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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2 (목)

“신발에 피가 너무 묻었네”…길가던 女에 ‘사커킥’, 알고 보니 前축구선수 [사건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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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부산 묻지마 폭행 사건

20대 여성 전치 8주 부상…“평생 트라우마”

과거 강도‧강간 등 혐의로 복역‧출소 반복

법원 “공황장애 등 참작”…징역 25년 감형

세계일보

지난 2월6일 새벽 부산 서구의 한 길거리에서 일면식 없는 여성을 무차별 폭행한 뒤 경찰의 추적을 피해 달아나는 40대 남성의 모습이 담긴 폐쇄회로(CC)TV 장면. 부산경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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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골목으로 끌고 가 무차별 폭행한 40대 남성이 검찰 구형보다 감형된 징역 25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앞선 공판에서 공황장애를 이유로 네 차례나 법정에 나오지 않았는데, 이 점이 참작됐다. 이 남성은 뒤늦게 축구선수 출신인 것으로 드러났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부산지법 형사7부(부장판사 신헌기)는 강도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된 권모씨에 대한 선고 공판에서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권씨는 지난 2월6일 오전 5시20분쯤 부산 서구의 한 길거리에서 처음 본 20대 여성 A씨를 인적이 드문 골목길로 끌고 가 흉기로 협박해 물건을 훔치려고 했다. 이후 A씨가 반항하자 주먹과 발로 7분간 30회에 걸쳐 얼굴을 가격하는 등 폭행한 후 휴대전화 등을 빼앗아 달아난 혐의를 받는다.

그는 쓰러진 여성의 머리 부위를 축구공처럼 세게 차는 이른바 ‘사커킥’을 날리는 등 피해자가 의식을 잃은 이후에도 심한 폭행을 이어갔다. 당시 권씨는 농구화를 신고 있었고, A씨는 턱뼈가 골절되는 등 전치 8주 상당의 상해를 입었다. 다행히 인근을 지나던 행인에 발견돼 목숨은 건졌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현장 폐쇄회로(CC)TV를 토대로 추적 및 수사를 벌여 같은 날 오후 2시쯤 부산역 인근에서 권씨를 긴급 체포했다. 체포 당시 CCTV에는 가방을 움켜쥔 채 전속력으로 달아나던 권씨가 넘어지자 삼단봉을 든 경찰이 그를 제압하는 모습이 담겼다.

◆ 과거 20대女 성폭행도…법정 불출석에 “업어서라도 데려와”

권씨는 기소된 후 재판에서 공황장애 등을 이유로 세 차례 불출석했다가 재판부가 피고인 없이 재판을 진행하겠다고 경고하자 지난달 19일 처음 법정에 나왔다. 그러나 지난 13일 예정됐던 선고일 당일에도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고 법정에 나타나지 않았다.

권씨의 구속기한 만료일은 내달 3일로, 남은 시일이 촉박하자 당시 재판부는 당황한 기색을 보이기도 했다. 재판부는 “교도관에게 권씨를 업어서 오든 꼭 데려오라고 말해달라”고 당부하며 선고기일을 이날로 연기했다.

그는 과거 성범죄를 저질러 ‘성범죄자알림e’에 등록됐지만 지속적으로 강력 범죄를 일으킨 것으로 파악됐다. 현재 무직으로 특수강도 등 14범인 것으로 전해졌다.

2008년 6월 20대 여성을 상대로 강도‧성폭행을 저지르고, 이어 집에 어머니만 있다는 말을 듣고 집까지 함께 가 추가로 금품을 빼앗은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출소 후 2016년에도 편의점 2곳에서 흉기로 위협해 돈을 빼앗은 혐의(특수강도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아 또다시 복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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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을 피해 달아나던 권씨가 넘어지면서 경찰에 제압당하는 모습.


◆ 범행 직후 “사람 죽인 것 같다”…檢, 무기징역 구형

검찰은 이 같은 범죄 전력을 토대로 권씨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검찰은 지난달 19일 열린 공판에서 “권씨는 살인의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사람의 얼굴에 수십 차례에 걸쳐 물리력을 가하면 죽을 것이라고 누구나 예상 가능하다”며 “권씨도 사건 직후 지인에게 ‘자신의 얼굴과 신발에 피가 너무 많이 묻어 사람을 죽인 것 같다’고 말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권씨는 범행 당시 흉기도 소지하고 있었고, 피해자 손에는 흉기로 인한 상흔도 있었다”며 “20대 여성인 피해자는 평생 이 사건으로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 이는 한 명의 존엄한 인격체를 살해한 것과 맞먹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권씨는 2008년에는 강도강간죄로 징역 7년을, 출소 이후 6개월 만에 편의점 2곳에서 강도짓을 벌여 징역 5년을 받았다. 이후에도 폭행 등 재차 범행을 저질러 징역형을 사는 등 권씨에게는 법질서 준수 의식을 기대할 수 없고, 폭력성이 농후해 재차 범행을 저지를 위험성이 크다”며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 “만취해 기억 안나” 선처 호소…法 “미수에 그쳐” 감형

권씨 측은 “이 사건에 대해 인정하지만, 살인의 고의에 대해서는 부인한다. 범행 당시 만취 상태였고 어떻게 자신이 피해자에게 범행을 저질렀는지도 기억을 못 한다”면서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깊이 뉘우치고 있다”고 선처를 호소했다. 권씨는 최후변론에서 “죄송하다”는 짧은 말만 남겼다.

피해자 측은 재판부에 권씨에 대한 엄벌을 지속 촉구했다. A씨는 권씨가 유기징역을 받아 다시 사회로 나올 경우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길 것을 우려, 끝까지 합의하지 않았다.

이날 재판부는 “피고인이 우울증 등으로 인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범행 내용이 너무 안 좋다”며 “살인의 고의가 없었다고 하지만 예전 축구선수였던 피고인이 발로 상당 시간을 폭행하면 어떻게 되는지 더 잘 알 것이다. 범행 횟수나 내용을 보면 미필적으로나마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고 볼 수 있고 검찰이 구형한 무기징역에 상응하는 처벌을 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다만 “확정적으로 피해자를 살해하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우울증 등 정신 병력이 범행에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친 점, 살인 미수에 그친 점 등을 고려해 법정형인 무기징역에서 감형했다”고 판시했다.

김수연 기자 sooy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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