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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1 (토)

1조원 증발 티메프, 신뢰 붕괴 딛고 ‘회생’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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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달 26일 서울 강남구 티몬 신사옥에서 ‘판매 대금 미정산 사태’ 피해자들이 환불 현장 접수를 위해 모여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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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상거래 중개플랫폼(이커머스)인 티몬과 위메프가 입점업체(판매자)에 판매 대금을 정산해주지 못하는 것은 현금이 바닥났기 때문이다. 지난 1일 기준 미정산 대금은 2700억원에 이른다. 판매 시점과 정산 시점 간 시차(정산주기)가 약 두달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 금액은 5월 판매분에 해당한다. 정산일이 다가오고 있는 6월과 7월 판매분까지 합하면 미정산 대금은 1조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추정까지 나온다.



플랫폼에서 고객이 결제한 상품 대금은 신용카드사나 전자지급결제대행업체(PG사) 등을 거쳐 이커머스업체로 흘러간다. 미정산 대금이 1조원이라면 적어도 1조원 이상의 고객 결제 대금이 티몬과 위메프(이하 티메프)로 넘어갔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데 티메프의 금고에는 왜 현금이 없을까. ‘사라진 1조원’에 대한 논의는 일단 뒤로 미루기로 하자. 이커머스는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 구매 상품이 정상 배송될 것이라는 믿음(고객), 판매 대금이 제때 정산될 것이라는 믿음(판매자)이 무너지면 고객과 판매자는 순식간에 플랫폼을 떠난다. 티메프에 대한 신뢰는 사실상 붕괴됐다. 1조원의 미정산 채무를 발생시킨 채 신뢰를 상실한 이 플랫폼은 과연 생존할 수 있을까.





검찰 수사에 직원 이탈까지





티메프는 지난달 29일 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이른바 ‘자율구조조정 지원 프로그램’(ARS·에이아르에스) 승인 요청도 함께 넣었다. 에이아르에스는 법원이 회생 절차 개시 결정을 내리기 전에 채무자가 채권자와 자율적으로 변제계획과 구조조정에 합의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제도다. 티메프는 지난 2일 에이아르에스 진행 승인을 받았다. 법원의 지원 아래 최장 석달 동안 자율 합의를 시도해볼 수 있는 시간을 번 셈이다. 그러나 법조계와 업계에서는 티메프가 에이아르에스에 성공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올해 4월 발간된 김기홍 서울회생법원 판사의 논문 ‘회생절차의 틀 안에서의 하이브리드 구조조정’에 따르면, 2018년 제도 도입 이래 2023년 3월까지 총 22건의 에이아르에스 진행 사건 중 합의에 성공한 것은 10건뿐이다. 이들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채권자가 10명 미만의 소수라는 점이다. 채권자가 다수라도 금융기관 비율이 높거나, 몇명의 채권자가 채권액 대부분을 차지한 기업은 합의에 성공할 수 있었다. 김 판사는 “드물긴 하지만 에이아르에스 기간 중 신규자금 조달에 성공한 경우에도 자율구조조정 합의가 가능했다”고 밝혔다.



에이아르에스에 성공한 기업들을 살펴보면 채권자가 많았던 곳도 100명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티메프의 상거래 채권자(판매자) 수는 11만명(두곳 중복 포함)으로 추정된다. 더구나 에이아르에스는 만장일치를 원칙으로 한다. 채무자와 주요 채권자로 구성된 회생절차협의회가 마련한 조정안에 수만명의 상거래 채권자가 만장일치로 찬성할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나마 티메프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이 논문에서 ‘드문 사례’라는 단서를 달아 소개했던 신규자금 조달이다. 티메프는 회사를 완전히 인수해줄 곳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검찰 수사와 맞물려 있고 직원들의 이탈이 이어지고 있다. 검찰은 구영배 큐텐 대표 등 핵심 경영진에 대해 사기와 횡령 혐의를 적용하여 구속영장을 청구할 가능성이 높다. 검찰 관계자는 최근 “수사 과정에서 에이아르에스 진행을 염두에 두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혀, 에이아르에스와 상관없이 신속하게 사법처리하겠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기업회생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변호사 가운데는 티메프가 에이아르에스 절차를 밟는 것은 시간 벌기 목적이라고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3개월 정도 시간을 확보한 다음 인수합병(M&A) 또는 이른바 ‘사전회생계획’(Pre-packaged Plan, 피 플랜)에 무게를 두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티메프가 에이아르에스에서 채권자들로부터 구조조정안 찬성을 이끌어낸다면 회생 신청을 취하하고 합의안대로 실행해가면 된다. 에이아르에스에 실패하면 회생 절차가 개시된다. 이때 두가지 경로를 밟을 수 있다. 앞서 진행한 에이아르에스에서 채권자 전원 동의를 얻지는 못했지만 2분의 1 이상 찬성(채권액 기준)을 확보하였다면 피 플랜이 가능하다. 에이아르에스 과정에서 이미 만들어놓은 회생안을 법원이 강제 인가하여 신속하게 회생 절차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에이아르에스에서 2분의 1 동의조차 얻지 못하였다면 일반적인 회생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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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인 남발, 자금 유용 후폭풍





한겨레

지난달 26일 서울 강남구 위메프 본사에서 ‘판매 대금 미정산 사태’ 피해자들이 환불 현장 접수를 위해 모여 있다. 백소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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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아르에스, 피 플랜, 일반회생 등 어떤 절차로 가건 1조원 정산 대금 채무를 안고 있는 티메프에 정말 필요한 것은 인수 기업을 찾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계속기업가치가 청산가치보다 높다는 평가를 받은 것도 중요하다. 물론 청산가치가 더 높게 나온다고 해서 곧바로 파산 정리 절차를 밟는 것은 아니다.



류광진 티몬 대표는 지난 2일 회생재판부 심문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계속기업가치가 (청산가치보다) 3천억~4천억원 더 많이 산출됐다”고 말했다. 류화현 위메프 대표도 계속기업가치는 800억원, 청산가치는 300억~400억원 수준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숫자는 회생 신청을 위해 두 회사가 긴급하게 회계법인에 의뢰하여 산출한 결과다. 회사 쪽의 낙관적 전망이 거의 그대로 반영됐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했을 때 회사 쪽이 전망한 5년 영업이익(5347억원)은 삼일회계법인이 실사 뒤 추정한 수치(2952억원)보다 2배 가까이 높았다. 법원이 선임한 조사위원(회계법인)이 평가 작업을 맡게 되면 두 대표가 언급한 숫자와는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계속기업가치는 앞으로 10년 동안 회사가 창출할 수 있는 잉여현금 추정치와 10년 이후 영구기간 잉여현금 추정치를 더한 값(영업가치)에 회사가 보유한 비영업자산의 가치(실제 처분가능가액)를 합산한 값이다. 잉여현금을 추정하기 위해서는 10년 추정손익계산서를 만들어야 한다. 티메프에서 판매자와 고객이 떠나고 있다. ‘산 넘어 산, 물 건너 물’의 상황이 이어질 텐데 미래 10년 손익을 얼마나 신뢰성 있게 추정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1조원 정산 대금 증발은 오랜 기간 누적손실과 지난해 이후 급속하게 진행된 할인 남발, 판매자 이탈, 큐텐그룹의 티메프 자금 유용 등이 복합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증발한 자금의 일부는 할인 혜택을 본 수많은 고객의 호주머니로도 들어간 셈이다.



MTN 기업경제센터장





‘기업공시완전정복’ ‘이것이 실전회계다’ ‘하마터면 회계를 모르고 일할 뻔했다’ ‘1일 3분 1회계’ ‘1일 3분 1공시’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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