리지 않기 위해 2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아야 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입주 예정 집단대출, 금리 상향 조정

시중은행들은 DSR 관리 이유로 집단대출 금리에 대해서도 상향 조정하고 있다. 올림픽파크포레온에 대해 6개 은행(KB국민·NH농협·하나·우리·수협·부산은행)이 잔금대출 금리를 하향 조정할 수 없다며 기존의 중도금 대출 금리 수준으로 책정하겠다고 못 박았다. 올림픽파크포레온의 중도금 대출은 2조 8000억원 규모로, 잔금대출도 1조원 안팎에 이른다. 잔금대출은 일반 주택담보대출과 같지만 집단대출에 속해 유주택자도 대출을 받을 수 있다.

그간 은행들은 1만 가구 이상의 대단지 집단대출 유치를 위해 출혈경쟁을 해왔다다. 서울 반포 ‘래미안 원베일리’는 입주자의 금리 편의를 위해 ‘마이너스 가산금리’까지 부여했다. 하지만 앞으로 대단지의 집단대출에 대해 가산금리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가산금리가 높아지면 원리금 납부액이 많아져 자연스레 평균 DSR이 하락한다.

잔금대출 금리 기준은 신잔액기준 코픽스(COFIX)인데 연 3.15% 수준이다. ‘올림픽파크포레온’ 단지는 현재 연 4% 안팎의 중도금 대출 금리대로 잔금대출 금리를 책정하기 위해 가산금리를 1% 이상으로 검토 중이다. 은행들은 잔금대출 유치 경쟁도 하지 않기로 했다. 현재 유치한 단지 이외에는 사실상 신규 취급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급작스런 가계대출 규제가 오히려 서민에게 불똥이 튀고 있다며 유예 기간 등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신생아 특례 등 정부에서 수요 진작을 위한 대출을 풀기 시작하면서 거래량이 늘고 있던 상황에서 스트레스 DSR을 한 차례 연기하면서 수요가 앞당겨지면서 대출이 급격히 늘어났다”며 “갑작스럽게 대출을 차단하면 수분양자에게 문제가 될 수 있어 유예해 줄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이러한 실수요자의 아우성에 한발 물러섰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이날 서울 영등포구 KB국민은행 신관에서 열린 ‘가계대출 실수요자 및 전문가 현장간담회’에서 “정상적인 주택 거래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출 실수요까지 제약받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세심히 관리하겠다”며 “설사 가계대출 관리 추세가 좀 늦어지더라도 실수요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쪽으로 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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