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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이슈 인공지능 시대가 열린다

생성형 AI, ‘언제나 환영’일 순 없다[산업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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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생성 AI 달리3로 만든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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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영국 런던의 독립영화관 ‘프린스 찰스 시네마’는 계획했던 영화 상영을 취소했습니다. 영화 제목은 ‘마지막 시나리오 작가(The Last Screenwriter)’. 유명 시나리오 작가 잭이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최첨단 각본 작성 시스템을 접하면서 혼란을 겪는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관에서 세계 최초로 상영을 할 예정이었죠.

왜 상영이 취소됐느냐고요? 영화 각본을 AI가 생성한 것에 반발이 컸기 때문입니다. 각본을 쓴 주체는 인간이 아니라 오픈AI의 챗봇 챗GPT 4.0였습니다. 제작진은 “AI가 전적으로 집필한 최초의 장편영화”라고 홍보했습니다. 영화관 측은 “이 영화는 AI가 예술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한 논의를 희망하는 한 영화 제작자가 진행한 ‘실험’이라고 들었다”며 상영 추진 배경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AI가 각본을 쓴 것에 대한 대중의 강한 우려에 따라 상영을 취소했다”고 전했습니다.

생성형 AI가 한 편의 완성된 글을 써주는가 하면 진짜 같은 이미지에 영상까지 뚝딱 만들어주는 세상입니다. 텍스트뿐만 아니라 이미지, 음성 등 다양한 유형의 정보를 인식하고 사람 목소리로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단계까지 나아갔습니다. 하지만 대세로 떠오른 생성형 AI를 향한 반감도 만만치 않습니다. 특히 인간이 창작활동을 하는 예술 분야에서 두드러집니다. AI가 붓과 같은 예술 도구의 하나로 자리잡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예술가를 위협하고 있다는 위기감도 상당합니다.

“AI은 우리의 미래가 아니다.” 지난 19일 아이패드 전용 드로잉 애플리케이션(앱) ‘프로크리에이트’는 자사 앱에 생성형 AI 기술을 도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회사는 항상 인간이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생각으로 제품을 개발하는데, 생성형 AI는 이런 가치와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죠. 생성형 AI가 인간이 만든 예술의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우려 속에 나온 ‘AI 반대 선언’은 창작자들의 환영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AI 모델 훈련에 창작자 콘텐츠가 무단으로 활용되고, AI 기술 확산에 따라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다고 걱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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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소니 월드 포토그래피 어워드’에서 수상작으로 선정된 AI 활용 이미지. ⓒBoris Eldagsen


지난해 국내에선 AI 기술을 이용한 웹툰 신작이 극도로 낮은 별점을 받았습니다. AI가 작품을 무단 도용해 작가들의 권리를 침해한다며 ‘AI 웹툰 보이콧’ 움직임도 일었습니다. 그 결과 웹툰 플랫폼들이 공모전에서 AI 기술을 적용한 작품의 출품을 금지하기도 했습니다.

독일의 한 사진작가는 세계적인 사진대회 ‘2023 소니 월드 포토그래피 어워드’에 일부러 AI가 만든 이미지를 출품한 뒤 수상작으로 선정되자 수상을 거부했습니다. “AI와 관련한 논쟁을 촉발하고 싶었다”는 것이 출품 이유였습니다.

지난해 미국 대중음악계 최고 권위를 지닌 그래미 어워드는 완전히 AI로 생성된 곡은 수상 자격이 없다는 규정을 만들었습니다. 곡을 만드는 데 AI의 도움을 받는 건 괜찮지만 AI로만 제작한 노래는 상을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AI를 둘러싼 위기감은 산업에 영향을 미칩니다. 지난해 미국 작가조합과 배우조합이 동반 파업에 나선 핵심 이유 중 하나도 AI였습니다. 작가도, 배우도 AI가 대체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수개월간 이어진 파업에 각종 행사와 영화 개봉 일정이 밀렸습니다. 작가·배우조합이 제작자 측과 AI 활용에 관한 규칙을 합의하며 막을 내렸습니다. 지난달 말부터는 비디오 게임 성우와 모션캡처 배우들이 게임사를 상대로 AI 관련 보호를 요구하는 파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거대 기술기업들도 거센 반발에 직면하곤 합니다. 구글은 2024 프랑스 파리 올림픽을 맞아 미국에서 공개한 생성형 AI 광고를 중단했습니다. 광고는 아버지가 AI ‘제미나이’에게 어린 딸이 스포츠 스타에게 편지를 쓰는 것을 도와달라고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을 표현하는 데 AI를 사용할 것을 제안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구글은 “우리는 AI가 인간의 창의성을 향상시키는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지만 결코 대체할 수는 없다고 믿는다”고 해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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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아이패드 프로 광고. 애플 공식 유튜브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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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도 지난 5월 피아노, 카메라, 페인트통 등을 부수는 신형 아이패드 프로 광고를 내놨다가 역풍을 맞고 중단했습니다. 회사는 창의적인 작업에 쓰이는 도구들이 신제품이 모두 들어있다는 메시지를 의도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창의성과 예술성을 조롱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오픈AI는 지난 5월 선보인 AI 모델 GPT-4o에 사용된 AI 음성이 영화 <그녀(Her)>에 나오는 AI 비서 목소리의 주인공인 스칼릿 조핸슨 목소리를 무단으로 도용했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오픈AI는 다른 전문 배우의 목소리라고 해명했지만 해당 음성을 삭제했습니다. 오픈AI, 마이크로소프트 등 생성형 AI 개발사들은 AI 학습에 콘텐츠를 허락 없이 이용했다는 이유로 창작자와 언론사로부터 저작권 침해 소송도 당했습니다.

거스를 수 없는 흐름처럼 보이는 AI 물결에 반기를 든 이들은 ‘AI는 만능’이라는 인식을 경계해야 함을 깨닫게 합니다. 기술이 창작자의 권리를 훼손하지 않도록 사회의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는 메시지도 던지고 있습니다.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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