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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5 (일)

“딥페이크 가해자 이름·얼굴 깝니다”…신상 털기 사적제재방도 나왔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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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사진 =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인공지능(AI) 기술을 악용해 제작한 합성물을 유포하는 딥페이크(Deepfake) 성범죄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가운데, 온라인상에서 딥페이크를 제작한 가해자 신상을 공개하는 가해자 정보방이 등장했다.

30일 지역사회에 따르면 텔레그램에는 최근 딥페이크 성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로 추정되는 사람의 신상정보를 공유하는 단체 대화방이 생성됐다. 가해자의 이름과 학교, 연락처, 거주지는 물론 보호자의 연락처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까지 확산하고 있다.

참여자 A씨는 “가해자 정보 가져 왔다”며 “이 사람은 전에도 딥페이크를 해서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은 전적이 있다”며 특정인의 신상정보를 노출했다. 그러면서 “여기 있는 사람이 (전화) 한 통씩만 걸어도 300통이니 다 같이 전화하자”라며 “경찰이 못 조지면 우리가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가해자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사진과 인스타그램 계정을 모은 명단도 올라왔다. 당초 텔레그램 정보방에서는 피해 현황을 알려주고 주의사항을 전달하는 대화가 주로 오갔다. 그러다 가해자 신상정보가 하나둘 올라오면서 본격적인 신상털이가 시작됐다. 가해자들이 모여 범행을 한 텔레그램이 이제는 보복 수단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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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사적 제재는 엄연한 불법이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또는 명예훼손 등으로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정의 구현인지와 마녀 사냥인지를 두고 오랫동안 논란이 됐다. 사태와 관련이 없는 인물을 가해자로 몰아갈 가능성 역시 존재한다.

실제로 딥페이크와 관계가 없는 주부의 인스타그램 계정이 공격을 당하기도 하고, 가해자와 전화번호가 비슷한 사람이 협박 전화와 문자를 받기도 했다. 앞서 한 유튜버도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 가해자들을 단죄한다는 명목으로 활동하다가 무관한 여성을 가해자의 여자친구로 지목해 사과한 바 있다.

그럼에도 누리꾼들이 사적 보복에 나서는 대표적인 이유로 수사 및 사법 체계를 비롯한 공권력에 대한 불신과 지극히 평범한 사진이 능욕 대상으로 변질된 데에 대한 불안·배신감이 꼽힌다. 딥페이크 성착취물 텔레그램 대화방 한 곳의 참여자가 22만명이었다. 물론 22만명이 전부 한국인은 아니다. 하지만 피해자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정확한 한국인의 숫자가 아니라, 많은 친구·동료·지인이 윤리 의식 없이 성범죄에 가담했다는 사실이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과거 N번방 사건 이후 국가의 입법·사법·행정 기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 가해자들이 또다시 텔레그램을 무대로 삼았다”라며 “공권력을 믿지 못하는 국민들이 사적 제재에 나서는 참담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가해자에 대한 처벌 수준이 미약하거나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 수많은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가 양산된 면이 있다”며 “가해자가 검거되고 처벌받는다는 상식적인 규범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복수의 사이버보안업계 관계자는 “언제나 기술의 발전은 빠르고 법이 따라가는 속도는 느렸다”며 “새로운 유형의 범죄나 시기적으로 급박한 범죄의 경우 호들갑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경각심을 줄 수 있는 메시지를 계속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딥페이크 피해자 한국인 가장 많아…외신들도 “비상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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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과 대전시청, 대전시교육청 관계자들이 30일 오전 대전 서구 대전경찰청에서 딥페이크 성착취물 관련 범죄 집중 단속 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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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외신들도 우리나라에사 발생한 딥페이크 성범죄를 주목하고 있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한국이 딥페이크 성착취물 대응에 가장 취약한 국가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사이버보안업체인 시큐리티 히어로가 지난해 7월부터 8월까지 성착취물 사이트 10곳과 동영상 플랫폼 85개에 올라온 영상물 9만5820건을 분석한 결과 딥페이크 성착취물에 등장하는 피해자의 과반(53%)이 한국인으로 확인됐다. 또 대다수(99%)가 여성이었다.

그 뒤를 미국인 20%, 일본인 10%, 영국인 6%, 중국인 3%, 인도인 2%, 대만인 2%, 이스라엘인 1% 등 순으로 이었다. 딥페이크 성착취물의 최다 표적 10명 중 8명이 한국인 가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가디언은 비밀리에 촬영된 성적 영상물인 이른바 몰래카메라를 뿌리 뽑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 온 한국이 딥페이크와도 전투를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BBC는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수많은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한 N번방 사건을 재조명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7일 국무회의에서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주문한 것도 비중 있게 다뤘다.

BBC는 “한국이 딥페이크 성착취물 비상사태에 직면했다”며 “(한국은)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한 어두운 역사가 있고, 만연한 성희롱 문화 속에서 기술 산업 발전이 디지털 성범죄의 폭발적인 증가를 불러 왔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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