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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이슈 미술의 세계

모던한옥 어때? 전통, 현대 건축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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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산속 오성 한옥마을

경향신문

해발고도 600m를 넘나드는 산속 골짜기에 조성된 오성한옥마을. 아원은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 사이에 지어진 고택과 현대 건축 요소가 어우러진 복합문화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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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저녁으로 옷깃을 여미게 된다. 유난히 더 기다려졌던 가을이다. 누렇게 익어가는 벼를 발견하며 계절이 흐르고 있음을 실감한다. 올해는 추석이 유난히 빨리 찾아오는 것 같지만, 그만큼 이 계절을 더 길고 풍성하게 즐길 수 있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고요한 감성으로 가을을 맞이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여행지가 있다. 전북 완주군의 오성한옥마을이다. 한옥이 주는 차분한 분위기는 가을과도, 명절과도 잘 어울린다. 산들바람이 부는 한옥 마루에 앉아 청량한 공기를 마시며 사방을 포위한 산을 감상하는 시간이 그동안 무뎌졌던 감각을 다시 깨워준다.

옹기종기 만들어진, 12년 된 마을

위봉산과 서방산, 종남산 등 해발고도 600m를 넘나드는 산속 골짜기에 한옥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오성한옥마을이다. 이곳은 안동 하회마을이나 경주 양동마을처럼 수백 년의 역사를 품은 마을은 아니다. 북촌한옥마을처럼 근현대식 한옥 단지가 형성된 곳도 아니다.

오성한옥마을은 2012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했다. 마을 주민들이 마음을 모아 이곳에 한옥마을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주민들은 각자 건물을 짓거나 기존에 있던 집을 개보수했다. 다른 지역의 고택을 해체해 이곳으로 옮겨오기도 했다. 그렇게 20여채의 한옥이 마을에 자리하게 되었고, 지금의 오성한옥마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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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을 품은 넉넉한 자연환경에 둘러싸여 마음을 다독일 수 있는 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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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이자 숙소 ‘복합문화공간’ 아원

현재 오성한옥마을에는 한옥을 즐길 만한 공간이 여럿 존재한다. 아원고택과 소양고택이 대표적이다. 아원(我園)은 오스아트그룹이 운영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 사이에 지어진 고택을 옮겨와 미술관과 숙박 시설로 활용한다. 단순히 고택만 옮겨온 것은 아니다. 언덕 위에 한옥과 어우러지는 현대 건축 요소를 더했다. 현재의 관점에서 한옥을 바라볼 수 있음은 물론이고, 전통의 관점에서 현대 건축물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아원은 기존 한옥과 크게 다르다.

노출 콘크리트 구조로 지어진 현대 건축물 부분은 뮤지엄으로 활용 중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이이남 작가의 미디어아트 작품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이남 작가의 작품을 지나면, 거대한 콘크리트 벽 한가운데 작은 문 하나가 눈에 띈다. 본격적으로 아원에 들어서는 순간이다. 작은 문 뒤로 이어지는 좁다란 회랑을 따라가다 보면, 비밀스러운 지하에 들어선 듯한 느낌을 자아내는 공간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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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객이 작품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도록 조성된 아원의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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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는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작품처럼 보인다. 갤러리 천장에서 스며드는 햇빛이 작품에 스포트라이트를 내려주는 것은 물론이고, 작은 연못 위에서 은은하게 부서지며 윤슬을 만들어 내기까지 한다. 무심하게 이어지는 동선 곳곳에는 눈여겨볼 만한 요소들이 숨어 있다. 갤러리 뒤로는 대나무 숲이 펼쳐지는데, 그 사이로 난 오솔길이 한옥이 있는 공간과 연결된다. 오솔길을 따라 거닐어 보자. 어느새 가을바람이 찾아와 대나무숲 특유의 청량한 소리를 만들어준다.

아원에는 4채의 고택이 있다. 안채와 사랑채, 천지인 그리고 서당이다. 모든 고택은 숙소로 사용되지만, 갤러리 운영 시간에는 일반인도 마루를 즐길 수 있도록 개방한다. 가장 눈에 띄는 고택은 ‘천지인(만휴당)’이다. 거대한 대청마루를 자랑하는 이 한옥은 전북 정읍으로부터 옮겨 온 고택이다. 3면을 개방해 산들바람을 만끽할 수 있다는 점, 바로 앞에 설치된 인공 연못이 한옥과 현대 건축물의 예술적인 조화를 이끌어낸다는 점이 매력이다.

1820년 지어져 약 2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안채(설화당)와 사랑채(연하당)는 경남 진주시에서 옮겨온 건물이다. 이 고택들은 아원을 한눈에 담아내기에 좋은 곳이다. 포토존이 가까이에 있는 천지인에 비해 한산한 편이기도 해서, 여유롭게 고즈넉한 분위기를 누리는 것도 가능하다. 아원이 품은 풍경을, 한옥과 현대 건축물이 어우러지는 조화를 마음껏 경험해 보고 싶다면 하룻밤 묵어보는 것은 어떨까. 독립적인 공간에 마련된 노천탕을 포함해 푹 쉬어갈 수 있는 시설과 서비스가 제공된다.

전통 한옥의 단아함, 소양고택

아원 아래쪽으로는 소양고택이 있다. 이곳의 고택들 또한 다른 지역으로부터 온 것이다. 전북 고창, 전남 무안에서 철거 위기에 놓인 고택 3채를 해체해 오성한옥마을로 옮겨왔다. 이축 후에는 문화재 장인들의 손길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아원이 전통 고택과 현대 건축물을 한데 어우러지는 구성이었다면, 소양고택은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유지하고자 노력한 점이 돋보인다. 옛 모습을 최대한 보존한 채, 머무는 이들의 편의를 위한 몇 가지 요소를 더했다. 혜온당, 제월당을 비롯해 총 6개의 고택이 숙박 시설로 활용된다. 가족 단위로 묵을 수 있는 곳부터 혼자만의 고요한 시간을 누릴 만한 곳까지 다채롭게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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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적인 한옥에서 책을 접할 수 있는 소양고택의 플리커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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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양고택은 독립서점 ‘플리커책방’과 카페 ‘두베’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플리커책방은 예약제로 운영한다. 방문객이 한꺼번에 몰리지 않아, 한옥이 주는 감성적인 조용한 분위기에서 책을 고르거나 읽을 수 있다. 정기적으로 심야 책방의 날, 작가와의 북토크, 원데이 클래스를 열기도 한다. 카페 두베는 넓은 홀과 탁 트인 정원이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아원의 갤러리처럼 종종 문화 행사가 열리며, 아원과 더불어 포토존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여름에는 정원을 한껏 수놓는 수국을, 가을에는 종남산 자락을 물들이는 단풍을 보러 오는 이들이 많다. 1층에는 수제 진공관 앰프와 스피커가 있어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감상하며 휴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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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쉬어가도 좋아요, 오스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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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한옥마을 주변으로도 멋진 공간과 자연, 역사적 현장이 공존한다. 아원을 운영하는 오스아트그룹이 마을 외곽에서 운영하는 오스갤러리도 그중 하나다.

오스갤러리는 30여년 전 누에를 키웠던 잠사를 리모델링하고, 여기에 노출 콘크리트 건물을 증축해 미술관과 카페로 꾸민 곳이다. 마을에서 동떨어져 있지만, 찾는 이들이 꽤 많다.

오스갤러리는 주인장의 취향이 고스란히 반영된, 독특한 건축미가 돋보이는 공간이다. 실내의 조도를 낮춰 창밖 풍경을 하나의 거대한 작품처럼 감상할 수 있도록 꾸민 인테리어가 인상적이다. 덕분에 경복궁 교태전을 모티브로 꾸민 듯한 계단식 정원을 통유리창 너머로 즐기는 것이 가능하다.

‘찰칵’할 이유가 있는 위봉산성·위봉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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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봉산 자락에는 조선 숙종 원년(1675년)부터 약 8년간 건설했던 위봉산성이 남아 있다. 성벽 둘레만 해도 약 8.5㎞에 달하는 규모를 자랑하는 산성이다. 위봉산성은 전주 경기전이 위험에 처했을 때, 그곳에 모셔둔 태조 이성계의 영정과 위패를 옮겨와 보호하기 위해 축조한 곳이다. 동학농민운동 당시 농민군이 전주성을 함락했을 때 영정과 위패를 대피시킨 적이 있다.

잘 가꾼 한양도성과 같은 모습은 아니다. 그러나 찾는 여행객이 꽤 많은 이유는 ‘2019 BTS SUMMER PACKAGE’에 수록된 화보 촬영지였기 때문이다. 이곳 위봉산성에도 그 기록이 남아 있다.

오성한옥마을에서 위봉산성 방향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폭포 하나가 눈에 띈다. 60m 높이에서 쏟아지는 위봉폭포가 그 주인공이다. 위봉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난데없이 2단에 걸쳐 떨어지는 모습은 고스란히 한 폭의 동양화다. 전주와 완주 지역의 명승지를 꼽는 ‘완산팔경’ 중 하나로도 꼽힌다.

완주 | 글·사진 김정흠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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