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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2 (목)

[매경시평] 프랑스 총선, 이념보다 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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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일을 많이 하는 나라는 중국 멕시코 한국이다.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은 가장 일을 적게 한다. 한국의 주 52시간에 비해 프랑스는 주 35시간 노동이다. 프랑스인은 먹고 마시는 것을 즐기기로 유명하지만 예술·과학·문학·철학에서 뛰어나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는 덴마크지만 자유분방한 삶의 방식에선 프랑스가 최고다.

프랑스는 2027년 총선을 치르게 돼 있었다. 그러나 지난 6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마린 르펜이 이끄는 극우 국민연합(RN)이 31.5%를 득표하며 집권 여당 르네상스의 14.6%를 압도했다. 이에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의 미래를 위해 의회 선택권을 유권자에게 다시 돌려준다는 명분으로 의회를 해산했다. 3년 앞당겨 조기 총선이란 도박을 시도했다.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가 혼합된 프랑스에서는 헌법상 대통령이 의회를 해산할 권한이 있다.

총선 결과 1차 투표에서 1위였던 극우 RN은 3위로 내려앉았고, 2위였던 좌파연합 신민중전선(NFP)이 2차 투표에서 1위로 올라섰다. 마크롱의 집권당 르네상스가 이끈 중도연합 앙상블은 2위를 차지했다. 1차 투표에서 표심을 확인하고, 2차 투표에서 선거연합을 통해 의회를 구성하는 프랑스식 결선투표의 결과다. 극우 RN을 제치기 위해 중도와 좌파가 손을 맞잡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프랑스는 이원집정제 국가로 대통령은 국민이 직접 뽑고 총리는 대통령이 지명한다. 그러나 의회는 대통령이 임명한 총리를 불신임할 수 있다. 결국 권력 누수에 직면한 마크롱 정권 아래 정부의 구성을 둘러싸고 총리의 지명과 의회의 불신임이 거듭될 수 있다.

올해 세계 70여 개 국가에서 선거가 이뤄지고 있다. 러시아처럼 '뻔한 선거'도 있고, 미국같이 '팽팽한 선거'도 있다. 대체로 집권당이 패배하고 있다. 14년을 지배한 영국 보수당, 넬슨 만델라를 배출한 남아공의 아프리카민족회의(ANC), 한국의 여당 국민의힘은 참패했다. 전통적인 중도 좌우 정당의 입지는 약화되고 있다.

프랑스 정치는 역동적이면서도 갈등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2022년 대선에서는 무려 16개 정파에서 25명의 대통령 후보를 냈었다. 이번 총선에서는 좌파·우파·중도에 걸친 289개 정당이 거의 모두 연합이나 제휴를 통해 의회의 다수당이 되려 했다. 이들의 연합과 제휴는 선거용으로 시간이 흐르면 해체된다.

마크롱 대통령은 앞으로 3년간 교착의회(hung parliament) 아래 동거 정부를 구성해야 한다. 비록 NFP가 제1당이 되었지만 녹색당, 공산당, 사회당,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의 정강이 서로 달라 의회에서 정책 조율이 쉽지 않을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국민은 물가 상승으로 중산층이 무너지는 가운데 이념보다 민생을 중시했다. 원래 이념과 달리 극우는 복지 확대와 세금 감면을 약속했다. 극좌 또한 식품·연료·에너지 등 필수품의 가격 동결을 제시했다. 그간 연금개혁의 경우 미래를 준비한다는 명분으로 마크롱 대통령은 의회 동의 없이 친기업적 입법화를 독단적으로 시도했다. 소통과 대화를 통한 설득과 공감이 부족했다. 하지만 극우부터 극좌에 이르는 여러 정당은 세력 확장을 위해 개혁마다 시비를 걸면서 시위와 폭동이 그치지 않았다.

지금까지 세 번의 동거 정부가 보여주었듯 정당의 난립은 정책 형성에서 정부의 구심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이원집정제는 내각제 경험 없이 취하기 어려운 권력 구조로, 대통령제에 비해 장점보다 단점이 많다. 프랑스식 이원집정제는 독일식 연정에 비해 정치의 안정성과 정책의 효율성이 떨어진다. 우리가 참고할 점이다.

[임현진 서울대 명예교수·정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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