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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4 (토)

송두환 “차별금지법은 국격 척도...OECD 중 없는 나라 드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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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이 21일 오후 서울 중구 삼일대로 나라키움 저동빌동 15층 인권위원장 집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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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중도원(任重道遠), 설상가상(雪上加霜).



송두환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위원장이 지난 3년의 재임 기간을 돌아보며 뽑은 사자성어다. 전반부에는 의견과 경험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서로 존중하고 절충하고 조정하는 아름답고 건전한 토론이 가능했으나, 후반부 들어서는 악의·적개심·증오가 막말로 튀어나오는 책임감 없는 토론으로 이어지면서 막막했다고 한다. 임무는 막중한데 갈 길은 아득히 멀고(임중도원), 꽃밭에 눈이 내려 쌓이더니 그 위에 다시 서리가 덮인(설상가상) 형국이었다는 것이다.



송 위원장은 지난 21일 서울 중구 삼일대로 나라키움 저동빌딩 15층 집무실에서 한겨레와 만나 퇴임을 앞둔 소회를 밝혔다. 다음달 3일 퇴임을 앞두고 언론 앞에 나서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취임 1년 만에 아시아·태평양 국가인권기구연합(APF) 의장으로 취임하고 세계국가인권기구연합(GANHRI) 고령화실무그룹 의장을 수행하면서 한국 인권기구의 위상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내부 상황은 후반부로 가면서 최악이었다. 주요 의사결정을 하는 전원위원회와 상임위원회는 지난해 여름부터 막말과 고성으로 얼룩졌고 올해 6월 중순부터 8월26일 전원위를 열기까지 아예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송 위원장은 지난 5월 뉴욕 유엔 본부에 갔을 때 다른 나라 인권기구 위원과 실무자들이 “위원장님 괜찮으세요? 우리 모두 걱정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해 깜짝 놀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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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이 21일 오후 서울 중구 삼일대로 나라키움 저동빌동 15층 인권위원장 집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기 직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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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부덕과 부족함 때문임을 흔쾌히 인정한다”며 위원회 파행에 대한 책임감을 밝힌 송 위원장은 ‘회의 때마다 쏟아진 숱한 모욕과 인신공격을 어떻게 인내하고 삭였느냐’는 질문에는 “집무실에서 훤히 보이는 남산에서 위로받았다”고 했다. 더불어 “앞으로는 인권위 회의상황을 회의록에만 담지 말고 영상중계 형태로 하자는 제안이 있던데, 참 좋은 의견 같다”는 뼈있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다음달 3일 인사청문회를 앞둔 안창호 후보자에 대해서는 “합리적이고 온화한 성품과 지혜를 갖춘 분으로 알고 있다”면서 “위원장으로 임명될 경우 파행으로 치달아온 인권위를 정상화시키고 위축된 직원들의 사기를 높여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안 후보자가 줄곧 반대해온 포괄적 차별금지법(평등법)과 관련해 “차별금지법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은 한 나라의 국격, 인권 수준이 어떠한지를 평가하는 일종의 척도”라며 안 후보자와는 다른 견해임을 뚜렷이 했다. 두 사람은 헌법재판소에서 함께 일한 기간이 6개월가량 겹치고, 대전중학교 동문 사이다.



송 위원장은 ‘사이다’ 같은 직설화법과는 거리가 멀었다. 인터뷰 질문 하나하나에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길고 꼼꼼한 답변을 준비했다. 노란봉투법에 관해서는 헌법재판관 출신답게 법리적인 해석을 상세히 이어나갔다. 인터뷰는 예상 시간의 두 배를 훌쩍 넘겼다. 다음은 일문일답.





■ ‘막장’ 회의 경험은 처음…“유연견남산”에서 위로





― 안창호 후보자를 만났나. 두 분 생각은 많이 다른 것 같다.



“1시간가량 가볍게 식사하면서 옛날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와 생각이 같고 다른 건 큰 상관이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언론으로 접하는 것에 대해서만 말씀드리면, 기존 인권위에서 밝혀온 입장과 그분의 개인적 소신, 신앙심이 가리키는 방향이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임명된다면 개인적 신앙심과 인권위가 추구하는 보편적 인권을 어떻게 잘 조화롭게 조정해 나가실지가 한 편으로 궁금하다.”



― 인권위의 전원위와 상임위 회의는 정말 특별하다. 인권위를 방청한 분들마다 ‘이런 막장회의가 다 있냐’고 놀란다. 이런 경험이 처음인가?



“6년간 헌법재판소(헌재)에서 재판관 9명이 토론하는 경험을 한 적 있다. 헌재는 인권위와 마찬가지로 대통령·국회·대법원 등 각기 다른 경로로 추천된 9명이 모여 토론을 하는 것인 만큼 의견 차이가 없을 수 없다. 항상 상대방이 나와 다른 의견을 가졌더라도 그 부분을 경청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또 절충이나 조정할 여지가 있는지를 보고 논리적으로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서 노력을 했다. ‘모범적인 토론 장면을 직접 보고 겪었다’고 생각했다. (3년의 재임 기간 중) 인권위 회의 전반부는 그런 경험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후에는 통제하기 쉽지 않았다. 어떤 주장에 대해서 반론을 하면 그 반론이 옳은지 그른지는 별로 제대로 다뤄지지 않고 그저 ‘자기 주장을 이해하지 못했다’, ‘자기주장을 들은 체 만 체한다’는 투로 좀 전의 주장을 그냥 반복하는 그런 양상이 됐다.”



― 극도의 인내심을 갖고 회의를 주재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인내의 동력은 무엇이었나.



“제 방 집무실에서 넓은 유리창으로 남산의 전경이 한눈에 확 다가오는데 그것이 아주 푸근하고 안정적이다. 간혹 그것을 바라보면서 호흡을 가다듬을 수가 있다. 도연명의 ‘음주’라는 시를 보면, 맨 마지막에 ‘동쪽 울타리 아래 국화꽃 따며 편안히 남산을 바라본다‘는 대목이 나온다. 채국동리하 유연견남산(采菊東籬下 悠然見南山). 물론 그 남산이 이 남산은 아니다. 그런데 ‘유연견남산’이라는 그 다섯 글자가 제 마음에 쏙 들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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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삼일대로 나라키움 저동빌딩 15층 국가인권위원장 집무실 창문으로 보이는 남산. 송두환 인권위원장은 창문 밖 남산에서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인권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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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적 충격받은 직원들’ 생각하면 착잡





― 일부 상임위원들의 거친 공격과 횡포를 너무 제압하지 못해 전원위 등이 엉망진창으로 흐르게 한 게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그렇지 않다고 항변할 의사가 없다. 그런 측면이 분명히 있다. 다만 변명을 붙이자면 제가 만약에 소싯적이라면, 그리고 현재 앉아 있는 자리가 인권위가 아니라면 과격한 대응도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해명할 것은 하면서도 최대한 인내하고 기다리는 방법밖에는 선택하기가 어려웠다. 궁극적으로는 위원장인 제가 부덕하고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을 꼼짝없이, 아니 흔쾌히 인정하는 바이다.”



― 일부 상임위원들의 언행과 관련하여 병가를 내는 등 정신적 피해를 호소하는 사무처 직원들이 있었다.



“그 부분 얘기를 하게 되면 먼저 제 자신을 탓하고 싶은 마음이다. 직원 중에 정신적 충격을 받고 병원 치료를 받은 사례, 또 상당 기간 병가를 냈던 사례, 심지어는 사표를 쓴 직원들의 이야기도 들었다. 그런 부분을 제대로 추스르거나 더 큰 힘이 되어주지 못하였다는 생각에 여러 가지로 착잡하다. 인권위원들은 인권위의 중요한 의사 결정 주체라는 점이 틀림없긴 하지만, 3년의 임기 동안 심의·의결 업무를 담당하다가 이후에는 인권위를 떠나는 사람이다. 인권위 직원은 줄곧 위원회를 지키고 업무의 연속성, 일관성을 유지하도록 역할을 쭉 해오신 분들이다. 미리 문제의식을 갖고 의제를 발굴하고, 기초조사를 하고, 검토를 하고, 이런저런 검증 과정을 거치고, 그래서 결국은 정책 권고 안건에 관해서 작품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사무처 직원이다. 이런 사무처 직원들의 역할이 정당하게 평가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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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30일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용원 상임위원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김용원 위원 오른쪽은 이충상 상임위원, 앞 왼쪽은 송두환 인권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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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큰 성과는 ‘민망하고 곤혹스런’ 군인권보호관 출범





― 재임 기간 중 본인의 가장 큰 성과를 뽑아달라. 가령 전임 위원장들은 ‘이라크전쟁 반대 의견표명, 국가보안법 폐지 권고’(김창국), 사형제 폐지 권고, 대체복무제 도입 권고(조영황), 특수형태 근로종사자 보호방안 의견표명(안경환), 차별금지법 제정 의견표명(최영애)이 있었다.



“군인권보호관 제도의 출범을 꼽아야겠다. 2014년 윤 일병 사건을 통해 첫 논의가 촉발됐다. 이후 유사한 사례들이 발생하고 유가족들이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군 자체에 군 인권문제를 맡겨서는 안 되고 외부적으로 개입하고 필요하면 통제할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끈질기게 하고, 또 시민단체들이 공동으로 노력한 결과 2022년 7월1일 군인권보호관 제도가 정식으로 출범했다. 그러나 인권위 내에서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는 논의가 무르익을 무렵부터 군인권보호관제도 출범에 모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는 군 인권 피해자 유가족들, 그리고 군 인권 활동가들과 군인권보호관이 대립 갈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급기야는 그분들을 수사 의뢰하는 사태까지 발생해서 지금은 서로 비난하고 원망하는 관계로 치달았다. 이것을 성과라고 이야기하기가 무척 민망하고 곤혹스러운 지경에 있다. 다만 우여곡절이 있더라도 결국에는 제자리를 잡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또한 전통적인 자유권과 관련한 여러 가지 인권침해 문제와 별개로 종전에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인권 문제들이 부각되는 경우가 있었다. 여기에 인권위가 발 빠르게 문제의식을 느끼고 대처해야 할 방향을 제시한 경우가 크게 4가지가 있었는데 △기후위기와 인권 문제 △신기술의 발달과 지능정보 사회의 전개에 따른 인권 문제 △사회적 재난 참사와 관련한 인권 문제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의 노인 인권문제다. 이 분야에서 인권위가 선두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자부한다. 실시간 원격 얼굴인식 기술의 인권 침해적 성격을 지적하며 당분간 도입·활용을 자제하라고 한 것이 한 예가 되겠다.”





■ ‘인권위원 선출’은 단일 독립위원회로





― 재임 중 후반부는 윤석열 정부 아래서다. 정부가 바뀐 뒤에 인권위 독립성 문제를 특별히 체감한 적이 있는지.



“인권위 업무수행 그 자체에 대해서는 독립성이 어느 정도 지켜지고 있고, 특별한 장애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 부분이 실질적으로 뒷받침되기 위해서는 조직·예산·회계 측면에서도 독립적인 지위가 보장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아쉽다. 다행스럽게도 이런 부분에 문제의식을 가진 국회의원들께서 인권위 예산의 독립성을 강화해 주기 위한 인권위법 개정 발의안을 냈다고 알고 있다. 최근의 걱정은 인권위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인권은 국내 정치 상황에 의해서 흔들리면 안 되는 보편적 가치다’라는 인식이 투철하지 못하면 인권위 업무상 독립성이 안에서부터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 결국 인권위원으로 오면 안 되는 사람이 인권위원으로 와서 생긴 문제 아닌가.



“인권위원 추천 또는 지명 경로가 세 갈래로 나뉘어 있다. 대통령·국회·대법원에서 어떤 사람을 어떻게 선발해서 지명할지에 대해서는 각자 재량에 맡기고 있는데, 여러 가지 허점을 내포할 수 있다. 세계국가인권기구연합(GANHRI)에 각국 인권기구 등급 심사를 하는 소위원회가 있다. 그쪽에서 대한민국 인권위원 선출을 위해 단일 독립 선출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수년 전부터 권고해오고 있다. 인권위법 개정을 통해 대안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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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환 인권위원장은 2023년 7월1일 최초로 서울퀴어축제 현장을 찾아 성소수자 부모들의 의견을 청취했다. 인권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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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별금지법에 대한 극단적 주장 안타까워





― 안창호 후보자는 그동안 여러 저서와 강연을 통해 차별금지법(평등법)에 대한 강력한 반대 의견을 밝혀왔다. 위원장께서는 차별금지법을 어떻게 보시나.



“인권위 차원에서 가장 오래 묵은 숙제가 평등법이다. 처음 위원장으로 왔을 때 15년 묵었다고 했는데, 그로부터 또 시간이 흘렀다. 원론적으로 평등법은 헌법이 선언하는 평등권을 좀 더 구체적으로 조문화하자는 것으로 이해하면 진즉 이뤄질 수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차별금지법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은 한 나라의 국격과 인권 수준이 어떠한지를 평가하는 일종의 지표, 척도로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차별금지법, 평등법을 갖추지 않은 나라는 극히 드문데, 그중에 우리가 속해 있다. 국제회의에 나가보면 대한민국이 경제·군사의 측면에서 상당한 위치에 있으면서도 평등법을 아직 갖추지 못하는 것에 대해 같이 근심해주고 염려를 해주는 형국이다. 인권위 조사 결과 대략 국민 10명 중 7명이 평등법 제정은 바람직하다고 의견을 표명한다. 국회의원 한 분 한 분 만나보면 개인적으로는 평등법을 다들 찬성하면서도 향후 전망에 대해선 낙관적으로 말을 안 한다. 혹시라도 선거 국면에서 불리하게 불똥이 튀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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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이 21일 오후 서울 중구 삼일대로 나라키움 저동빌동 15층 인권위원장 집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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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부 기독교계에서 차별법이 제정되면 “동성애가 확산되고, 에이즈가 창궐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안창호 후보자는 저서에서 더 극단적인 주장도 폈다.



“그 부분이 안타깝다. 평등법에 관해서는 상당한 오해가 있고, 말하자면 그러한 잘못된 정보를 고의로 퍼뜨리면서 오해를 부추기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성소수자가 신앙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설교를 하면 그것이 형사범죄가 되어서 처벌을 받는다거나 동성애가 사회에 만연하게 될 것이라는 염려다. 대체로 그런 대목을 접하고 사람들이 뒷걸음치는 것 같다. 지난 21대 국회 때는 최초 인권위가 만든 평등법 초안이 하나 있고, 그 초안을 일종의 시발점으로 해서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4가지 입법 발의안이 있었다. 인권위에서 4가지 법안을 비교대조표까지 만들어가면서 내용을 분석했는데 지금 이야기하는 그런 것들은 전혀 근거가 없다. 그런 우려를 조금이라도 불식시키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지난 3월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를 구성하고 있는 7대 종단 지도자를 모시고 오찬을 했다. 그 자리에는 유교회를 대표하신 분도 계셨다. ‘성소수자들의 결합인 동성애 부부에 대해 법률적 효력을 즉시 인정을 하자고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당장은 동성결합을 하나의 생활공동체로 인정해서 건강보험 기타 사회적 제도상에서의 하나의 단위로 인정해 주는 것에서 출발하자, 당장 지금 과격하게 바꾸자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씀을 드렸더니 다 동의를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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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3월27일 노무현대통령이 송두환 대북송금 득별검사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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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위 정족수’ 행정법원 판결, 흠잡을 데 없어





― 지난 7월 서울행정법원이 3명의 위원 중 1명만 반대해도 기각한다는 ‘소위 의결정족수 해석’에 대해 위법하다고 판결했고, 인권위가 항소를 포기했다. 김용원·이충상 의원은 판결을 무시하더라.



“제 의견은 전혀 다르다. 행정법원 판결을 누구보다도 꼼꼼히 읽었다. 행정법원 재판부가 이 문제를 아주 쉽게, 그냥 범상한 여러 사건 중에 하나처럼 가볍게 생각하고 한 것이 아니다. 인권위 내부에서 소위원회 정족수에 대해서 쌍방이 한 각각의 주장을 대등하게 다 판단자료로 제공했다. 그것을 꼼꼼하게 검토하셔서 결론뿐만 아니라 결론에 이르는 과정을 굉장히 성의있게, 법리적으로 흠을 잡을 데가 없을 정도로 잘 판단해 주었다. 그래서 애당초 다른 의견을 표시했던 위원님 중에서도 ‘이 판결문이 잘 논점을 정리해서 승복하지 않을 수 없구나’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그런데 정반대로 형편없는 판결이라고 혹평해서 어떤 근거로 그런 건지 궁금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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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10일 서울 이태원 참사 현장을 방문한 송두환 위원장. 오른쪽은 박진 사무총장. 인권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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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원 특별법 의견표명 보람, 노란봉투법 후속조치 못해 아쉬움





― 재임중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무엇인가.



“이태원 특별법과 관련한 의견 표명이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직후 위원장 명의의 성명을 냈고, 진상규명, 피해자 지원, 알 권리 보장 등등의 의견 표명을 했다. 그 이후에 이태원 참사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법의 필요성, 피해자 지원 등에 관해 의견을 냈다.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특별법이 제정되었고 특별위원회가 활동을 개시할 예정으로 있어서 가시적 성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인권상황보고서를 2022년, 2023년 두 차례에 걸쳐 낸 일도 꼽을 만하다. 하지만 ‘꼭 내야 하느냐. 동의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위원들이 등장하면서 탄력을 잃었다. 2024년에도 보고서를 완성한 상태인데, 전원위가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않아 출간을 무작정 늦추는 상황이다. 그래도 2년 연속 인권상황보고서를 출간할 수 있었던 일은 귀중한 성과라고 생각한다.”



―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라면.



“노란봉투법에 대해 의견표명을 한 뒤 후속조치를 못 한 것과, 화물연대 업무개시명령과 관련한 제도개선 권고 및 의견표명이 상임위에서 2 대 2 의견으로 갈려 부결 처리했던 일이 몹시 안타깝다. 노란봉투법의 경우 최근에 대통령에 의해 두 번째 거부권이 행사가 되었는데, 거부권 행사한 이유가 위헌적이고 위법한 내용이 있어서라고 한다. 앞서 말한 평등법처럼 노란봉투법에 대해서도 어떤 오해가 있다고 생각한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2·3조 개정에 관한 법률안’이 정식 명칭인데 사용자 정의 규정을 좀 바꾸자는 것이다. 비록 직접적인 계약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에 대해서 실질적으로 지배력 또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를 사용자로 보자는 얘기다. 그래서 원청·하청 또는 재하청 그런 형태를 통한 간접 노동형태의 경우도 이제 사용자로 보자고 하는 건데, 이것을 실질적 법치주의로 가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봐야 한다. 변형된 근로계약 형태가 막 나오는데 법 제도가 현실로부터 동떨어져 딴전 피우면 안 되는 것이다. 또 하나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는 민법상 자기책임 원칙의 복원을 키워드로 설명할 수 있다. 정당한 쟁의행위 범위를 벗어난 어떤 사태가 있었을 때의 손해배상은 지위 또는 관여 정도에 따라 개별 책임을 따져야지 무조건 연대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이러다 보니 사용자 쪽에서는 누구든지 마음에 안 드는 사람한테 과도한 책임을 씌워 청구하고, 그게 무기가 되는 것이다.



화물연대 업무개시명령도 우리 헌법이나 법률에 비춰볼 때 정당성이나 근거가 의심될 뿐만 아니라 실은 국제 노동기구, 노동협약, 결사의 자유 모두 어긋나는 것이었기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려고 했다가 불발됐다. 또 인권정책기본법이 추진되다가 21대 국회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된 것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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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후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이 재임 중 마지막으로 주재한 전원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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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기 위원장, 인격권 침해받은 직원들 추슬러주길





― 차기 위원장에 어떤 말씀을 하시고 싶은지. 꼭 해결되었으면 하는 과제는.



“인권위 운영의 정상화가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파행 상태가 지속된다면 국민들이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새로 오시는 위원장이 새로운 분위기에서 건설적인 토론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중심을 잡아주셨으면 하는 생각이 첫 번째로 든다.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상황을 물려드리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해 무척 유감스럽고 미안하다. 그 다음으로는 부분적인 이야기이지만, 위원회 의사결정 과정을 지적한 분들 중에서는 인권위 회의 상황을 단순히 회의록을 남기는 정도가 아니고, 영상중계 형태로 하는 것은 어떤가, 국민들이 주시하는 속에서 회의가 진행되면 위원들이 책임 있는 자세로 참여하기도 하고 국민들도 위원들의 활동을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은가 하는 의견이 나왔다. 참 좋은 의견인 것 같다. 개별 진정 사건은 개인정보나 사생활보호 문제가 있어 어렵겠지만, 일반 안건 같으면 그렇게 하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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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이 21일 오후 서울 중구 삼일대로 나라키움 저동빌동 15층 인권위원장 집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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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앞서 말씀드렸듯 직접적으로 인격권 침해를 받은 직원과 이를 주변에서 목격하거나 전해 들은 직원들, 그리고 회의가 제대로 진행이 안 되고 의제가 쌓여가는 상황에서 낙심하고 실망하고, 그래서 위축되어있는 직원들이 상당수 있다. 그런 직원들을 격려하고, 사기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해주시는 게 필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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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29일 경기도 안산 민주시민교육원 내 4.16기억교실 방문. 인권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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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권위 파행이 수치로 나타난 진정접수 하락





― 인권위 진정 접수건수가 500건 가까이 줄었고 진정처리 건수는 20% 넘게 줄었다. 특히 ‘침해 사건’ 권고 건수는 1/3로 대폭 하락했는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건가.



“전년 대비 진정 접수가 600건 정도 줄어들었는데, 우리 위원회에 대한 국민적 기대나 신뢰 하락이 이런 수치로 나타난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또 진정처리 건수와 권고 건수의 하락은 최근 위원회 각종 회의의 파행 상황이 이런 수치로 나타나는 것인지 우려되어 마음이 무겁다.”



― 퇴임 뒤 계획은.



“임기를 마치고 나면 조금 쉬면서 그동안 못했던 일을 하려고 함. 찾아뵙고 인사드릴 분도 있고, 가보고 싶은 곳도 있다. 그동안 인권위원장이란 무게감 때문에 편하게 만나지 못한 분들께 죄송한 말씀, 그리고 고마운 말씀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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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환 위원장이 지난 5월17일 인권위가 2022년 국민훈장을 추천했으나 외교부가 보류한 일제강제징용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를 위로하고 있다. 인권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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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이 21일 오후 서울 중구 삼일대로 나라키움 저동빌동 15층 인권위원장 집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송두환 위원장 약력



1949년 영동 출생/ 경기고 및 서울대 법대/ 사법연수원 제12기/ 서울지방법원북부지원 판사/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 춘천지방법원 영월지원 판사/ 서울형사지방법원 판사/ 대북송금 특별검사/ 중앙인사위원회 비상임위원/ 헌법재판소 재판관/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장/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장/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이사/ 법무법인(유한) 한결 대표변호사/ 국가인권위원장/ 아시아·태평양 국가인권기구연합(APF) 의장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녹취·정리 조영은 교육연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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