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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2 (목)

‘핫플’ 양양의 조용한 여름 [서울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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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피서철이 절정에 다다른 지난달 29일 강원 양양군 인구해변에서 피서객들이 서핑을 즐기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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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주 | 양양군도시재생지원센터 사무국장



양양 읍내는 시골 구도심이 대개 그렇듯 조용한 동네다. 고속도로 개통으로 접근성이 커지고 서핑으로 주목받은 지 몇 해가 흘렀지만, 세간에서 말하는 양양은 읍내가 아닌 바닷가에 있다. 토박이 주민이 오랫동안 살고 있는 읍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여름 성수기가 되면 읍내도 꽤 번잡해지곤 한다. 읍내 중심부에 있던 버스 터미널이 이전한 영향으로 유동 인구가 줄지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정확한 수치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 수 없지만 오가며 목격하는 인파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달라진 건 바닷가 풍경이다. 성수기인 만큼 사람이 많지만, 예전만큼 압도적인 느낌이 아니다. 올해는 유난히 바닷가를 찾는 사람이 적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물 반 사람 반인 해수욕장과 무질서한 차도가 동해안 바닷가 마을 여름 풍경의 정석이다. 여름 성수기에는 7번 국도를 지날 일이 있으면 일부러 해안도로 쪽으로 차를 돌려 인파 속으로 향했다. 뜨거운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길 위에서 뛸 듯이 걷는 아이들과 어깨에 튜브를 걸고 양손 무겁게 짐을 든 부모의 모습을 바라보는 게 좋았다. 바다가 어떤 즐거움과 행복을 주는지 뚜렷하게 체감할 수 있어서 바라보기만 해도 재밌다. 해변 마을의 활력은 어린 시절 여름방학의 추억을 닮았다. 외할머니 집이 근처라서 해운대 해수욕장에 자주 갔다. 당시는 마린시티로 개발되기 전이라서 물속에서 사람을 파도 삼아 둥둥 떠다니며 놀다가 허름한 주차장 마당에서 고무호스로 수도를 연결해 몸을 씻고 밤에는 모래사장에서 그냥 잠들기도 했다.



연고 없는 양양으로 이주할 때도 아는 사람 하나 없지만 가까이에 바다가 있으니까 좋다는 마음이 있었다. 서핑을 해본 적도 없으면서 좋아했던 서핑 영화들의 장면을 계속 떠올렸다. 몸보다 큰 보드를 옆구리에 끼고 터벅터벅 걷는 모습, 폭풍우가 치는 바다에서 집채만 한 파도 속으로 사라지는 풍경, 빛이 푸른 새벽에 낡은 픽업트럭을 타고 바다로 향하는 장면이 서퍼가 아닌 나에게도 오랫동안 아름답게 남아 있기 때문에 양양에 매력을 느꼈다.



개인적인 추억이나 감상 때문이 아니라 거주의 지속성이나 생존의 가능성이라는 현실적인 측면에서도 동해 바다는 지역에 귀한 자원이다. 양양이 여느 지방 소도시나 시골처럼 인구 감소의 큰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고 해도 동해 바다가 있어서 그 속도를 늦출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올해는 서핑숍이며 카페나 음식점이며 숙박업소며 다들 입을 모아 예년과 다르다고 했다.



경기침체부터 불볕더위와 도깨비 장마, 해파리 떼, 외국여행 등 원인으로 추정되는 요소는 많다. 하지만 언론 보도에 의하면 동해안 6개 시군 중 양양만 유일하게 방문객이 감소했다고 한다. 앞서 언급한 것들이 원인이라면 왜 양양만 해당하는 것일까? ‘핫 플레이스’라는 이미지가 오히려 독이 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원인을 찾기까지 시간이 걸릴 테니 당분간 마음 졸이며 변화를 감당해야 하는 바닷가 주민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여름을 좋아하고, 바다를 사랑한다. 내 생계와 직접 관련이 있지 않더라도 존재 자체로 감사하기에 여름 바다 풍경을 오래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선입견도 경기침체도 쉬운 문제는 아니지만 기후 위기가 원인이라면 더 어려운 문제다. 동해 바다가 천혜의 환경인 것처럼 자연의 변화는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겼던 풍경을 거둬갈 수도 있다. 이미 기후변화로 해변에서는 모래가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성수기가 지난 한적한 모래사장을 걷는 걸 좋아하지만 이 또한 한여름 수많은 사람들의 웃음소리를 뜨겁게 껴안고 난 후 바다이기에 가능한 쓸쓸함이다. 푸르고 아름다운 여름 바다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문득 무섭고 서글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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