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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2 (목)

무주택자들 “정부가 내집마련 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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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가계대출관리 압박 커지자

주담대금리 한달새 0.29%P인상

실수요 차주 “이자부담 커져” 불만

헤럴드경제

#.결혼을 앞두고 신혼집을 구하고 있는 직장인 김모(30) 씨는 최근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오른다는 얘기를 듣고 다음 달로 예정됐던 장기 해외여행 계획을 취소했다. 하루라도 빨리 마음에 드는 매물을 구해 이자를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금리가 오른다고 신혼집을 포기할 수는 없다”며 “대출이 너무 많아 금리를 올린다고 하지만, 나에게는 꼭 필요한 대출”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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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내 집 마련’에 성공해 10월 중순 입주를 앞둔 A씨는 최근 디딤돌 대출 금리가 오르면서 곤란한 상황에 직면했다. 16일 이전에 대출을 신청하면 금리 인상 적용이 안 된다는 얘기를 듣고 곧바로 실행에 옮겼지만, 은행서 ‘10월 입주의 경우 현재 신청이 어렵다’며 반려했기 때문이다. A씨는 “정부가 왜 무주택자들 집 마련하는 걸 방해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정부의 가계대출 관리 압박 수위가 높아지면서 신혼부부 등 무주택 예비 차주들의 주담대 금리 부담이 늘어나고 있다. 시장금리 하락에도 은행 주담대 금리가 빠른 속도로 인상된 탓이다. 정책 효과가 미미하자 정부는 서민들의 주택 구매를 돕는 정책금융 상품의 금리까지 인상하고 나섰다.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가계대출을 관리하려다 되레 무주택 실수요자들의 내 집 마련 어려움을 가중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금리 내린다더니” 주담대 이자 부담↑=19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15일 기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주담대 금리는 3.09~5.97%로 지난달 15일(2.91~5.68%)과 비교해 상·하단 각각 0.18%포인트, 029%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은행들이 지난달을 기점으로 연달아 주담대 금리를 인상했기 때문이다. 최근 한 달간 5번 금리 인상을 결정한 신한은행의 주담대 금리 하단은 지난달 12일 2.86%에서 3.62%로 0.76%포인트 늘었다.

이에 따라 불과 한 달 만에 소비자들의 이자 부담은 급격히 증가했다. 신한은행에서 총 4억원의 주담대(원리금균등상환, 만기 40년 기준)를 5년 주기형으로 받는다고 가정했을 때 한 달 원리금은 158만8483원으로 책정된다. 지난달 12일(139만9853원)과 비교하면 17만8600원가량 많은 수준이다. 1년으로 환산했을 때 약 214만원의 이자를 더 내야 하는 셈이다. 이에 금융 소비자들의 불만도 점차 커지고 있다.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에 따라 대출금리가 떨어질 것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오히려 정부 조치에 따른 인위적인 금리 인상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4일 기준 5년물 은행채 금리는 3.177%로 7월 1일(3.49%)와 비교해 0.313%포인트 줄었다. 이날 은행채 금리는 2022년 4월 1일(3.181%) 이후 2년 4개월 만에 3.1%대로 내려앉았다. 심지어 금리 인상 효과도 크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되레 금리가 점차 인상된다는 소식에 미리 대출을 받으려는 수요가 늘어나는 모양새다. 지난 7월 5대 은행의 주담대 잔액은 한 달 새 7조5975억원 늘어났다. 자료 집계가 시작된 2014년 이후 최대폭이다. 주담대 잔액은 이달 들어서도 2주 만에 약 3조원가량 늘어나며, 빠른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내 집 마련’ 하지 말라는 것” 금리 인상 부작용 우려=이에 정부는 정책대출 금리 인상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16일 연 소득 8500만원 이하 무주택자를 대상으로 지원하는 디딤돌 대출의 금리를 기존 2.7~3.55%에서 2.9~3.95%로 최대 0.4%포인트 인상했다. 부부합산 연소득 5000만원 이하 무주택자에 전세자금을 빌려주는 버팀목 대출의 금리도 1.5~2.9%에서 1.7~3.3%로 올렸다.

이는 디딤돌 등 정책 상품에 대출 수요가 몰리며, 가계대출 수요를 견인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결과다. 국토부에 따르면 최근 3개월(4~6월) 사이 은행권이 취급한 주담대 가운데 60%는 디딤돌 등 정책금융 상품인 것으로 나타났다. 디딤돌 대출의 공급액(집행 실적 기준) 또한 올 상반기 약 15조원으로 지난해 상반기(8조2000억원)과 비교해 1.8배 늘었다.

하지만 수도권 고가 아파트를 중심으로 집값이 상승하는 상황에서, 무주택자 대출 문턱을 높일 경우 별다른 효과 없이 무주택자들의 부담만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리 인상을 결정한 디딤돌 대출 등의 경우 매매가격 6억원 이하 주택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서울과 달리 침체기를 겪고 있는 지방 부동산 시장의 위기를 가속화하며, 부동산 양극화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부동산 플랫폼 직방에 따르면 서울의 올 상반기(1~6월) 아파트 매매거래 2만3328건 가운데 53.1%는 9억원 초과 거래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하반기와 비교해 약 55.7% 증가한 수치다. 같은 기간 3억~6억원 거래는 21.2% 증가에 그쳤다. 3억원 거래의 경우 되레 15.3% 줄었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집값이 상승한다는 기대감이 형성되면 금리가 아무리 높아도 수요자들이 매수세로 돌아선다”면서 “정책금리를 변동시키다 보면 되레 주거 취약계층의 주택 마련 어려움이 가중될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가계부채를 잡으려면 부채 총액 자체를 줄이려는 과감한 노력을 해야 하는데, 성장률 내에서 관리하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광우·정호원 기자

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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