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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5 (일)

필리핀 가사관리사, 오세훈식 홍콩몽과 몽상 [視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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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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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진행하는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이 9월 3일부터 본격 시작한다.[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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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계출산율 0.72명(2023년 기준). 저출생은 한국 사회를 흔드는 가장 크고 중요한 변수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지금 정부는 '외국인 가사관리사' 제도를 들고 나왔다. 2022년 오세훈 서울시장이 처음 제안한 외국인 가사관리사는 윤석열 대통령의 '주문'으로 지난해부터 급물살을 탔다.

# 서울시는 이렇게 짧은 준비기간을 거친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을 9월 3일 시행한다. 필리핀 출신 외국인 가사관리사 100명이 서울 시내 157개 가정에서 일한다. 외국인 가사관리사에게 지급하는 이용금액은 월 238만원(하루 8시간·주 5일 기준). 평범한 가정에선 엄두조차 내기 어려운 액수다. 외국인 가사관리사가 결국 고소득층을 위한 정책이란 비판이 쏟아진 이유다.

# 그러자 정치권에선 "외국인 가사관리사에게 최저임금 적용을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월 80만원대에 이용할 수 있는 '홍콩'의 방식을 따라야 한다는 거다. 그렇다면 홍콩은 정말 '해법'일까. 더스쿠프가 외국인 노동자를 둘러싼 비틀어진 경제학을 풀어봤다. 1편 필리핀 가사관리사의 홍콩몽과 몽상이다.

[※참고: 지난 8월 6일 한국에 입국한 필리핀 가사관리사 100명은 가사서비스 제공기관 2곳과 계약을 맺고 한달간 특화교육을 진행했다. 하지만 업체가 8월 20일까지 가사관리사들에게 지급해야 할 교육수당(2주분) 약 80만원을 주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됐다. 이 기사에선 왜 이런 논란이 발생했는지 그 배경을 다뤘다.]

고용노동부와 서울시가 9월 3일부터 본격 시행하는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을 두고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월 200만원대 이용금액에 고소득층을 위한 정책이란 비판이 일자 정치권에선 또다시 '월 100만원 가사관리사'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선봉엔 오세훈 서울시장이 있다. 오 시장은 지난 8월 27일 국회에서 열린 '필리핀 가사관리사 임금, 문제와 해결책은?'이란 세미나에 참석해 이같이 밝혔다. "(외국인 가사관리사 이용금액이) 보통 맞벌이 가정이 이용하기엔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합리적인 비용으로 양육자들의 선택 폭을 넓히겠다는 게 당초 취지였다. 지금과 같은 비용이라면 (제도가) 지속가능하지 않다."

시범사업을 불과 1주일 앞둔 상황에서 운영주체인 서울시 수장이 제도 실효성에 의문부호를 찍고 나선 셈이다. 물론 오 시장은 "외국인 가사관리사를 100만원대에 이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2022년 국무회의에서 저출생 대책의 일환으로 외국인 가사관리사 도입을 건의하면서 그는 홍콩·싱가포르의 사례를 들었다. 이들 국가처럼 최저임금 적용을 받지 않는 외국인 가사관리사를 도입해야 한다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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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서울시장은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 홍콩 방식의 외국인 가사관리사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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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직업상 차별금지 협약 비준국인 우리나라가 '외국인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차등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 힘이 실렸고, 이번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외국인 가사관리사들은 최저임금을 적용받게 됐다.[※참고: ILO 협약 제111호에 따르면 인종·성별·종교·출신국가 등을 이유로 근로조건을 차별해선 안 된다.]

이를 골자로 정부는 지난 4월 송출국인 필리핀 정부와 협의를 마쳤다. 8월 6일 한국에 들어온 필리핀 가사관리사 100명은 정부가 선정한 가사서비스 제공기관 2곳(홈스토리생활·휴브리스)과 근로계약을 맺고 업무를 진행한다. 9월 2일까지 특화교육을 마치고 3일부터 서울시가 선정한 157개 가정에 배치된다.

언급했듯 외국인 가사관리사에겐 2024년 최저시급(9860원)과 4대보험을 적용한다. 이를 포함한 외국인 가사관리사 이용금액은 시간당 1만3700원 선이다. 시간제(하루 4시간·이하 주5일) 이용 시 월 119만원, 종일제(하루 8시간) 이용 시 월 238만원가량이다. 오 시장의 발언처럼 일반 맞벌이 가정이 이용하기엔 부담스러운 금액인 게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시범사범을 신청한 가정은 강남권에 밀집됐다.

서울시에 따르면 시범사업을 신청한 가정은 총 731개인데, 그중 '서초·강남·송파 등(동남권)'의 비중은 46.6%(341건)였다. 이어 '종로·중구·용산 등(도심권)' 24.2%(177건) '구로·영등포·동작 등(서남권)' 12.2%(89건) '은평·마포·양천 등(서북권)' 11.9%(87건), '중랑·성북·노원 등(동북권)' 5.1%(37건) 순이었다.

이 때문인지 숙고할 시간도 갖지 않은 채 시범사업을 밀어붙인 게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ILO 협약을 지키려니 문턱이 높아지고, 그렇다고 외국인 노동자를 차별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졌다는 거다. 실제로 이번 시범사업은 지난해 5월 윤석열 대통령이 저출생 대책 일환으로 도입을 주문하면서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준비기간이 1년도 채 되지 않은 셈이다.

그렇다면 외국인 가사관리사가 고소득층의 전유물이란 비판에서 벗어나 시장에 안착하려면 뭘 해야 할까. 오 시장의 주장처럼 '홍콩'의 사례를 도입하면 정말 성공할 수 있을까. 한가지씩 살펴보자.

■ 관점❶ 차별하면 달라지나 = 오 시장은 '홍콩처럼' 외국인 가사관리사 제도를 운영하기 위해선 비자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국회 세미나(8월 27일)에서 "특정활동비자(E-7)를 활용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외국인 전문인력을 대상으로 발급하는 E-7비자의 직종에 '가사사용인(가사관리사)'을 추가해야 한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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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가사사용인에 적용하는 예외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가사사용인은 업무 특성상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개인 간 사적계약을 맺고 일할 수 있다. 사적계약의 경우 최저임금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이 빈틈을 활용하면 외국인 가사관리사를 최저임금 이하로 고용할 수 있다는 게 오 시장의 생각이다.

실제로 서울시는 지난 1월 이같은 내용을 담은 공문을 법무부에 보냈지만, 법무부가 응하지 않으면서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법무부가 이를 승인해 외국인 가사관리사를 홍콩과 비슷한 금액대에 이용할 수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걸까.

■ 관점❷ 홍콩 찬양론과 현실 = 정치권에선 홍콩을 마치 외국인 가사관리사의 성공 사례처럼 언급하지만 따져볼 점이 적지 않다. 홍콩은 1970년대 노동력이 부족하자 여성의 사회진출을 독려하기 위해 외국인 가사관리사 제도를 도입했다. 현재 필리핀·인도네시아 등에서 건너온 외국인 가사관리사는 40만명에 달한다. 그만큼 외국인 가사관리사가 보편화했다는 거다.

이들은 정부의 표준 고용계약서에 따라 각 가정과 계약을 맺고 일한다. 당연히 최저임금은 적용받지 않는다. 다만 홍콩 정부가 정해놓은 별도의 임금(월 80만원대)을 보장받는다. 계약기간은 2년으로 주 6일 근무한다.

그렇다면 이 제도를 그대로 한국에 들여오면 성공할 수 있을까. 결과는 알 수 없다. 한국과 홍콩의 상황이 달라서다. 홍콩은 원칙적으로 외국인 가사관리사에게 숙식을 제공한다. 외국인 가사관리사와 함께 거주해야 하기 때문에 주택 설계부터 외국인 가사관리사용 주거공간을 반영한 경우가 많다.

함께 식사하거나 그에 상응하는 식비도 지급해야 한다. 아울러 본국을 오가는 항공권 비용과 업무상 재해를 입었을 때 의료비용도 지불해야 한다. 숙식 문제가 해결되는 만큼 외국인 가사관리사는 버는 돈의 대부분을 본국으로 송금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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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가사관리사들이 주말을 보내기 위해 센트럴 지역에 모여 있다.[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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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가정과 개별적으로 계약을 맺고 일하는 탓에 인권 침해 논란이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점도 짚어봐야 한다. 외국인 가사관리사에게 취약한 주거공간을 제공하거나 무작위로 해고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서다.

함께 거주하는 게 원칙이지만, 주말엔 외국인 가사관리사가 집 밖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건 단적인 예다. 이용자 가족만의 시간을 보장해주기 위해 외국인 가사관리사들은 주말 동안 거리에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홍콩 중심 번화가 센트럴에선 종이를 깔고 식사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수만명의 외국인 가사관리사를 접할 수 있다.

홍콩의 시스템을 도입하고 싶다면 단순히 이용금액이 아니라 시스템 뒤에 숨은 문제들을 고루 검토해야 한다는 거다. 이용금액만 홍콩 수준으로 맞춘다면 외국인 가사관리사 제도를 지속할 수 없을 게 불 보듯 뻔하다.

오세훈식 '홍콩몽'을 짚어봐야 할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 가정과 홍콩 가정은 특성과 환경, 니즈가 서로 다르다. 홍콩 수준의 이용료를 받고 외국인 가사관리사가 한국에서 생활에서 이어갈 수 있을지에도 의문부호가 찍힌다. 이 문제들은 '외국인 노동자 비틀어진 경제학' 2편에서 짚어봤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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