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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6 (월)

[fn광장] 저출산 원인, 진짜 비용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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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아이 낳지 않는 이유를 물어보면 거의 이구동성으로 비용 부담을 이야기한다.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는 개인적 경험에 따라 너무 다양할 수 있다. 그리고 필자는 주로 출산주체로서 여성이 경험하는 차별적 상황, 즉 독박육아와 경력단절에서 저출산 요인을 강조하곤 한다. 하지만 각종 설문조사나 여론의 흐름은 사실 압도적으로 '비용'에 쏠리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그 어느 때보다 물질적으로 잘살게 되었다. 빈부격차, 중산층의 몰락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아이 키울 돈이 없을 정도로 한국 사람들이 가난하게 살고 있는가? 청년의 경제적 어려움이나 사회적 박탈 문제를 우리가 진지하게 다루어야 한다. 청년의 고달픈 삶을 상징하는 편의점 삼각김밥에 주목하는 이유이다. 그런데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의 맛집투어 대상으로 편의점을 소재로 삼는 것을 보기도 했다. 박탈이나 빈곤의 문제는 상대적 차원에서 다루어야 하다 보니 그럴 수는 있다. 그러나 어쨌든 다른 어느 국가에 비해 우리나라가 물질적으로 잘사는 국가가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작년에는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3만6000달러를 넘어 일본을 앞지르기도 했다. 인구 5000만명 이상 규모 국가 중 전 세계에서 6위이다. 이른바 주요 7개국(G7)에 들어갈 수 있는 수준이기도 하다.

여기에 더해 출산·양육을 사회보장제도로써 지원해야 할 사회적 위험으로 규정한 2012년 사회보장기본법 전면 개정 이후 임신·출산·돌봄과 교육에 대한 국가 지원이 빠른 속도로 확대되었다. 무상보육과 무상급식뿐 아니라 지금 20대 청년들도 어린 시절 경험하지 못했던 아동수당이나 부모급여 등도 도입되었다. 고등학교까지 등록금 부담도 사라졌다. 기성세대 부모들은 모두 본인이 하던 비용 부담, 즉 기본비용 부담은 거의 사라졌다.

그런데 왜 비용 이야기를 하는가? 자녀의 성장에 필요한 기본 비용 부담이 아니라 극단적 경쟁사회에서 태어나자마자 내 아이가 기죽지 않고 커야 하기 때문에 지출해야 하는 비용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사교육비도 여기에 포함된다. 경쟁사회가 지출을 압박한다는 의미에서 '압박비용'이다. 부부가 아무리 아무리 벌어도 감당하기 힘든 비용이다.

어느 라디오 방송 중 DJ가 한 말이다. "요즘 뭐 애들 있는 집은 여기저기 좀 다녀야 하고…." 친구들이 가는 해외여행을 가야 하고, 집 이야기가 나올 때 기죽지 않으려면 일단 비싸고 좋은 아파트에 살아야 한다. 가족여행이나 특별활동 때문에 학교를 가지 않아도 요즘은 체험학습이라는 명목으로 출석을 인정해준다. 그런데 개근을 하게 되면 체험학습 하루도 안 쓰고, 아니 못 쓰고, 즉 돈이 없어서 여행 한번 못하고 학교에만 나오는 '개근거지' 소리를 아이가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애가 클수록, 학년이 올라갈수록 사교육비용 부담이 커진다. 가능하면 이름이 알려진 대학교에 들어가서 내 아이의 인생 자체가 기죽지 않도록 만들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극단적인 경쟁사회가 부모에게 지출하도록 강요하는 압박비용 부담을 해결해 주는 것은 개별 정책 몇 개의 조합으로써 가능하지 않다. 교육개혁, 사회개혁이 일어나지 않으면 불가능한 비용 부담 문제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나. 저출산 현상의 반전을 위한 대응에서 두 가지 전략을 선택할 수 있다. 부모의 일·가정 양립을 통한 삶의 만족도 수준을 향상해야 한다. 둘째, 전반적 차원에서 대한민국 대개조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청년들이 희망을 갖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약력 △61세 △독일 트리어대학교 사회학 박사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교육부 교육정책자문위원회 위원 △교육부 늘봄학교연구회 좌장 △사회보장위원회 기획전문위원 △법무부 양성평등위원회 위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자문위원단 위원 △경북행복재단 대표이사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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