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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2 (목)

사불급설(駟不及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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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일보]

충청일보

[충청산책] 깁법혜 스님·철학박사·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고사성어에 사불급설(駟不及舌)이란 말이 있다. 네 필의 말 사(駟), 아니 불(不), 미칠 급(及), 혀 설(舌) 자를 쓴다. '네 마리 말이 끄는 빠른 사마(駟馬)의 수레라도 혀를 놀려 하는 말을 따르지 못한다'는 뜻이다.

한번 뱉은 말은 순식간에 퍼지는 것이므로 늘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의미다. 논어의 안연편에서 위나라 대부 극자성과 공자의 제자 자공간의 대화에서 나온 말이다. 극자성이 자공에게 물었다. "군자는 그 바탕만 있으면 되지 어찌해서 문이 필요합니까?" 이 말을 듣고 자공은 이렇게 말했다. "안타깝군요. 그대의 말은 군자답지만 사(駟)도 혀(舌)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문이 질과 같고 질이 문과 같다면, 호랑이와 표범의 가죽이나 개와 양의 가죽이 같다는 말이다.

질은 본바탕, 실제, 내용이며, 문은 문과 같은 무늬, 꾸밈, 형식을 뜻한다. 질만 강조하고 문을 무시하는 극자성의 실언이 사마보다도 빨리 퍼지게 됨을 경계한 것이다. 논어 옹야편에는 "자왈 질승문즉야요 문승질즉사니 문질이 빈빈연후에 군자니라"라는 구절이 있다.

본바탕이 훌륭하나 꾸밈이 부족하면 촌스럽고 꾸밈이 본바탕보다 나으면 겉만 세련됨이니, 본바탕과 꾸밈이 서로 조화된 연후에야 군자라는 뜻이다. 여기서 '문질빈빈'이라는 구절이 탄생했다. 빈빈은 형식과 내용이 잘 어우려진 훌륭한 모양이다.

당나라 때의 명재상인 풍도도 "입은 화의 문이요, 혀는 자신의 몸을 베는 칼"이라고 했다. 명심보감에서도 "입은 사람을 상하게 하는 도끼요. 말은 혀를 베는 칼이니, 입을 막고 혀를 깊이 감추면 몸이 어느 곳에 있으나 편안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비슷한 말로 "입에서 나온 말은 사두마차도 따르기 힘든다"는 사마난추,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언비천리, "나쁜 소문은 세상에 빨리 퍼진다."라는 악사천리가 있다. 세치의 혀가 사람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한다.

말은 그만큼 어렵고 무거운 것이다. 특히 정치인의 거짓말은 전 세계적으로 흔한 현상이며, 이러한 거짓말은 종종 정치적 이익을 위해 사용된다. 전 세계적으로 많은 정치인들이 다양한 이유로 거짓말을 한 사례들이 존재했다.

정치인의 거짓말은 그들의 신뢰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종종 큰 정치적 파장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밀어주는 정치인이 어떻게든 살아남는 게 목적이다. 그러므로 정치인의 거짓말을 아주 감쪽같이 잘해서 위기를 모면하고 성공하는 걸 원하는 것이다.

정치인에 대해 만연된 불신은 우리 정치문화뿐만 아니고 전 세계적 고질병이다. 정치인과 거짓말의 관계를 이론적으로 규명하고자 하나 풀리지 않고 있다. 왜 정치인들이 거짓말을 하는지를 분석하기도 했다.

정치사회학 관점에서 보여주는 근대사에 있어 직업정치인의 출현과 유형을 비판적으로 비교 분석함으로써 정치인들이 거짓말에 빠지는 개연적 상황이 구조적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때문에, 정치인의 거짓말은 위정자의 문제가 아니라 피치자의 문제다.

우매한 민중에게 진리를 그대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받을 충격과 부작용을 고려할 때 매우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고매한 거짓말'은 필수적이다. 보통사람이 정치인으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거짓말을 매개체로 활용할 수밖에 없다. '생계형'과 '권력 향유형' 정치인은 기본적으로 거짓말을 해야 살 수 있고, 대의를 추구하는 진정성을 가진 정치인도 예외가 아니다.

추종세력 확보와 권력 쟁취 과정에서 불가피하다는 이야기다. 그래선지 오늘날 정치인들은 대놓고 거짓말하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을 벌여놓고도 그들은 들통이 날 때까지는 끝없이 당당하다. 그렇다면 정치인의 거짓말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거짓말할 개연성이 많으니 정치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감시하는 '고상한' 시민이 되는 수밖에 없다. 정치인을 순수 이상주의적 시각으로 보다가 체념하고 외면한다면, 정치인의 거짓말을 더욱 부채질하는 역설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어떻게 시민 사회를 왜곡하는지도 알아야 한다.

때문에, 별생각 없이 정치인을 뽑아선 안 된다. '개와 늑대의 시간'이 다가왔다. 개인지 늑대인지 분간할 수 없는 가운데서도 예리한 눈과 판단으로 올바른 정치인을 고르는 것은 민주시민의 몫이고, 정치인은 사불급설(駟不及舌)처럼 말 한마디 한마디를 자기 몸 아끼듯 조심하고 내뱉었으면 한다.

말은 뗐다가 붙이는 장신구 같아서 여기저기 오남용이 가능하지만, 침묵은 어떤 포장도, 어떤 비약도 불허한다. 정치의 계절에 문득 말 못 하는, 그러나 모두에게 진심인 정치인 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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