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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1 (수)

홍준표 입맛대로 바뀐 대구 관문 명칭…‘박정희 광장’ 강행에 시민단체·야당 ‘맹비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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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대구시장(가운데)과 내빈들이 14일 오전 대구 동구 동대구역 앞 광장에서 열린 ‘박정희광장 표지판 제막식’에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다. 대구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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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 박정희 대통령 표지판 즉각 철거하라” “보릿고개를 겪어봤나. 뭐 했노 니가”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오전 11시30분쯤 대구의 주요 관문인 동대구역 앞 광장. 이곳을 ‘박정희 광장’으로 부르기로 한 대구시가 표지판 제막식을 시작하자 표지판 철거를 요구하는 지역 시민단체와 정당 관계자 등 100여명이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독재의 망령으로 동대구역을 더럽히지 말라’ ‘친일부역자 우상화 웬말이냐’ ‘박정희 우상화 대구망친다’ 등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대구시와 홍준표 시장을 비판했다.

행사장에 있던 한 70대 남성은 시민단체 관계자를 향해 “박정희 대통령님의 시대를 살아봤느냐”라고 말하면서 삿대질을 했다.

또 다른 시민은 “박정희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역사다”라고 외치며 집회 장소에 난입하다 경찰에 의해 제지를 당했다. 폭염 속에서도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사업의 찬성과 반대를 주장하는 단체 관계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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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광장 표지판의 모습. 백경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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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가 시민단체 등의 거센 반발에도 대구지역의 관문인 동대구역 앞 광장을 ‘박정희 광장’으로 이름 붙이기로 했다.

이곳은 그간 특별한 명칭이 없이 ‘동대구역 광장’이라고 불렸지만, 대구시는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사업의 하나로 의미를 부여하기로 했다. 지역 시민단체와 야당 등은 시민 의견수렴 없는 밀어붙이기식 행정이라며 맹비난했다.

대구시는 이날 오전 11시30분부터 ‘박정희 광장 표지판 제막식’ 행사를 개최했다. 표지판은 전날 미리 설치돼 하얀 천으로 가려져 있다가 이날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표지판 설치에는 예산 약 2500만원이 투입됐다.

표지판은 폭 0.8m, 높이 5m 크기이다. 구조물 가장 윗부분에는 부조 방식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얼굴이 새겨져 있고, 아래쪽에 ‘PARK JEONG HEE SQUARE’라는 작은 글씨가 적혀 있다. 표지판 가운데에는 ‘박정희광장’이라는 글씨가 새겨졌다.

대구시는 “절도 있고 힘이 넘치는 박 전 대통령의 친필 서체를 적용해 기념사업 추진에 더 큰 의미를 부여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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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우상화반대 범시민운동본부’와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 등 5개 야당 관계자들이 14일 ‘박정희광장 표지판 제막식’ 현장에서 표지판 철거 등을 촉구하고 있다. 백경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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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는 올해 말까지 광장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동상을 세울 예정이다. 또 광장 일대 환경을 정비해 이곳을 찾는 시민과 관광객에게 대구의 산업화 정신을 알릴 수 있는 장소로 꾸민다는 방침이다.

대구시는 1960년대 근대화의 시발점이 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산업화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막식을 기획했다고 밝혔다. 동대구역 앞 광장을 ‘박정희 광장’으로 명명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대구시는 구한말 국채보상운동의 구국정신과 1960년 2·28민주운동의 자유정신, 1960년대 박 전 대통령의 산업화 정신을 ‘대구 근대 3대 정신’으로 꼽는다고 밝혔다. 시는 산업화 정신의 경우 1960~1970년대 ‘한강의 기적’으로 요약되는 급격한 경제성장의 바탕이 된 중요한 무형유산이지만 이를 기리는 사업이 없었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

이에 지난 5월 ‘대구광역시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기념사업 추진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사업 추진을 위한 기틀을 마련했다. 대구시는 동대구역 앞 광장과 내년 준공 예정인 남구 대명동 대구대표도서관 앞에 각각 3m와 6m 높이의 박정희 동상을 세울 방침이다. 대구시는 동상 건립과 작가 공모 등에 14억5000만원을 배정했다.

대구시는 제막식 행사장과 시민단체 등의 기자회견장 사이에 공무원 등을 동원해 ‘인간벽’을 세웠다. 경찰도 인력을 투입해 두 집단 사이를 막아서 물리적인 마찰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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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동구 동대구역 앞 광장에 14일 오전 수많은 인파가 몰려 있다. 백경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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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시장은 이날 표지판 반대 기자회견이 진행되던 이날 오전 11시20분쯤 현장에 모습을 보였다. 행사장 앞쪽에는 대구시 새마을회 등이 준비한 펼침막이 자리잡았다.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 정신을 되새기자’ ‘산업화 정신 계승으로 대구의 영광을 되찾자’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행사에는 강대식 국회의원을 비롯해 강은희 대구교육감, 윤석준 동구청장 등이 참석했다.

홍 시장은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 정신을 지금의 대구와 대한민국을 있게 한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면서 “산업화 정신을 바탕으로 대구가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도록 시민들께서 그 의미를 함께 해 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역사의 인물에 대한 공과는 언제나 있는 법이기에 과만 들추지 말고 공도 우리가 기념해야 할 부분은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행사 이후 홍 시장이 차량 탑승을 위해 이동하자 반대 관계자들의 항의가 이어졌지만 경찰 인력 등의 보호를 받으며 현장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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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대구시장이 14일 박정희광장 표지판 제막식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대구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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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역 시민단체가 연대한 ‘박정희우상화반대 범시민운동본부’와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 등 5개 야당 관계자들은 행사 시작 30분 전부터 표지판 앞에서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홍 시장과 대구시를 맹비난했다. 이들은 표지판의 즉각 철거와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 건립 등 관련 기념사업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성종 박정희우상화사업반대 범시민운동본부 집행위원장은 “내일이 79주년 광복절이지만 그런 날에 친일 부역자이자 만주군 소위를 하면서 독립군을 때려잡던 박정희 동상을, 박정희 이름을 딴 광장으로, 동대구역 표지판을 설치한다고 한다”면서 “일제에 맞선 독립운동가와 2·28 운동을 통해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영령들이 통탄할 일”이라고 말했다.

시민단체 등은 대구시가 박정희광장이라는 명칭을 부여하는 과정에서 행정 절차도 제대로 밟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공간정보의 구축 및 관리 등에 관한 법률’과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명업무편람’ 및 ‘대구시 지명위원회 조례’에 따라 지명을 제정·변경·폐지할 때 지자체 지명위원회의 심의와 국토교통부 지명 고시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단체는 대구시가 이러한 절차를 밟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허소 민주당 대구시당 위원장은 “전 세계 어느 공항이나 광장에도 큰 동상을 세운 예를 보지 못했다”면서 “국제 문화도시의 핵심은 다양성인데 전 세계의 많은 관광객이 동대구역을 찾았을 때 거대한 박정희 동상을 보고 무엇을 느끼겠냐”고 말했다.

백경열 기자 merc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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