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나무재단 박길성 이사장 "학폭 고통수준도 역대 최고치"
"플랫폼 자율규제 잘 작동 안해…사회적 책임감 느껴야"
박길성 푸른나무재단 이사장 |
(서울=연합뉴스) 이미령 기자 = "텔레그램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모든 플랫폼상에서 학생들이 사이버 폭력을 당했다고 느낄 만한 일들이 벌어져요."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학교폭력 예방 전문기관 푸른나무재단에서 만난 박길성(67) 재단 이사장은 최근 논란이 된 '딥페이크 성 착취물' 사태와 관련해 "일선 현장에서는 예전부터 상담 사례가 들어오고 있던 문제"라며 이같이 말했다.
박 이사장은 "텔레그램은 계정을 타인 명의로도 열개 스무개 만들 수 있단 점에서 가장 문제"라며 "특히 이번 사태는 익명성과 확장성이라는 사이버 폭력의 특성이 최고조로 우려할 만한 상황까지 온 결과"라고 설명했다.
최근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딥페이크 성 착취물' 범죄 가해자와 피해자 상당수가 10대 청소년인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더하는 가운데 재단에도 관련 상담 사례가 접수됐다고 한다.
올해 초 한 중학생이 소셜미디어(SNS)에서 '합성사진 제작' 홍보를 보고 동급생 대상 성 착취물을 제작 의뢰해 보관하고 있다가, 다른 학생에 의해 SNS에 유포됐다. 작년 말에는 고등학생 2명이 딥페이크 영상을 제작하고 가짜 SNS 계정까지 만들어 마치 피해 학생이 직접 해당 영상을 올린 것처럼 꾸미기도 했다.
딥페이크 악용 범죄 예방 교육 나선 경찰관 |
박 이사장은 과거 학교폭력이 두 사람 사이 혹은 학급 내에서 이뤄졌다면 오늘날 주요 학교폭력 양상인 사이버 폭력은 그 영향이 학교 전체 또는 그 이상으로 퍼지기도 한다고 상황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학교폭력이 진행될 수 있고, 그 여파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박 이사장은 "매년 실태조사를 진행하는데 올해 조사에서 '학교폭력으로 인한 고통 수준'이 역대 최고치로 나왔다"며 이런 사이버 폭력의 특성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봤다.
이런 이유로 학교폭력 문제에서 플랫폼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피해 학생과 학부모뿐 아니라 사회적 공포를 만들어내고 있지 않느냐"며 "플랫폼의 자율 규제가 잘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이사장은 플랫폼에 올라오는 불법 콘텐츠 상당 부분은 기술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금지 키워드를 설정하거나 이런 콘텐츠를 차단하는 알고리즘을 적용하는 방식을 통해서다.
그는 "플랫폼 기업이 이런 부분에는 투자를 잘 하지 않는다. (기술 개발에 드는) 비용 문제라기보다는 규제하면 시장이 형성되지 않는다는, 즉 수익과 연동돼 있단 생각 때문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러나 이제는 (플랫폼 기업이) 전향적인 생각을 해야 할 때"라며 "프랑스에서 텔레그램 창업자가 체포된 것도 상징적 의미가 있다. 유해 콘텐츠를 제작하고 유포하는 사람뿐 아니라 플랫폼 관리자에게도 엄중한 책임을 묻는 사회적 분위기가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학교폭력 피해자 어머니의 발언 |
푸른나무재단은 1995년 학교폭력으로 16살 아들을 잃은 김종기씨(현 재단 명예이사장)가 자신과 같은 불행한 부모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설립한 비영리 공익법인이다.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와 대학원장, 교육부총장 등을 지내고 지난해 부임한 박 이사장은 "사회가 가진 문제나 아픔을 다루는 '소셜 닥터'로서의 꿈을 가져왔는데 학자로서는 한계가 있었다. 재단에서는 그 꿈을 이뤄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고 직을 맡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올해는 재단이 큰 역할을 해 2004년 학교폭력예방법이 제정된 지 2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하지만 학교폭력으로 인한 고통의 수준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최근에는 가해자가 피해자를 맞고소하는 쌍방 신고가 많아진 점도 문제다.
박 이사장은 "학교생활기록부에 (학교폭력 사안이) 올라가면 대학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까지 우려하니 버티고, 사과하면 (가해 사실을) 인정하는 셈이 되니 사과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며 "교실이 법적 분쟁의 온상이 된 셈"이라고 지적했다.
재단은 피해 학생을 전담 지원하는 '위드위센터' 외에 매해 초등학교 700∼800학급을 대상으로 '푸른 코끼리'라는 학교폭력 예방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박 이사장은 "교육받은 학생과 받지 않은 학생 간에, 교육을 받기 전과 후에 사이버폭력 등 학교폭력에 대한 감수성, 대처법 등에 엄청난 차이가 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예방 교육이라고 하면 한가한 얘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다. 특히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 학생들에게는 교육 효과가 훨씬 크다"며 "대한민국 모든 어린이가 푸른 코끼리 학교 폭력 예방 교육을 받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alread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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