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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3 (금)

‘디커플링의 역설’… 기술 자립 中, 글로벌 사우스 공략 가속 [세계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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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정부 ‘과학기술 R&D’ 70兆 지원

세계 첫 달 뒷면 샘플 채취 ‘우주굴기’

美 GPS 대항할 베이더우 시스템 구축

아시아·유럽 등 120여개국에 서비스

화웨이 독자 OS, 中 점유율 애플 추월

중국판 챗GPT ‘어니봇’ 이용자 급증

中, 새표준 정립… 개도국 맹주로 입지

중국은 최근 경제 침체 위기 속에서도 과학기술 발전에는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고 있다. 지난달 진행된 제20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3중전회)는 미국과의 지정학적 긴장 속에서 과학·기술 자립을 이뤄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일궈내려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야망을 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위성 시스템과 우주항공 분야에서 독자 영역을 개척해온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전쟁 이후 반도체 등 기술 자립을 가속화하고 있다. 미국 등 서방의 제재가 오히려 중국 기술 자립에 도움이 됐다는 시각도 있다. 특히 개발도상국의 맹주를 자처하는 중국은 이렇게 발전시켜온 과학기술을 글로벌 사우스(주로 남반구에 위치한 신흥국과 개도국) 국가들에 전달하면서 새로운 국제표준을 만들어가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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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국가항천국 작업자들이 지난 4월30일 중국 네이멍구자치구 둥펑 착륙장에 착륙한 유인우주선 선저우 17호 귀환 캡슐을 열어 우주인들을 맞이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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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분야 기술 자립… 글로벌 사우스 공략

중국의 과학기술은 우주 분야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세계 최초로 달 뒷면 샘플을 채취한 중국 우주탐사선 ‘창어(嫦娥) 6호’는 53일간의 임무를 마치고 지난 6월 성공적으로 지구로 복귀했다. 창어는 중국 신화에 나오는 달의 여신 항아를 가리키는 말이다. 창어 6호가 가져온 달 뒷면의 토양과 암석 샘플은 달의 기원과 구조를 파악하는 연구 자료로 활용된다.

중국은 미국과 러시아 등에 비해 출발이 늦었지만 최근 달 탐사 분야에서는 가장 앞서나가는 국가로 꼽힌다. 2004년부터 달 탐사 프로젝트 창어를 시작했고, 2030년까지 유인우주선을 달에 보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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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미국은 내년 우주인을 태우고 달 궤도를 비행할 ‘아르테미스 2호’를 발사할 예정이다.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은 인류의 첫 달착륙 50주년을 맞은 2020년 새로운 달 유인 탐사를 위한 ‘아르테미스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아르테미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달의 여신이다.

중국은 2020년 미국의 위성 위치확인 시스템 GPS(위성항법장치)에 대항할 베이더우(北斗·북두칠성) 시스템 구축을 완성했다. 중국은 미국 GPS에 의존하지 않는 독자적 민간·군사 영역 위성항법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1994년부터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중국은 이를 바탕으로 미국 GPS가 수십년간 독점에 가까운 지위를 누려온 국제 위치확인 서비스 시장에 도전장을 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이 2019년 중국 화웨이를 제재 명단에 포함시키자 화웨이는 자체 운영체제(OS) ‘훙멍(鴻蒙)’을 내놨다. 출시 당시에는 짝퉁 안드로이드 정도로 인식되며 중국 국내에서도 외면받았지만 지속적인 업그레이드 끝에 중국 시장점유율 1위로 올라섰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훙멍은 올해 1분기 점유율 17%를 기록해 애플의 iOS(16%)를 넘어섰다. 화웨이는 훙멍을 스마트폰을 넘어 전기차와 로봇 등 자사 기기와 연결해 독자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안드로이드 대용으로 만들어진 훙멍이 오히려 기술 자립의 상징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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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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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미국 등 서방이 첨단반도체 기술에 대한 중국 제재안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중국 기업들의 자체 인공지능(AI) 관련 기술도 향상하고 있다. 오픈AI의 생성형 AI ‘챗GPT’가 중국 서비스를 중단하면서 바이두가 지난해 출시한 AI 챗봇 ‘어니봇’의 사용자가 2억명을 넘은 것으로 전해졌다. 애플이 아이폰16에 이 모델을 탑재하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서방의 제재에도 과학기술 분야에서 새 표준을 다수 정립한 중국은 개발한 기술을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 공유하며 개도국의 맹주 자리를 확고히 하려는 모양새다. 중국은 독자 운영 중인 우주정거장 ‘톈궁’에서 연구에 참여할 국가들을 모집하고 있다. 중국 관영언론은 톈궁이 본격 운영에 들어가자 “여러 나라에서 우주 비행사를 보내도 되느냐는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베이더우 시스템은 중국을 포함해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동유럽, 서아시아, 아프리카 등 120여개국에 서비스돼 국토 측량, 정밀 농업, 스마트 항구 구축 등에 이용되고 있다.

특히 중국은 베이더우와 화웨이를 앞세워 아프리카 지역에서의 통신 서비스를 대폭 확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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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예산 70조… 대규모 투자로 견인

중국이 과학기술 분야에서 발전을 이어가는 것은 정부의 아낌없는 지원 덕이 크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의 최고 수준 연구 성장은 둔화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며 “미국·유럽·일본이 지배하는 과학 세계 질서가 끝나가고 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올해 중국의 과학기술 연구개발(R&D) 예산은 3708억위안(약 70조8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0%가량 늘었다. 리창(李强) 국무원 총리는 R&D 예산을 발표하며 “과학기술에 대한 자립과 힘을 증진하기 위해 더 빠르게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R&D 예산은 2019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증가한 것으로, 이 중 기초연구 분야 예산은 지난해보다 13% 늘었고 50% 이상을 35세 이하 청년 과학자에게 배정한다. 또 중국은 건국 75주년을 맞아 훈장과 명예 칭호를 수여할 예정으로 14명의 대상자 중 레이더 전문가, 지구물리학자, 유인우주 프로그램 전문가 등 다수가 과학 분야 출신인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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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국기인 오성홍기가 지난 6월4일 달 뒷면에 펼쳐져 있다. 이 오성홍기는 중국 우주탐사선 창어 6호에서 설치한 것이다. 신화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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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4일 달 표면에 착륙한 중국 우주탐사선 창어 6호의 모습. 창어 6호는 세계 최초로 달 뒷면 토양 채취에 성공했다. 신화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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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투자와 대우는 실적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영국의 과학정보회사 클래리베이트에 따르면 2003년 미국은 중국보다 20배 많은 ‘영향력 있는 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지금은 중국이 논문 발표에서 세계 1위로, 중국이 내는 영향력 있는 논문의 수는 미국과 유럽연합(EU)을 합친 것보다 많다.

권위 있는 저널의 게재된 논문의 수를 지수화하는 ‘네이처 인덱스’에서도 중국은 2014년 첫 발표 때 미국의 3분의 1 수준에 머문 2위였지만 지난해 1위에 올랐다.

베이징=이우중 특파원 lo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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