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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4 (토)

[지평선] ‘파친코’와 코리안 디아스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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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드라마 '파친코'. 애플TV플러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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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감독 빔 벤더스의 다큐멘터리 영화 ‘도쿄가’(1985)는 1980년대 경제대국 일본의 모습을 담고 있다. 영화 속 일본인들은 골프 연습에 몰입하거나 파친코에 빠져 있다. 골프공과 파친코 구슬의 원형 이미지는 일장기의 태양을 연상시킨다. 골프가 경제 발전으로 보편화한 취미거리라면, 파친코는 전후 부흥 과정에서 퍼진 오락이다. ‘도쿄가(東京画)’는 도쿄 그림, 즉 도쿄 풍경을 의미한다. 파친코는 외국 감독 눈을 사로잡은 일본의 주요 특징이었던 셈이다.

□ 파친코는 1920년대 처음 등장했다. 1950년대 지금과 같은 형식의 파친코가 자리 잡았다. 카지노를 닮아 우리 눈에는 도박으로 여겨질 만하나 일본 법으로는 놀이로 분류돼 있다. 매출 규모는 2020년 기준 22조 엔(약 202조5,000억 원)으로 ‘국민 오락’ 수식이 붙을 만하다. 사행성 짙고 거액이 따르는 산업이니 폭력조직이 곧잘 끼어든다. 재일동포, 특히 재일조선인이 운영하는 업장이 많다. 전후 마땅한 직업을 구하기 어려웠던 이들의 신산한 삶이 엿보인다.

□ 드라마 ‘파친코’는 일제강점기 부산 어촌에서 일본 오사카로 건너간 선자(김민하 윤여정)를 붓 삼아 재일동포의 역사를 돌아본다. 제목은 선자의 아들이 파친코 업장을 운영해 가족을 경제적으로 일으킨 점에서 연유했다. 전후 일본에서 가난과 차별을 견디고 일어선 선자 가족의 눈물겨운 이민사는 세계 시청자들의 공감을 살 만했다. 시즌1이 2022년 선보인 데 이어 시즌2가 지난 23일 공개됐다. ‘파친코’는 애플TV플러스가 제작한 시리즈 중 가장 잘 만든 드라마로 꼽히고는 한다.

□ ‘파친코’는 재미동포 작가 이민진의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재미동포 수 휴가 각색을 했고, 제작총괄까지 맡았다. 재미동포 감독 코고나다와 저스틴 전이 시즌1의 메가폰을 쥐었다. 시즌2에서는 재일동포 이상일 감독이 연출에 참여했다. 한국 배우 윤여정과 김민하, 이민호, 정은채에 재미동포 배우 진하 등이 연기 호흡을 맞췄다.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굴곡진 역사에서 비롯된 면이 크다. 이민을 소재로 ‘범한국인’이 뭉쳐 만든 드라마가 세계인을 사로잡는 건 역사의 아이러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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