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겸 소설가 차인표.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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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로 변신한 배우 차인표가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다룬 소설을 쓰게 된 계기를 밝혔다.
차인표는 28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자신을 “배우 겸 소설가”라고 수줍게 소개했다.
이날 진행자 유재석은 “저도 뉴스를 보고 ‘이게 웬일이야’ 했다”며 차인표의 소설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이 영국 명문 옥스퍼드 대학 필독서로 지정된 것을 축하했다. 그러면서 “소식을 들은 지인들이 놀랐을 것 같다”고 했다.
이에 차인표는 “뭐 축하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런데, 그럴 때마다 사실 제가 제일 놀랐을 거 아니냐”라며 재치있게 말했다. 이어 “재석 씨가 저를 ‘작가’라고 부르는데 굉장히 어색하다”라고 했다.
차인표는 필독서 지정과 관련, 옥스퍼드대 측으로부터 직접 연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옥스퍼드대 교수님이 연락해서 ‘3, 4학년과 석박사 학생 교재로 쓰고 싶은데 허락하겠느냐’고 제안하길래 감사하다고 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현재 옥스퍼드에 있는 43개 칼리지 도서관에 차인표의 책이 한 권씩 비치되어 있다고 한다.
차인표는 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도 밝혔다. 일본군 위안부로 1942년 캄보디아로 끌려갔던 ‘훈 할머니’가 55년 만에 고향을 찾은 장면을 보고 소설을 쓰게 됐다고 한다.
그는 “1997년 8월 4일이었다”라며 “김포공항 입국장 문이 딱 열리니까 자그마한 할머니 한 분이 나오더라”라고 했다. 이어 “한국말은 잊어버리셨는데 아리랑은 더듬더듬 부르시더라”라며 “그 모습을 보면서 수많은 여성들이 그런 일을 당했잖나. 그 역사를 생각하며 여러 감정이 교차하더라. 슬픈 감정과 일본군들에 대한 분노, 우리 여성을 지키지 못한 부끄러움 등이었다”고 했다.
제1회 '옥스퍼드 한국문학 페스티벌'에서 강연하는 차인표.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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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인표는 “이런 감정이 몇 달 동안 진정이 안돼 ‘소설로 써보자’고 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10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소설을 완성했다고 밝혔다. 차인표는 “소설 작법도 모르고 기초 지식이 없으니까 뒤늦게 배우기 시작했다”라며 “독학하고 책을 사서 읽고 온라인 강의도 들었다”고 했다.
차인표는 소설을 쓰는 동안 어머니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그는 “어머니가 질문을 많이 하셨고, ‘작가에게 있어서 상상력은 중요하지만 사실에 입각하지 않은 상상력은 모래 위에 쌓은 성과 같다’고도 해주셨다”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출발점을 찾는 기준이 됐다”고 했다. 이후 그는 소설의 배경이 되는 백두산도 실제로 찾아가보고, 열심히 자료 조사를 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있던 ‘나눔의 집’을 찾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2007년 4월 아주 화창한 봄날이었다. 마침 제가 간 날 할머니들이 한복을 다 입으시고, 그 당시 아홉분 계셨는데 마당에 나와 일렬로 앉아 계시더라”라며 “조선희 사진작가님이 영정사진을 찍어주는 자원봉사를 하러 오신 거였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차인표는 당시 할머니들의 모습을 보고 ‘이렇게 한 분씩 한 분씩 돌아가시겠구나. 세상을 떠나시고나면 아무도 이 이야기를 해 줄 사람이 없겠구나. 그러면 다음 세대에겐 누가 이 이야기를 해주지’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는 “처음 소설 쓸 때는 단순하게 할머니들에게 이런 일을 한 (이들에게) 복수하고 싶었다”라며 “소설을 쓰며 마음이 바뀌었고 정말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할머니 마음을 진정한 사과는 못 받으셨어도 편하게 해드리고 싶더라”라며 “이분들의 마음을 소설로라도 편하게 해드리고 싶다는 목적이 생겼다”고 했다.
[김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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