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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4 (토)

악은 우리 곁에 있다, 표현을 숨기지도 않고 [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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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홀리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l 황금가지(2024)



현존하는 장르 소설가 중에 최고가 누구냐고 했을 때 모두가 스티븐 킹을 꼽지는 않지만, 누군가 스티븐 킹을 말한다면 반박할 수는 없다. 저작물 수와 판매 부수 같은 양적인 힘은 물론, 공포와 판타지, 청소년물과 추리 스릴러를 아우르는 장르의 스펙트럼, 그리고 대중문화 전반에 걸친 확장성까지, 킹이 현대의 서사 전통에 미친 영향력은 뚜렷하다. 무엇보다 그는 이야기를 위해 이야기를 쓰는 작가이다. 킹의 작품을 읽으면 사회를 위한 캠페인이나 범죄사회학적 통찰이 앞선다기보다, 서사의 즐거움이 우선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2023년에 ‘홀리’가 출간되었을 때 미국 내셔널 퍼블릭 라디오(NPR) 등 매체에서 그의 작품 중 “가장 정치적인 소설”이라고 평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만하다. 이 소설은 작가의 전작인 빌 호지스 3부작(황금가지)과 ‘아웃사이더’(황금가지)에 등장한 사설 수사관 홀리 기브니를 전면에 내세웠으며, 2021년 코로나-19 상황의 미국을 배경으로 한다. 백신 거부자였던 어머니를 코로나로 여읜 홀리는 백신 거부 운동을 펼친 트럼프 지지자들에 대한 반감을 숨기지 않는다. ‘홀리’의 이런 사회적 메시지가 플롯을 압도했다고 보는 평론가들도 있었지만, 작가는 후기에서 코로나 시대 배경은 백신 거부자들의 의심과 달리 계도적 의미는 없고, 현실에 있는 이름이나 상품명 등을 사용하는 것은 소설의 개연성을 높이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즉, 이 소설의 정치적인 의도를 의심하는 사람에게 스티븐 킹은 팬데믹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갈등은 소설이 기반하는 현실일 뿐이라고 짚어준다.



추리 스릴러로서의 ‘홀리’에는 탐정물의 전형적 요소가 있다. 코로나의 위협 속 어느 날, 홀리는 자전거만 남기고 사라진 딸의 행방을 찾아달라는 어머니의 의뢰를 받는다. 몸으로 뛰는 탐정 홀리는 성실하게 도시를 돌아다니며 실종 여성 보니의 흔적을 추적하고, 그 길에서 사라진 다른 젊은이들과 교차한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범인이 누구인가 하는 수수께끼에 집중하지 않는다. 이미 독자는 범인들을 안다. 2021년 시점이 등장하기 전, 2012년부터 시작되는 납치와 살인의 역사를 보았기 때문이다. 연약해 보이는 지식인 노부부, 그들의 동기와 방법은 무엇인가? 홀리는 어떻게 그들과 맞닥뜨리게 될까? 이야기는 이 필연적 대결을 향해 지치지 않고 달려간다.



흔히 악은 평범을 가장하고 주변에 숨어 있다고 한다. 이 작품에서 끔찍한 악행을 저지른 백인 교수 부부에 대해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과연 악을 숨겼던 걸까? 범인들은 목적이 따로 있긴 했지만, 평소에도 노골적으로, 혹은 은연중에 소수자들을 향한 혐오를 드러낸 자들이었다. 피해자는 모두 소수집단에 속하는 젊은이였다. 혐오주의자들이 모두 연쇄살인마가 되지는 않지만, 잔혹한 범죄의 아래에는 늘 반성 없는 혐오가 깔려 있고 그 감정을 적극적으로 정당화하는 정치적 입장이 그 토양이 된다. ‘홀리’는 현재 트럼프가 돌아온 대선을 치러야 하는 미국인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겠지만, 혐오 표현을 개인의 자유 정도로 치부해버리는 모든 사회에서 읽어야 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물론 그저 서사적 쾌감을 위해서 읽더라도 그 자체로 충분하다.



작가,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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