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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1 (수)

우크라 ‘속임수와 도박’ 작전… 병사들 사복 입고 빈집 숨으며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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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허 찌른 기습, 성공 비결은

조선일보

우크라이나 군인이 12일 러시아 국경 근처 수미 지역에서 소련제 T-72 전차를 운용하던 중 휴식을 취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지난 6일 러시아 국경 지역인 쿠르스크를 기습 공격해 24개 이상의 도시와 마을을 점령했다. /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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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리에 추진돼 대성공을 거둔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본토 쿠르스크 기습 작전(지난 6일 시작)은 적국(敵國) 러시아뿐 아니라 미국 등 우크라이나의 동맹국도 놀라게 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2022년 2월) 후 이뤄진 우크라이나의 첫 러시아 영토 공격 작전이 수립되고 수행된 과정이 하나둘 공개되면서 6개월 전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에 오른 올렉산드르 시르스키의 과감한 전략에 대한 분석이 군사 전문가와 주요 매체를 통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위성 기술의 발달로 전투 부대의 일거수일투족이 적군에 포착되는 전쟁에서 이 같은 대규모 기습이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으론 모두의 허를 찌른 우크라이나군의 ‘수싸움’을 꼽는다.

러시아 전문가인 윤성학 고려대 러시아CIS연구소 교수는 이번 기습에 대해 “아군에게도 가혹하고 어느 정도 피해까지 감당하는 시르스키의 ‘죽기 아니면 살기’ 작전이 먹힌 결과”라며 “죽기를 각오한 공격이었기 때문에 러시아군의 가장 약한 구석을 공략하는 전략을 짠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는 13일 우크라이나 관계자들을 인용해 시르스키의 작전이 성공한 비결을 ‘속임수와 도박’이었다고 요약했다.

조선일보

그래픽=백형선


우크라이나의 눈속임 전략은 북동부와 국경을 맞댄 쿠르스크까지 부대를 이동시킬 때 시작됐다. 대규모 부대가 함께 움직이기보단 각 여단(3000~5000명 규모) 중 일부만을 차출해 조용하고 신속하게 이동하는 작전을 펼쳤다. 기습 공격에 참여한 우크라이나 군인들은 격전지인 동부 전선에 있다가 여러 달에 걸쳐 작전 수행을 위해 조금씩 조용히 러시아 접경지대의 도시로 옮겼다. 이 지시를 받고 움직인 군인들조차 러시아 기습 공격에 참가한다는 사실은 모른 채 명령에 따랐다고 한다. 기밀 유지를 위해 지휘부는 병력을 이동시킬 때 “훈련 중”이라거나 “새 장비 수령을 하러 간다”는 구실을 댔다. 작전에 직접 투입된 군인들도 약 사흘 전에서야 임무를 전달받았다고 알려졌다.

러시아군이 주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도 관건이었다. 쿠르스크는 하르키우 등의 전선에 비해 다소 북쪽에 있는 지역이어서 러시아의 경계가 느슨하긴 했다. 하지만 만약 러시아가 우크라이나군의 ‘수상한 집결’을 눈치챈다면 러시아의 병력·화력이 이 지역에 집중되며 작전이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있었다. 이런 위험을 줄이기 위해 우크라이나 군인들은 사복 차림을 하고 다니면서 막사 등을 짓는 대신 빈집에 숨어들어 대기하며 시선을 차단했다.

기습 작전이 개시된 후에도 러시아군은 사태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허위 정보와 선전이 난무하는 이번 전쟁의 특성 때문에 우크라이나의 통상적 ‘교란 작전’이라고 오판한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국경 지역을 지키고 있던 몇 안 되는 러시아 군인들은 전부 징집병으로 구성돼 있었으며, 이들은 모두 도망가거나 우크라이나군에 투항했다”라고 혼란에 빠진 러시아군의 모습을 묘사했다.

여러 달에 걸쳐 진행된 기습을 대비하지 못한 러시아군의 허술함도 도마에 오르게 됐다. 특히 우크라이나군이 접경 지대에 부대를 집결시키고 있다는 경고성 정보를 무시한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에 대해선 경질설까지 제기되는 중이다. 우크라이나를 침략해 들어가는 훈련에만 집중해 본토 침공을 당했을 때의 방어 전략이 부족했다는 점이 원인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기습 공격이 8일째를 맞는 13일 연설을 통해 “(러시아) 쿠르스크의 마을 74곳을 통제하고 있다”고 했다. 시르스키 총사령관은 “하루 동안 3㎞를 더 진격해 러시아 영토 40㎢를 추가로 장악했다”고 밝혔다. 서울 면적의 약 1.6배인 1000㎢를 획득했다고 전일 밝힌 이후 점령지를 더 늘렸다는 것이다.

일단은 기습이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러시아가 사전에 작전을 알아챘을 경우 우크라이나군의 막대한 병력 손실이 불가피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본다. 그럼에도 시르스키가 이런 ‘도박’을 감행한 것은 우크라이나가 그만큼 급했기 때문이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윤성학 교수는 “우크라이나는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우크라이나 지원에 반대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지원이 중단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하는 상황”이라며 “그만큼 시간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는 이번에 획득한 러시아 영토를 러시아에 빼앗긴 영토와 맞바꾸기 위한 전략을 수립 중이라고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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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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