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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2 (목)

日 고시엔서 다시 울린 한국어 교가… 교민들 축제 분위기 [뉴스 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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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교토국제고, 첫 결승 진출

4강전서 1회 2점이나 내줬지만

6회 3점 낸 뒤 끝까지 리드 지켜

창단 20여년 만에 성과 내 주목

교민들 “정말 자랑스럽다” 감격

日 사회 ‘한국어 교가’ 놓고 시비

21일 오전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시 한신고시엔 구장, 9회말 첫 타자로 나선 아오모리야마다고교 선수가 끈질긴 승부 끝에 볼넷으로 출루하자 교토국제고에는 긴장감이 높아졌다. 3-2 한 점 차 리드가 뒤집어질 수 있는 무사 주자였다. 하지만 후속 타자에게서 더블아웃을 잡아냈다. 마지막 타자는 1·2루 간 땅볼로 아웃. 마운드에서 뒤엉키며 승리를 자축하는 선수들, 중계 캐스터는 흥분된 목소리로 외쳤다.

세계일보

교토국제고 日고시엔 첫 결승행 21일 재일 한국계 민족학교인 교토국제고 야구부 선수들이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 한신고시엔 구장에서 열린 전국 고교야구선수권대회(여름 고시엔) 준결승전에서 승리해 첫 결승 진출을 확정한 뒤 기뻐하며 그라운드로 뛰쳐나가고 있다. 교토국제고가 여름 고시엔 결승전(23일)에서 승리하면 ‘일본해’가 아닌 ‘동해’로 시작하는 한국어 교가가 일본 고교야구 ‘꿈의 무대’에서 대미를 장식하게 된다. 니시노미야=교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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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국제고 첫 결승 진출!”

재일 한국계 민족학교인 교토국제고가 일본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여름 고시엔) 결승 진출을 확정하는 순간이다. 1999년 야구부 창단 이후 첫 경사다. 일본이 주장하는 ‘일본해’가 아닌 ‘동해’로 시작하는 교토국제고의 한국어 교가가 일본 고교야구 ‘꿈의 무대’로 불리는 여름 고시엔 결승전에서 대미를 장식하는 것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이날 경기에서 교토국제고는 1회 2점을 내준 뒤 5회까지 끌려갔다. 하지만 6회 1사 만루에서 터진 하세가와 하야테(長谷川颯) 선수의 2타점 적시타로 동점을 만들었고, 추가 1득점에 성공하며 승부를 뒤집었다. 승리를 거둔 교토국제고 학생들이 그라운드에 도열해 교가를 함께 부르는 모습이 공영방송 NHK 화면으로 생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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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교가 생중계 21일 열린 일본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여름 고시엔) 준결승에서 승리한 교토국제고 선수들이 한국어 교가를 부르는 모습을 중계한 NHK 방송 화면. 한국어 자막은 ‘동해’라고 했으나 일본어 번역은 “학교에서 제출한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히가시노우미’, 즉 ‘동쪽의 바다’로 표기돼 있다. NHK 방송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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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도(大和·야마토)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

고시엔에서는 출전학교 교가가 연주되며 NHK는 모든 경기를 방송한다. 23일 열리는 간토제1고와 결승전에서 승리할 경우 다시 한 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백승환 교토국제고 교장은 경기 후 “정말 기쁘고 (학생들이) 대견스럽다”며 “일본에 계신 동포분들께 감동을 드릴 수 있어서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들은 큰 기쁨을 표시했다. TV 중계로 경기를 봤다는 김태형씨는 “경기 내내 마음 졸였는데 결과가 좋아 너무 즐겁다”며 “학생들과 학교 관계자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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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내 한국계 민족학교인 교토국제고가 21일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 한신 고시엔구장에서 열린 전국 고교야구선수권대회(여름 고시엔) 준결승전에서 아오모리야마다고교를 상대로 3-2 승리를 거두고 처음으로 결승에 진출했다. 사진은 6회 초 2루 주자 사와다 하루토가 홈에 들어오는 모습. 교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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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국제고 출신의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교토지방본부 간부는 “자랑스럽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며 “학교의 명성을 올려준 후배들에게 힘찬 박수를 보내고 싶다. 꼭 우승해 우리 민족이 함께 기쁨을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도쿄에서 근무하는 50대 한국인은 “기쁨과 함께 뿌듯하다. 한 학년에 70여명밖에 없는 작은 학교가 일본에 사는 한국인들에게 감동의 큰 물결을 만들어 주고 있다”며 “재일 한국인이 야구 하나로 같은 감정을 느끼며 하나 되어 응원한다는 느낌이 너무 좋다. 결승전에는 현지에 응원갈까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일본 거주 한국 여성들이 주로 가입하는 인터넷 카페에서는 “이겨서 눈물이 난다”, “야구부 전용구장도 없는 걸로 아는데 열악한 환경을 잘 이겨낸 아이들이 너무 대견하다”, “결승 진출이라니 마음이 찡하다”는 등의 글이 올라왔다.

교토국제고가 2021년 처음으로 여름 고시엔 본선에 진출해 4강에 오르고, 이번에는 결승까지 진출한 것은 대단한 성과로 평가된다. 학교 규모가 작은 데다가 야구부의 역사도 20여년에 불과해 짧은 편이기 때문이다. 교토국제학원이 운영하는 교토국제고는 중·고교생을 합해 전교생 160명인 소규모 한국계 학교다. 재적 학생의 65%가 일본인이고 한국계는 30%가량이다. 전신은 재일교포들이 민족 교육을 위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1947년 설립한 교토조선중학교다.

한편에서는 교토국제고의 한국어 교가가 불리는 것을 불편해하는 일본 사회의 분위기도 감지된다. 선수들의 교가 제창 모습을 담은 유튜브에는 “선수들은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교가를 부를까. 야구부원 거의가 일본인이라고 들었는데 한심하다”, “선수들은 아무 잘못이 없지만 응원할 수는 없다”는 등의 댓글이 달렸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일본에서 하는 경기인데 일본어로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등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도쿄=강구열 특파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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