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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이슈 끊이지 않는 학교 폭력

"딥페이크 범죄 '성대결'로 모는 건 피해자 목소리 지우려는 시도"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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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대표
"남성도 사태 해결 방법 고민해야"
"단순 디지털성범죄 예방교육보다
여성 대상화하는 남성성부터 바꿔야"
한국일보

한 엑스(X) 사용자가 27일 올린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 학교 관련 게시글. 글 가운데 '겹지'란 '겹치는 지인'의 준말이다. X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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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얼굴 등을 나체 사진·영상에 합성하는 딥페이크(인공지능 기반 이미지 합성) 범죄가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는 것과 관련해, 사건의 중대함이나 피해의 심각성을 축소하는 발언이 확산되고 있다. 딥페이크 범죄의 위험이 과장됐거나, 성범죄가 아닌 일종의 놀이문화에 불과하다는 인식이다.

이에 대해 남성 대상 성평등 교육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한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대표는 29일 한국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 소모적 논쟁"이라며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하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이 대표는 "딥페이크 범죄는 단지 10대들만의 문제가 아니며, 과거부터 오랜 기간 이어져 온 여성 타자화와 대상화 문제"라면서 "남성들도 공동체 사회 일원으로서 '나를 잠재적 범죄자로 보지 말라'고만 말할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이 대표와의 일문일답.

-딥페이크 범죄가 공론화된 이후 관련 논의가 성대결 양상으로 비화하고 있다. "가해자가 22만명에 이른다, 국가적 재난 상황이다"(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라고 보는 축이 있는 반면, "위협이 과대평가되고 있다"(이준석 개혁신당 의원), "젠더갈등의 소재로 이용하고 있다"(허은아 개혁신당 대표) 등 반론도 제기된다.

"가해자들이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로 남성인 상황에서 성대결로 비화할 이유가 전혀 없다. 또 피해자들이나 여성들은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고 있다. 지금 이 사건을 성대결로 이끌어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이준석 의원이나 일부 남초 커뮤니티 회원들이다. 피해 구제와 사태 해결을 원하는 여성들의 목소리 자체를 들리지 않게끔 하려는 시도다. 소모적이고 불필요한 논쟁이다."

-성착취물을 제작·유통하고 소비하는 범죄가 유통 경로만 바뀌어왔을 뿐 과거 소라넷, 웹하드 등에서부터 계속돼 왔다는 분석도 있다.

"동의한다. 딥페이크 범죄가 '지금, 10대들만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굉장히 유구한 역사와 사례를 가지고 있다. '소라넷은 접속해본 적 없다'고 부인할 지라도, 여성인 지인이나 친구, 동료들의 몸을 품평하거나 순위를 매긴다거나 하는 성적 대상화나 상품화된 성을 소비하는 것에는 얼마든지 가담해 왔을 것이다. 이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지, 아무것도 없는 진공 상태에서 딥페이크 범죄가 갑자기 발생한 게 아니다. 이런 맥락을 구조적으로 바라보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
한국일보

이한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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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남성들은 '특정 범죄가 발생했다고 해서 전체 남성들을 일반화하거나 잠재적 가해자로 봐선 안 된다'는 주장을 한다.

"아무 맥락도 없이 모두를 무작정 잠재적 가해자 취급하는 게 아니지 않나. 가해자가 분명 존재하고, 엄청나게 많은 여성들이 피해를 입은 사실을 간과한 주장이다. 남성들이 지금 고민해야 하는 것은 공동체 사회 일원으로서 어떻게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을 것인지, 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떻게 일조할지 찾고 고민하는 것이다."

-부모나 양육자들도 우려가 많다. 어른들이 모르는 사이에 자녀들이 성착취물에 노출되거나, 성착취물 제작에 가담하는 것은 막기 힘들지 않나.

"그래서 정말 중요한 게 성교육이다. 성폭력을 예방하는 교육도 이뤄지지만, 아주 어릴 때부터 제대로 된 남성성을 배우는 교육이 근본적으로 필요하다. 양육자나 부모들이 개별적으로 대응하기보단 학교에서 성교육을 잘 해야 한다. 다만 성엄숙주의를 요구하는 목소리나 관련 예산 부족으로 어려움이 많다."

-학교에서 이뤄지는 성교육에서 딥페이크 범죄 예방도 다루나.

"실제 디지털성폭력예방교육은 학교 측에서 가장 많이 요구하는 교육이다. 누군가를 동의 없이 촬영하고 합성하고 유포하는 것 모두 범죄라는 것을 계속 강조한다. 그런데 이런 교육은 표면적인 교육일 뿐이다. 몰라서 범죄에 가담하는 학생들도 있겠지만, 어떤 학생들은 다른 또래 친구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어서, 또는 남성연대를 유지하고 그 안의 위계질서 안에서 신분 상승을 하고 싶어서 여성을 타자화하고 대상화하고 소비하기도 한다. 이런 것에서 벗어나려면 남성성과 관계를 중심으로 한 성교육이 매우 중요하다."

-이 같은 범죄가 한국 남성의 특수성 때문에 일어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전세계 어디를 가도 비슷한 일은 벌어진다. 또 문제를 해결하는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런 목소리에 담겨있는 메시지가 중요하다. 한국에서 유달리 디지털범죄가 많이 발생하고, 공권력이 이를 전혀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맥락에서 '한국의 특수성'이 언급되는 것 같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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