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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2 (목)

[논단]지구 열탕화 시대와 폭염 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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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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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적으로 연일 무더운 찜통더위가 지속되고 있다. 서울에서 29일 연속 열대야가 지속되면서 역대 최장 기록을 경신했다. 바야흐로 ‘지구 열탕화(Global Boiling)’ 시대라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근대 기상관측이 시작된 1880년대 이후 2023년은 전 지구적으로 가장 더웠던 해로 기록되고 있다. 기후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러한 기록은 매년 경신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2023년 출간된 ‘폭염 살인’이라는 책은 오늘날 상황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책 제목의 번역이 좀 자극적인 느낌이었으나 ‘더위가 당신을 먼저 죽일 것이다 (The Heat Will Kill You First)’라는 원제목은 더 섬뜩하다. 나는 폭염에 희생되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에 의심이 가기 시작한다.

저자인 기후 저널리스트 제프 구델(Jeff Goodell)은 전 세계의 폭염 현장을 책에서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2019년 한 해 동안 폭염으로 사망한 사람이 전 세계적으로 50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는 지구 열탕화가 가져온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는 제외한 수치이다. 영국의 싱크탱크 채텀하우스가 2021년 발간한 보고서(Climate change risk assessment 2021)에 따르면 지구 열탕화로 인한 미래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2050년이 되면 약 39억명 이상이 연간 2일 이상의 극심한 폭염을 경험한 것이며, 전 세계 농경지의 40%가 매년 3개월 이상 심각한 가뭄에 노출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보고서는 기상 패턴과 생태계의 변화, 증가하는 해충과 질병, 폭염과 가뭄으로 인해 전례 없는 식량 불안과 이주가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는 지구 열탕화로 인한 피해가 지역, 계층, 성별, 세대별로 불평등하다고 알고 있으며, 실제로도 그렇다. 개발도상국들의 많은 빈민은 에어컨 없이 폭염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으며, 노동자들은 농장에서나 건설 현장에서 폭염에 내몰리고 있다. 특히 여성은 남성에 비해 기후변화와 재난에 더 취약하다.

1991년 방글라데시 홍수 당시 여성 사망자는 남성 사망자의 5배에 달했고, 2003년 여름 유럽을 강타한 열파로 인한 사망자의 70%가 여성이었다. 무엇보다도 앞으로 태어날 미래세대는 지금보다 훨씬 더 혹독한 기후환경에서 살아가야 한다. 이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불편한 진실’이다.

그러나 최근의 기후재난은 개도국과 선진국, 빈부격차를 가리지 않고 그 피해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유럽과 미국은 매해 반복적인 폭염과 혹한을 경험하고 있으며 선진국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도 예상치 못한 폭염과 혹한에 목숨을 잃는 사례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선진국에 진입한 우리나라에서도 언제 어떻게 기후재해로 인한 참변을 당할지 알 수 없다. 길을 걷다가 폭염에 쓰러질 수도 있으며 갑작스러운 폭우로 지하 주차장이나 터널에 갇혀 익사할 수도 있다. 소득이 높고 낮고의 문제가 아니다.

구델을 포함한 많은 기후 전문가들은 행동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도시 리모델링을 통해 에어컨과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고 나무를 더 심으라고. 그렇지 않으면 인류는 가마솥 안에서 삶아질 것이라 경고한다. 그럼 우리가 더욱 적극적으로 행동한다면 과연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행동하기에는 너무 늦은 것은 아닐지 그저 착잡할 따름이다.

서용석 KAIST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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