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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5 (일)

[이은영의 밥데이터] '탈출구' 실종...장기적 '울분'에 빠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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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울분’ 경험은 60대(3.1%)보다 30대(13.9%)에서 약 4배 가량 더 높아 우리나라 30대의 사회적 스트레스 정도가 심각함을 드러내고 있다. 전세 사기의 경우 피해 건수 총 4,485건 가운데 연령별로 보면 30대가 2,373명으로 가장 많았다./더팩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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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팩트 | 이은영 칼럼니스트] 사이가 매우 나쁜 남녀 커플과 한달간 함께 여행해야 한다면, 생각만 해도 그 여행은 끔찍한 여정이 될 것이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 사람들이 이러한 ‘스트레스성’ 여행길을 걷고 있는 것과 같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 연구팀은 지난 6월 12~14일 전국의 성인 남녀 1,024명을 대상으로 ‘한국인의 울분과 사회·심리적 웰빙 관리 방안 조사’를 실시했다.

이 조사에서 응답자의 50.8%는 ‘심리적 이상이 없다’고 답했으나 39.9%는 ‘중간 정도의 울분’ 상태, 9.3%는 ‘심각한 울분’ 상태라고 언급해 강도(强度)는 다르지만 울분이 있다는 응답이 절반(49.2%)에 달했다.

이 연구는 울분 상태를 이상 없음(1.6점 미만), 중간 울분(1.6점 이상∼2.5점 미만), 심각 울분(2.5점 이상)으로 나눴고 1.6점 이상은 ‘장기적 울분 상태’로 조작적 정의했다.

특히 자신을 경제적 하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32.7%)의 60%는 ‘중간 정도’의 울분 상태라고 응답해 경제적 상황 인식과 울분 감정 사이에는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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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덴 등 유럽의 정신의학자들이 개발한 ‘울분 장애(embitterment disorder)’ 측정 지표를 이용한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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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울분(Embitterment)’이란 어떤 감정 상태일까? 화나 불만과는 다른 감정인데 이번 조사를 실시한 연구팀에서는 울분을 ‘분노와 함께 좌절과 무력감이 동반되는 복합적 감정 상태’이며 모욕감, 부당함, 신념에 반하는 것에 대한 강요 등의 스트레스 경험이 중첩될 때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15개의 부정적 사건을 제시하고 최근 1년간 부정적 경험을 했는지를 물었는데, 전체의 77.5%는 ‘그런 경우가 있었다’고 말했다. 누구나 살면서 이런저런 시련을 겪게 되기에 조사 결과가 충격적이지는 않지만 만일 부정적 경험이 해소되지 않고 이중, 삼중으로 겹겹이 쌓이게 된다면 어떨까?

‘심각한 울분을 겪는다’는 9.3%의 응답자들 중 60%는 "자살 생각을 한 적이 있다"고 답해 울분의 심리상태가 우울증이나 자살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특히 ‘심각한 울분’ 경험은 60대(3.1%)보다 30대(13.9%)에서 약 4배 가량 더 높아 우리나라 30대의 사회적 스트레스 정도가 심각함을 드러냈다.

일례로 최근 사회문제가 된 전세 사기의 경우, 국토교통부 전세사기피해지원위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4월까지 접수된 사례를 심의한 결과, 피해 건수는 총 4,485건이었는데 연령별로 보면 30대가 2,373명으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20대로 1,062명이었다. 아무래도 사회초년병이어서 경험이 부족한 점과 함께 가장 활발하게 경제활동을 하는 연령대이기에 범죄 대상이 된 것 같다.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 붕괴를 확정했다’로 표현되는 ‘의정(醫政) 갈등’은 또 어떤가?

명의를 꿈꾸던 1만 8000여 명의 의대 재학생들과 전공의들이 정부의 출구없는 ‘밀어붙이기 정책’으로 혼란에 빠졌다. 보다 못한 학부모들이 ‘전국의대생학부모연합(전의학연)’이란 단체를 만들어 의대생들의 학습권을 요구하는 시위에 나섰다.

이 단체에 속한 한 학부모는 "2025학년도 의대 신입생을 뽑는 정부의 모습을 보면 마치 ‘선분양 사기꾼’과도 같다"며 교육부의 졸속 정책을 질타했다. 더구나 혼돈에 놓인 2030세대들의 ‘장기적 울분’이 얼마나 클지는 상상조차 힘들다.

마침 이 모든 사태들을 관리해야 하는 윤대통령의 국정 브리핑이 지난 29일 있었다.

한 기자가 '의료 공백이 장기화되므로 정부의 2000명 증원 규모를 조정하고 타협점을 찾는 것은 어떤지‘에 대해 묻자 윤 대통령은 ‘의사 단체들이 합의된 안을 갖고 온 적이 없다’며 ’남 탓‘을 했다. ‘응급실 뺑뺑이’ 사고가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도 ‘지방 응급실엔 원래 의사가 없었다’며 의료 개혁 때문에 발생한 상황이 아니라는 인식을 드러냈다. 불안에 떠는 민심과 너무 다른 현실 인식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사회는 유독 무력감을 느끼게 하는 사건 사고들이 많았다. 세월호, 이태원 참사, 채해병 사건, 그리고 최근 중고등학교에 퍼진 딥페이크 사건 등이 그런 경우인데 문제는 왜 이런 사건들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진상 규명이 힘들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저 나에게는 나쁜 운이 오지 않길 기도하며 ‘각자 도생’이란 주문을 외칠 뿐이다.

그리고 장기적 울분에 빠져 괴로워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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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yug2020@naver.com

※ 본 칼럼 내용은 필자의 주관적 시각으로 더팩트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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