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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3 (금)

"미국인 42%가 비만…K헬스케어, 美진출 지금이 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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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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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주 눔 의장은 2005년 한국을 떠났다. 달랑 500만원을 든 채 미국으로 향한 것이다. 그랬던 그가 19년 만에 기업가치 37억달러(약 5조원)의 유니콘 기업을 일궜다.

디지털 헬스케어 플랫폼 기업 '눔(Noom)'의 정세주 의장은 지난 22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하얏트 리전시 SF 호텔에서 열린 '2024 한미과학자대회(UKC)'에서 인터뷰하며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창업에 도전한 것은 의대 입학에 실패하며 생긴 내면의 열등감을 타파하고, 내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해서였다"면서 "더 큰 세상을 꿈꾸며 인생의 리셋을 추구했다"고 말했다.

1980년생인 정 의장은 의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의사 아버지가 미국에서 연수 중일 때 태어나 미국 국적과 한국 국적을 동시에 갖고 있다. 2세 때 한국에 들어왔고 쭉 전남 여수에서 살았다. 아버지 바람대로 의대 진학을 시도했지만 기대만큼 성적이 따라오지 못했다. 점수에 맞춰 1999년 홍익대 전자전기공학과에 입학했다.

학교 공부는 내팽개치고 헤비메탈 음악에 빠졌다. 그러다 도리어 기업가 기질이 드러났다. 좋아하는 헤비메탈 음악 관련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이커머스 시장에 진출해 해외 희귀 음반을 수입해서 국내에 팔았다. '바이하드'란 프로덕션을 차린 지 6개월 만에 1억원을 벌었다. 정 의장은 "사람은 각자의 재주나 재능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며 "그러면서 그간 주도적이지 못하고 끌려다녔던 삶에서 탈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대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셨다. 그는 대학을 자퇴한 뒤 입대했고 제대 후 바로 미국행을 감행했다. 여러 지역 중에서도 뉴욕을 택했다. 정 의장은 "한국과 가까운 로스앤젤레스 지역으로 가면 의지가 약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한국과 최대한 떨어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손에 든 것은 500만원뿐이었고 휴대전화에도 한국에 있는 어머니 번호밖에 없었다. 정 의장은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했다"며 "미국판 벼룩시장을 펼쳐 집을 구하고, 스타트업 모임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수세미, 블라인드, 휴대전화 등을 닥치는 대로 팔았다. 틈틈이 영어 공부도 했다. 한국인만의 저돌적인 마인드가 발동된 것이다. 눔을 창업하기 전 브로드웨이 공연팀 아시아투어 기획 사업에도 실패했다. 투자가 끊겨 빚만 지고 뉴욕 할렘가로 집을 옮겼다.

한 모임에서 우연히 구글 엔지니어인 아텀 페타코브를 만나며 눔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페타코브와 정 의장은 과학기술과 건강을 결합한 사업을 추진하는 데에 뜻을 같이했다. 스마트폰을 가지고 운동하면 자동으로 운동 내용을 기록하는 '카디오트레이너' 앱을 먼저 개발했다. 눔은 이 앱에 식단 관리 등을 더한 형태다. 정 의장은 "사업 아이템을 먼저 찾기보다 '과학기술로 사람들을 어떻게 건강하게 만들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서 사업을 시작했다"며 "어떻게 하면 싸고 효과적으로 건강 증진이 가능할지 고민해 나온 성과"라고 말했다.

미국 인구의 약 42%는 비만이다. 그만큼 헬스케어 시장의 성장세가 가파르다. 미국 의료보험 및 의료보험 서비스 센터(CMS)에 따르면 미국의 헬스케어 지출은 지난해 기준 4조8000억달러(약 6379조원)에 이른다. 이는 전년 대비 7.5% 증가한 것으로, 미국 국내총생산 성장률 6.1%를 앞지른다. 이에 따라 눔 매출도 성장 중이다. 2016년 흑자 운영에 들어가 2019년 2억달러였던 매출이 2022년 4억달러로 2배가 됐다.

물론 눔의 미래가 온통 장밋빛인 것만은 아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헬스케어'가 주목받으면서 성장세가 가팔라진 측면이 있다. 엔데믹으로 돌아서고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 열풍'으로 헬스케어 플랫폼 기업이 시련을 맞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와 관련해 정 의장은 "사업을 시작하고 위기가 아닌 적이 없었다"며 "이 또한 극복해야 할 또 하나의 도전일 뿐"이라고 말했다.

정 의장은 한국 헬스케어 기업들의 미국 진출을 독려했다. 정 의장은 "한국의 우수 헬스케어 기업들이 미국에 진출하는 것을 추천한다"며 "원격의료 진료 등 규제 때문에 한국에서 성장하지 못하는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들이 미국에서 크게 환영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진출에 있어 확실한 파트너를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원격으로 미국 시장을 두드리는 것에는 한계가 존재하기에 미국에서 사업을 잘하는 파트너를 구하거나 인재를 영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 의장은 한인 기술 창업을 돕기 위한 역할에도 공들일 계획이다. 82스타트업과 협력해 비영리단체인 '유나이티드 코리안 파운더스'를 설립했다. 정 의장은 "한인 창업인을 조금 더 체계적으로, 그리고 영속적으로 돕기 위한 조직"이라며 "매년 1월 서부, 10월 뉴욕에서 창업인을 위한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여전히 여수 갓김치와 굴을 넣은 라면을 즐겨 먹는다는 정 의장은 "과학기술을 활용해 더 많은 사람에게 건강을 전하는 삶의 미션을 좇으며 살아왔다"면서 "지금도 이 미션을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꾸준히 한결같이 노력해 더 많은 사람들의 건강 증진을 도모하겠다"고 밝혔다.

[샌프란시스코 고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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