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11 (수)

마루타 불태우고 증거 은폐…일본 731부대원의 '양심고백'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중국 하얼빈 방문중인 731부대 양심선언 생존자 시미즈 히데오,
"日, 항복전날 감옥 폭파하고 수감자 학살…시신 모두 불태워"


머니투데이

헤이룽장 하얼빈시 731부태 죄증 진열관에서 허리를 숙여 사죄하는 시미즈씨./사진=신화통신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일본 정치인들과 일본인들이 내가 죽기를 바라고 있다는 점이 더 두려웠다."

2차 세계대전 중 벌어진 전쟁범죄 중 가장 악명 높은 일본 관동군 731부대 소속 부대원의 옛 부대 현장 방문이 중국 여론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주인공인 94세 고령의 일본인 시미즈 히데오는 일본 현지 인터뷰에 이어 참극의 현장인 중국 하얼빈을 찾아 "중국인들의 보복보다는, 일본 정치인들이 내가 죽기를 바라는게 더 두려웠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중국에 입국한 그의 동선은 대부분 주요 중국 언론을 통해 실시간으로 보도됐다. 그는 2차대전 종전 직전 일본에서 중국 하얼빈으로 파견된 마지막 731부대 청년단 중 한 사람으로 4개월 이상 인체해부와 생체실험, 병원균 배양 등 전쟁범죄를 목격했다. 그러면서 1945년 8월 14일 일본군이 중국에서 후퇴하면서 일본으로 돌아갔다. 일본이 항복하고 한국이 광복을 맞기 하루 전 일이다.

731부대는 1936년 일본 괴뢰 만주국 영토였던 하얼빈에 설치됐다. 공식 명칭은 관동군 방역급수부였지만 실제 용도는 생화학 무기인 세균탄 개발을 위한 생체실험이었다. 중국 정부는 731부대의 생체실험으로 희생된 사람이 최소 3000명, 여기서 개발된 세균탄으로 죽은 중국인이 100만명이라고 발표했다. 독일 나치스의 유대인 등 소수민족 홀로코스트에 비견되는 사상 가장 끔찍한 전쟁범죄 중 하나다.

전후 수의사로 일하던 시미즈는 한 번도 일본을 떠나지 않았다. 일본으로 돌아온 731부대원들은 복무 경험을 숨길 것을 지시받았고, 공직에서 일하는게 금지됐다. 해당 부대원 접촉도 허용되지 않았다.

오랫동안 명령을 충실히 따랐던 시미즈는 본인 생의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어서야 입을 열었다. 그는 중국 언론에 "당시 내 상관은 '외과의가 되려면 최소한 시체 세 구는 해부해야 한다'고 말했다"며 "표본실엔 유아와 어린이 사체 표본이 많았고, 손주를 볼 때마다 그 유아표본이 떠올라 몸서리를 치곤 했다"고 말했다.

시미즈에 따르면 철수 전날 731부대는 감옥과 다른 시설을 폭파하고, 수감자들을 학살했다. 인간을 마루타(통나무)라고 부르며 자행한 끔찍한 전쟁범죄의 증거를 은폐하기 위해 시체들은 불태웠다. 시미즈는 폭탄을 태우고 난 뼈를 수거하는 작업에도 참여했다고 회고했다.

713부대의 전쟁범죄 피해는 조선인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간도에서 일본군에 사로잡힌 독립운동가들이 731부대에서 생체실험에 희생됐음을 입증하는 자료가 다수 발견되고 있다. 대부분 중국인들이 희생됐지만 조선인 독립운동가와 러시아인들도 희생됐다는 내용이다.

일본 정부는 731부대가 세균전을 수행했다는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가해자이면서 역사를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지난해 731부대원 명단이 담긴 공식문서가 일본에서 처음 발견됐는데, 다수는 전후 교토의대 등에서 학위를 받고 교수가 되는 등 의학계에서 승승장구 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 일본 교수들이 731부대 관계자로 추정됐던 인물들의 학위 취소를 요구했지만 묵살됐다.

여기엔 전후 일본과 남한을 점령한 미국이 세균전 정보를 얻어내고자 전쟁범죄자들을 회유했던 것도 한 몫 했다. 소련에 세균전 정보가 넘어가는 것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이른바 '악마의 의사'들을 회유하고 이들에 대한 처벌을 유야무야했다. 회유하는 미국에까지 "그런 실험을 한 적 없다"고 끝까지 전쟁범죄를 부인한 일본군도 있었다.

이 가운데 나온 시미즈의 증언에 대해 중국은 찬사를 보내고 있다. 중국 외교부 린젠 대변인은 13일 기자회견에서 "역사적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한 시미즈의 용기에 찬사를 보낸다"며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감행한 세균전에 대해서는 확실한 증거가 있으며 부인의 여지가 없다"고 질타했다.

관영 환구시보도 논평을 통해 "시미즈는 유일한 731부대 생존자이며, 마지막으로 하얼빈으로 돌아온 부대원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일본은 국제사회에 고개를 들기 전에 역사 앞에 먼저 허리를 굽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베이징(중국)=우경희 특파원 cheerup@mt.co.kr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