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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 (수)

이슈 로봇이 온다

발로 차도 안 넘어지고, 분대작전도 무리 없는 속도... 대테러용 사족보행로봇 살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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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1월까지 시범운용, 2월 구매 결정 예정
현대로템·레인보우로보틱스 등 2년간 개발
군인 2명이 옮길 만한 무게... 소음은 줄여야
정찰병 목숨 지킬 자산 vs 살상에 활용 우려
한국일보

13일 대전 유성구 레인보우로보틱스 본사에서 이 회사 관계자가 한 달 전 육군에 시범 배치된 대테러용 사족보행로봇을 작동하고 있다. 대전=고영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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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군에서 성능 개선을 요구하는 1순위 사항은 ‘더 조용하게, 더 빠르게’입니다. 대(對)테러 작전용 사족보행로봇의 역할이 감시와 정찰인 만큼, 은밀하게 잠입하는 게 가능하면서도 발각됐을 때는 신속하게 현장을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13일 대전 유성구에 있는 로봇 플랫폼 전문기업 레인보우로보틱스 본사에서 만난 정효빈 수석연구원은 다리가 넷 달린 대테러 로봇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정 연구원이 보행 알고리즘을 기본모드에서 저소음모드로 변환하자 개과 동물처럼 두 발씩 껑충껑충 걷던 로봇이 어깨를 좌우로 흔들며 한 발씩 바닥을 짚고 살포시 걸었다.

기본모드에선 소음이 망치질에서 들리는 60데시벨(㏈) 정도인데, 저소음모드에선 50㏈ 이하로 떨어진다고 한다. 정 연구원은 “다만 저소음모드에선 민첩한 움직임이 어렵다”며 “군에선 기본모드에서 지금보다 소음이 적어야 작전 투입이 더 수월할 거라는 의견이 나와 개선 중”이라고 말했다.

탑재장비 포함 최대 50kg, 보행속도 최대 12km


레인보우로보틱스가 지난달 13일 보병부대와 특전사 등 육군에 시범 납품한 사족보행로봇이 군 내부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걸로 전해졌다. 앞서 레인보우로보틱스는 2022년 8월 국방신속획득기술연구원, 현대로템과 함께 신속연구개발사업으로 대테러 작전용 사족보행로봇 개발에 착수했다.

신속연구개발사업은 첨단 신기술을 무기체계에 적용해 2년 이내에 개발, 군에서 시범 운용한 뒤 구매까지 연계하는 사업이다. 박성철 국방신속획득기술연구원 선임기술원은 “군에서 현재 사족보행로봇의 작전 활용도가 높다는 의견이 많다”며 “내년 1월까지 사족보행로봇을 군에서 시범 운용해본 뒤 적합성 평가를 거쳐 2월쯤 구매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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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보행로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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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보행로봇은 산악지대와 진흙탕, 눈 덮인 지역 등 험난한 지형에서 안정적으로 이동이 가능해, 바퀴나 궤도를 사용하는 로봇보다 군사작전 수행에 훨씬 효과적이다. 이날 레인보우로우틱스 본사에서 움직임을 시연한 사족보행로봇은 몸체 옆구리를 사람이 발로 차도 넘어지지 않고, 차는 힘에 따라 밀리는 방향으로 몸체를 이동하면서 짧은 보폭으로 빠르게 균형을 잡았다. 완전히 90도 각도로 넘어졌을 때 스스로 발을 굴러 일어나기도 했다. 미끄러운 빙판에서도 스스로 균형감각을 유지하며 이동할 수 있다고 한다.

특히 보행 속도는 일반 성인이 걷는 정도인 시속 4㎞에서 빠르게 달리는 시속 12㎞에 달해, 군인들과 함께 분대를 이뤄 작전을 수행하는 데도 무리가 없다는 평가다. 총중량은 40㎏으로, 탑재 가능한 임무장비 최대 무게는 10㎏이다. 정 연구원은 “개발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군에서 제시한 ‘중량 40㎏ 이하’ 조건이었다”며 “휴대와 운반을 위해 군인 2명이 함께 들어 옮길 수 있는 최대 무게가 40㎏이라서 그에 맞춰 로봇의 퍼포먼스를 최대화하는 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13일 대전 유성구 레인보우로보틱스 본사에서 회사 관계자가 대테러용 사족보행로봇에 탑재 가능한 임무장비인 로봇 팔(위부터 차례로)과 비살상무기 투척장치, 원격 사격통제체제를 소개하고 있다. 대전=김현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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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다이내믹스 말고 레인보우로보틱스가 만든 이유


레인보우로보틱스에 따르면 사족보행로봇에 탑재 가능한 임무장비는 현재까지 5개 정도가 개발됐다. △테러 장소에서 건물에 잠입할 때 문을 열기 위해 손잡이를 잡고 돌리는 로봇 팔 △비살상 무기 투척장치(섬광탄과 폭음탄, 최루탄) △원격 사격통제체제(RCWS, K5 권총) △주야간 원거리 감시카메라 △체온 측정장비다. 모두 대테러 작전에서 침투나 감시, 위협에 초점이 맞춰진 장비들이다.

지난 한 달간 사족보행로봇을 시범 운용해본 군에선 현재 이 외에도 360도 회전이 가능해 멀리 떨어진 피사체를 지속적으로 추적할 수 있는 팬틸트(PTX) 카메라, 생화학가스 감지 센서, 폭발물 처리를 할 정도로 정밀 제어가 가능한 로봇 팔 등의 임무장비까지 사족보행로봇에 탑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이지석 현대로템 유지·정비·보수(MRO)팀 책임매니저는 “수색 정찰에서 정찰병 대신 사족보행로봇을 대신 보내는 것만으로도 목숨을 지키는 일이 된다"며 "특히 100% 국산 기술로 개발된 덕분에 MRO도 해외에 보낼 필요 없이 국내에서 바로 가능하다는 점도 군 입장에선 큰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일각에선 사족보행도입이 군 전략화하면 로봇이 사람을 살상하는 '로봇 전투' 시대의 길이 열리는 거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사족보행로봇에 지금이라도 소총을 탑재하면 적진에 침투해 난사한 뒤 빠져나오는 작전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현대로템이 같은 그룹 계열사인 로봇 전문기업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제쳐두고 레인보우로보틱스와 군사용 사족보행로봇을 개발하는 배경도 보스턴다이내믹스가 로봇을 방위산업 무기로 개발하지 않겠다고 선언해서다. 이에 대해 정 연구원은 “사족보행로봇에 권총을 탑재할 수 있긴 하지만 위협용일 뿐 사람을 향해 쏘지 않게 설계돼 있다”며 “로봇 전투 방식은 윤리적 문제가 제기되는 상황이어서 이에 대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뒤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 김현우 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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