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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2 (목)

샤넬·구찌도 국내서 꺾였다···심상찮은 명품 약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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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서 명품 ‘빅5’ 대부분 고전

경기 침체에 명품 열기도 둔화

2030세대 소비자들 거품 빠져

보복소비 대신 해외여행 택해

일반 명품 대신 주얼리는 약진

우리나라에 진출한 대부분의 럭셔리 브랜드들이 올해 상반기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감소하거나 성장이 둔화된 매출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2030세대를 중심으로 급격하게 달아올랐던 명품 시장의 열기가 한풀 꺾인 것이다. 특히 글로벌 3대 명품인 이른바 ‘에루샤’ 중 하나로 꼽혔던 샤넬마저도 국내시장에서 매출이 뒷걸음질친 점이 눈길을 끈다. 유통사들은 차츰 빠지기 시작한 럭셔리 브랜드의 수요를 하이엔드 주얼리 시장이 흡수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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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서울경제신문이 입수한 럭셔리 브랜드 각 사의 실적을 종합하면 샤넬은 올해 상반기 면세점을 제외한 국내 유통 채널에서 전년 동기 대비 1% 줄어든 5142억 원의 매출을 거뒀다. 여기에는 백화점과 플래그십 매장, 아웃렛에서의 판매가 포함된다. 반기 기준으로 면세점을 뺀 전체 유통 채널에서 샤넬 매출이 역성장한 것은 국내 법인이 설립된 1991년 이후 30여 년 만에 이번이 처음이라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샤넬은 국내에서 면세점을 포함한 전체 유통 채널 매출이 전년 대비 2020년 단 한 해 뒷걸음질쳤는데 당시는 팬데믹으로 면세점에서의 매출이 거의 나오지 않았던 해였다. 올 상반기에는 갤러리아백화점을 통한 판매 실적이 8% 감소한 점이 샤넬에 특히 뼈아프게 작용했다.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에서는 지난해 수준의 매출을 기록했다.

올 들어 국내에서 성장이 둔화된 명품 브랜드는 샤넬뿐만이 아니다. 상반기 매출이 전년 대비 20% 오른 에르메스의 독주를 제외하면 국내 명품 ‘빅5’로 꼽히는 루이비통(3%), 샤넬(-1%), 크리스챤디올(2%), 구찌(-24%) 등이 대부분 고전했다. 특히 구찌는 국내 대부분 매장에서 동시에 판매가 감소했다. 무섭게 치고 나온 에르메스와 한국 내 매출 순위도 뒤바뀌었다. 이 밖에 생로랑(-2%)과 보테가베네타(-2%), 발렌시아가(-2%) 등도 면세점을 제외한 국내 매장에서 실적 감소를 경험했다.

명품 브랜드의 전반적 부진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백화점 업계는 불경기 속에서 아직 소비력이 튼튼한 4050세대 수요가 굳건한 가운데 2030세대 고객층부터 거품이 빠져나갔다고 보고 있다. 명품 시장 전반이 코로나19 이후 심리적 위축을 고가품 구매로 보상받으려는 ‘보복 소비’의 효과를 누렸지만 최근 본격적으로 해외로 나가는 내국인이 늘면서 꺾였다는 얘기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명품 소비 위축은 글로벌한 현상”이라며 “그동안 다른 시장에 비해 오래 버틴 셈이지만 경기 불황에는 장사가 없다”고 설명했다. 패션 업계 관계자는 “이 같은 현상이 지난해 가을겨울(FW) 시즌부터 관찰됐다”고 전했다.

명품 수요의 침체는 핵심 고객층이 약한 브랜드에 더욱 가혹하게 작용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구찌와 에르메스의 실적이 갈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풀이한다. 구찌는 2022년 말까지 알레산드로 미켈레 크리에이티브디렉터 체제하에서 화려한 디자인과 일명 ‘로고 플레이’로 젊은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이후 고전적인 디자인이 선호되는 ‘조용한 럭셔리’로 트렌드가 바뀌면서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에르메스의 버킨백처럼 ‘구찌 하면 떠오르는’ 확고한 스테디셀러가 없다는 점도 약점으로 지목됐다. 반면 에르메스는 2030세대 대신 굳건한 기존 고객층을 바탕으로 국내시장에서 호실적을 거두고 있다. 통상 가격대가 다른 명품보다 높은 데다 브랜드 희소성과 역사성을 보존해 ‘럭셔리의 최상단’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경기가 어려울수록 기존 중산층과 자신을 구별 짓고 더욱 상류층임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베블런 효과’가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대중성이 강한 럭셔리 브랜드는 약화되는 한편 상위 명품군은 강세를 보이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명품 판매 증가세가 둔화되자 백화점 업계는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다. 업체별로 다르지만 현재 매출에서의 비중이 대부분 30%대에 이를 만큼 럭셔리 품목 의존도가 높아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2010년대 후반 다소 시들해졌던 명품의 인기는 팬데믹 기간 급상승했다. 이후 지금까지 백화점은 매출의 상당 부분을 명품에 의존해왔다.

관련 업계는 일반적인 럭셔리 브랜드와 달리 하이엔드 주얼리가 약진하고 있는 점에 기대를 걸고 있다. 실제 상반기 부쉐론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8% 상승한 783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불가리는 4월 현대백화점 목동점을 비롯한 주요 매장 일부에서 철수했음에도 매출이 26%가량 올랐다. 백화점 업계 관계자는 “명품 매장은 그 자체로 집객에 유리할 뿐 아니라 다른 상품군으로 매출이 전이되는 낙수 효과도 무시하지 못한다”며 “수요가 꺾이더라도 결코 버릴 수 없는 카테고리”라고 했다.

황동건 기자 brassgun@sedaily.com박진용 기자 yong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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