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희 피해자전담 국선변호사가 27일 오전 서울 동작구 보라매병원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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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만나본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은 ‘내가 죽어도 안 끝날 것 같다’고 말해요. 피해자가 숨지면 ‘유작’이라고 조롱하면서 성범죄물이 더 많이 유포되거든요.”
지난 27일 서울 동작구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만난 신진희 성범죄 피해자 전담 국선변호사는 디지털 성범죄의 특수성을 이해하는 것이 사건을 다루는 첫 번째 열쇠라고 말했다. 강간이나 강제추행 같은 신체 접촉형 범죄와 양상이 다를 뿐 피해 정도가 절대 약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해야만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에 대한 합당한 처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피해자가 사건 초기부터 피해자 전담 국선변호사의 조력을 받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2012년 도입된 피해자 국선변호사 제도는 성폭력·아동학대 등 범죄 피해자에 한해 국가가 무상으로 법률적 조력을 제공하는 제도다. 신 변호사는 대한법률구조공단 소속으로 12년동안 성폭력·아동학대 피해자의 국선변호사로 활동해왔고, 2020년 엔(n)번방 사건을 비롯해 다수의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를 변호한 경험이 있다. 아래는 신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최근 디지털 성범죄가 증가하고 범죄 양상도 변화하는 추세인데, 현장에서는 어떻게 느끼시나요?
“제가 엔번방 사건 피해자들을 지원했던 2020년 이후에도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 많이 늘었어요. 예전에는 누가 봐도 조악한 합성 사진이었다면, 이제는 제3자가 보면 합성물인지 아닌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예요. 가해자도 합성물이기 때문에 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해서 퍼트릴 수 있죠. 최근엔 챗지피티(GPT) 같은 지능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성범죄 영상물을 만들어 올린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고요. 이런 사건은 계속 늘어날 것 같아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이 느끼는 피해감정은 신체 접촉형 성범죄 피해와 다르지 않다고 합니다.
“더 클 수도 있어요. 디지털 성범죄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가져요. 불법촬영물이나 불법합성물을 가해자가 업로드 하면 순식간에 퍼지죠. 그리고 이걸 보는 모든 사람이 범죄자가 되는 거예요. 게다가 유포에 재유포까지 가면 피해가 끝이 나지 않잖아요. 제가 만나본 피해자들은 ‘내가 죽어도 안 끝날 것 같다’고 말해요. 피해자가 숨지면 ‘유작’이라고 조롱하면서 성범죄물이 더 많이 유포되거든요.”
수사기관이나 법원의 인식은 어떤가요?
“신체에 침해가 발생해야만 중대 범죄고, 정보통신망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직접적 피해가 아니라는 인식이 여전해요. 달라진 세상을 법이 못 따라가는 거죠. 모든 사람이 다 가해자일 수 있다는 생각에 피해자는 회사도 학교도 못 가고 일상생활을 못 해요. 그러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있고요. 하지만 우리 법에 강간치사죄 같은 가중처벌 조항은 있어도 불법촬영치사죄 같은 건 없잖아요. 결과가 너무 무거운데도 합당한 처벌 규정도 없고 양형도 매우 낮아요.”
신진희 피해자전담 국선변호사가 27일 오전 서울 동작구 보라매병원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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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페이크 성범죄 피해자들이 사건 처리 과정에서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수사 단계가 가장 힘들어요. 보통 피해자는 텔레그램 방에 들어가 있어요. 거기서 가해자들끼리 주고받는 대화를 다 보죠. 채증을 해야 하니까 스스로가 도마 위 생선처럼 해체되는 모습을 안 볼 수도 없어요. 피해자가 문제의 영상이나 사진 등 증거를 일부 확보해야만 수사가 개시되니까요. 심지어 어렵게 대화방에 들어갔는데 방이 폭파돼서 증거가 사라지는 경우도 많아요. 그 사람(가해자)들은 계속 대피소라는 걸 만들어서 갈아타기 때문에 피해자가 그걸 추적하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거든요.”
디지털 성범죄 수사에 있어 경찰에 대한 불신이 상당합니다.
“열심히 증거 찾아서 갔는데 경찰이 ‘텔레그램은 못 잡는다’고 할 때 피해자들이 가장 무력감을 느끼죠. 실제로 텔레그램 수사가 쉽지는 않아요. 텔레그램 외에 다른 포털이나 소셜플랫폼 관련 사건도 경찰이 (수사협조) 공문을 보내고 회신을 받기까지 오래 걸리고, 텔레그램은 정보 공조를 안 해주고요. 하지만 그런 상황을 피해자에게 충분히 설명할 필요가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피해자 입장에서는 경찰이 무능하다거나 사건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죠. 게다가 신고 시점에 피해자는 대개 패닉 상태여서, 더 많은 배려가 필요해요.”
경찰이 피해자에게 수사 상황을 충분히 공유해줄 수 없나요?
“수사의 밀행성 원칙이라는 게 있어요. 수사 과정에서 취득하는 정보가 어떤 경로로 나가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몰라요. 디지털 성범죄는 가해자가 누군지 모른다는 특수성이 있기 때문이죠. 피해자가 경찰에서 들은 이야기를 가까운 친구에게 했는데, 그 사람이 알고 보니 동조자이거나 공범일 수도 있으니까요. 경찰 입장에서는 피해자에게도 함부로 말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수사의 한계점을 자세히 설명하고 안내하면 피해자가 경찰을 불신하는 일은 좀 줄어들지 않을까 싶어요.”
수사 초기부터 피해자를 도울 국선변호사 등 조력자가 필요하겠군요.
“피해자 국선변호사는 대개 사건 조사 완결 뒤에 선정되는 경우가 많아서 저희도 답답해요. 피해자가 증거영상 찾아서 경찰에 신고하러 갔을 땐 이미 지쳐있는 상황이잖아요. 경찰은 ‘오늘 바로 조사받으실래요, 아니면 국선변호사 선정되고 나중에 다시 오실래요?’하고 물어요. 그러면 피해자는 그냥 변호사 없이 조사받기를 택하는 거죠. 하지만 국선변호사가 미리 개입한다면 사건을 더 잘 파악할 수 있고, 피해자에게도 디지털 성범죄의 특수성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상담을 해드릴 수 있어요.”
텔레그램을 중심으로 한 딥페이크 성범죄 문제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학교에서는 여학생들에게 소셜미디어 사진을 내리라고 교육하고 있습니다. 이런 대응으로 딥페이크 성범죄를 예방할 수 있을까요?
“아뇨. 절대 (그런 식으로) 예방할 수는 없어요. 실제 사건을 보면 초등학생 아이들 사진으로도 합성을 해요. 졸업 사진 같은 것도 다 이용될 수 있는 거죠. 내 사진을 전부 없앤다 하더라도 어딘가에 업로드된 사진이 또 이용될 수 있고요. 다만 큰 사건이 일어나면 움츠러드는 것은 자연스럽죠. 집에 도둑이 들었다고 하면 잠금장치가 제대로 되어 있나 확인하는 것과 같은 반응이라고 생각합니다.”
딥페이크 성범죄는 가해자 가운데도 10대 미성년자가 많습니다. 처벌은 제대로 될까요?
“10대 가해자는 처벌이 쉽지가 않아요. 게다가 미성년자 가해자는 검거된다 해도 재판을 가정법원에서 받아요. 가정법원 재판은 모든 게 비공개여서 피해자 쪽도 피해진술만 할 수 있고 재판 과정을 볼 수가 없어요. 어떤 처분이 내려졌는지도 알 수 없고요. 이렇게 10대 범죄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소년재판에도 피해자 참여권이 보장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자가 됐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
“불법합성 성범죄물을 그냥 삭제하시면 안 됩니다. 링크나 사진, 영상 등 증거를 최대한 받고 누구로부터 어떻게 피해를 인지하게 됐는지, 사건의 정황은 어떤지, 경찰청 사이버범죄 신고시스템(ECRM)에 신고하시는 게 가장 빠른 길입니다. 그리고 각 지역의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 연락하시면 상담지원, 삭제지원 등을 받을 수 있습니다.”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한 여성들의 공포가 큽니다.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요?
“이런 이슈가 나오면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대책은 전방위적으로 이뤄져야합니다. 하나만 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해요. 처벌 규정도 만들어야 하고, 수사나 재판 절차에서 피해자 보호 조치도 점검해야 하고, 텔레그램 같은 매체에 대한 적극적인 규제도 만들어야 하고요. 미성년자 아이들에 대한 사이버 교육도 해야죠.
무력감에 빠지면 손을 놓게 되잖아요. 그럼 안 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다 찾아봐야죠.”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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