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부터 동문 여성들 대상 범행…남성 2명 신원 특정
피해자들 직접 증거 수집…“경찰 미온적 대응, 2차 가해”
위장 수사 확대·단순 시청도 처벌 등 제도 보완 필요성
연이은 딥페이크 성착취물 사건으로 우려와 경각심은 한층 높아졌지만 수사기관의 소극적인 대처와 느슨한 처벌 규정 때문에 피해자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불법으로 합성된 인하대 재학생 등의 사진이 텔레그램 단체대화방을 통해 유포된 사건을 수사 중인 인천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대화방에서 활동한 남성 2명의 신원을 특정했다. 이들이 대화방 운영자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가해자들은 2020년부터 피해자들의 사진을 불법으로 합성한 착취물 등을 1000여명이 참여한 텔레그램 단체대화방을 통해 공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인하대 사건은 지난 5월 알려진 ‘서울대 딥페이크 성착취물’ 사건과 유사한 구조로 보인다. 서울대 사건의 경우 주범인 서울대 재학생이 동문 여성들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프로필 사진 등을 몰래 가져다 컴퓨터 기술을 보유한 공범에게 의뢰해 성적인 장면으로 합성한 다음 텔레그램으로 유포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대 사건 피해자들은 경찰에 신고했으나 경찰이 “텔레그램은 해외에 서버가 있어 수사 공조가 힘들고 피의자 특정이 어렵다”며 미온적으로 나오자 디지털 성범죄 전문 추적단인 ‘불꽃’의 도움을 받아 가해자를 지목, 접촉하며 증거물을 수집했다. 이번 인하대 사건 피해자들도 직접 나서 증거물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조윤희 법률사무소 이채 변호사는 “수사기관이 피해자에게 ‘어차피 못 잡는다’고 응대하는 것이 일반화되면 그 자체로 2차 피해”라며 “이번 사건에서 보듯 대규모 범죄가 자행되고 있는 만큼 수사기관이 더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디지털 성범죄는 범죄자를 지목하고 추적하기가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이런 특수성에 대처하려면 ‘위장 수사’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수사관이 성착취물 소비자·구매자인 것처럼 가장, SNS 등을 통해 범죄자에게 접근해 수사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사뿐 아니라 처벌에도 허점이 있다. 현행법상 딥페이크 성착취물이 유통된 단체대화방에 참여한 이들을 찾아내더라도 처벌하기 어렵다. 이른바 ‘딥페이크 방지법’으로 불리는 ‘성폭력 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르면 ‘반포 등을 할 목적’으로 딥페이크 착취물을 제작한 이들은 처벌 대상이지만 이를 시청하거나 소지한 이는 처벌되지 않는다. 아동 성착취물이나 실제 촬영 성착취물의 경우 제작·유포자뿐 아니라 소지자도 처벌 대상인 것과 차이가 난다.
민고은 변호사(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기술 발달로 딥페이크 사진·영상 등이 실제와 구분하기 어려운 수준이라 실제 촬영한 불법 착취물과 피해 정도가 크게 차이 난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딥페이크 사진·영상에 대해서도 시청·소지 등 행위를 처벌할 수 있게 보완하고 삭제 등 지원도 폭넓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학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발생한 사건이라는 특징을 감안해 피해자 보호에 각별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대학 공동체 안에서 피해자 보호를 위한 조치들과 예방 방안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시은 기자 sieun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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