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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5 (일)

[이대근 칼럼]보수를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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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흑백 기록영화를 본 것 같다. “반국가세력이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다” “전 국민 항전 의지를 높일 방안을 강구하라”.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한 지시다. 거대 야당 위세에 기죽지 않겠다는 허세려니 했다. 그래도 그렇지, 저런 식의 대야공세라니, 참 고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석열 해명에 따르면, 그건 오해였다. 그는 간첩을 말한 것이라고 했다. 간첩 걱정하느라 밤잠을 설치는 대통령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 그가 걱정됐다.

그는, 영수회담은 거부하고, 당정 갈등은 부인했다. 김건희 조사는 정당하게 처리됐고, 채 상병 사건 외압은 없었고, 의대 증원 문제는 마무리됐고, 응급실은 정상이라고 했다. 이 초현실주의적 독백이 의미하는 딱 한 가지는, 2년이 넘어도 그의 스타일에 익숙해지기가 참 어렵다는 사실이다.

보수진영 내 위기론이 팽배하다. 국정방향은 좋지만, 국정운영 방식이 서툴고 거칠어 차기 집권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이상한 논리다. 옳은 방향을 추구하는데 왜 나쁜 방법이 필요할까? 보수 위기는 오래된 위기다. 윤석열 혼자 만든 위기가 아니다. 윤석열 정부는 탄핵으로 무너진 낡은 보수가 새로운 보수로 다시 건축한 게 아니라, 무너진 조각들을 그대로 긁어모은, 게으름의 결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윤석열 정부는 보수의 무능과 절망을 상징한다. 보수진영이 윤석열 탓할 자격이 없다.

언젠가부터 보수는 삶의 문제에 통찰력을 보여주지도,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리키지도 못하고 있다. 대신 과거로의 긴 여행을 떠났고, 언제 돌아올지 기약이 없다. 현재는 감당할 수 없고, 미래는 헤쳐 나갈 수 없을 때 갈 곳은 과거뿐이다. 김대중·노무현 연속 집권에 자극받아 냉전적 보수를 벗어나자며 뉴라이트 운동을 펼칠 때만 해도 보수는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그랬던 보수가 권력을 회복하자마자 변화의 행진을 멈추더니, 역사를 바꾸려는 헛된 욕망에 사로잡혔다.

그들은, 오늘의 성공은 이전 성공의 결과이고 이전 성공은 그 이전 성공이 낳았다는 단순 논리에 따라, 건국을 모든 성공의 기원으로 만들려 한다. 이 선형적 역사관에 따르면, 이승만은 모든 성공의 아버지, 국부가 되어야 한다. 현대사를 성공의 사슬로 이어가려는 그들이 왜 일제까지 미화하는지 알 수 없지만, 점점 더 많은 보수가 이 역사적 반동에 흥미를 느끼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흐름을 따라 보수 지도자 사이에서도 과거를 향한 경쟁이 치열하다. 윤석열은 극단적 견해를 가진 인물 상당수를 고위공직에 임명함으로써 이전 보수정부를 능가하는 기록을 세웠다. 홍준표는 동대구역 광장을 박정희 광장으로 바꾸고, 오세훈은 송현마당에 이승만 기념관 건립을 시도했다. 특히 오세훈은 광화문광장에 거대한 태극기 게양대를 세우려던 계획이 여론 반대에 부딪히자 한국전쟁 희생자를 기리는 국가 상징물을 설치하겠다고 했다. 국가 상징물로 시민의 자긍심, 애국심을 키우겠다는, 그의 권위주의적, 국가주의적 발상은 21세기 탈이념, 다원화, AI 혁명 시대에 자못 참신해 보이기까지 한다.

광화문광장은 이미 빈틈이 없다. 철갑을 두른 이순신 동상, 금박 입힌 세종대왕상도 모자라, 이승만 동상 건립 운동도 전개되는 마당에 이젠 한국전쟁 희생자도 모시게 됐다. 광화문광장을 왜 공동묘지로 바꾸지 않는지 알 수 없다. 그들 소원대로 식민지근대화로 한국이 발전했다는 역사관을 정립하고, 이승만을 국부로 모셨다고 치자. 그래서 어쩌겠다는 건가?

보수는 더 이상 기대와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이름이 아니다. 다음 권력을 잡는다 해도 마찬가지다. 보수가 권력을 잃을 때는 그나마 미래를 고민하지만, 권력을 얻으면 과거를 고민하고, 그 때문에 보수 위기는 더 깊어진다. 중요한 것은 집권 여부가 아니라, 낡은 세계관의 늪에서 빠져나와 더 나은 삶의 비전을 품을 수 있느냐다. 노태우는 남북화해 시대를 열었다. 김영삼은 세계화를, 이명박은 세계일류국가를, 박근혜는 경제민주화, 복지 확대를 국정 목표로 삼았다. 실천은 못하고 깃발만 내걸었을지언정 보수도 한때 세상의 변화를 주도하는 꿈을 꾸었다. 지금은 깃발조차 없다.

보수도 민주화 성과 위에 서 있는 존재다. 탄핵을 딛고 민주주의 공고화에 기여한, 당당한 역사적 주체다. 과거에 열등감을 느낄 이유가 없다. 독재의 후예가 되려 기를 쓸 이유가 없다. 과거로 들어가는 토끼굴을 찾아 헤맬 이유가 없다.

경향신문

이대근 칼럼니스트


이대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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