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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0 (화)

[여명] '제2의 알테오젠’은 신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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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곤 바이오부장

바이오를 반도체 수준으로 육성한다더니

규제완화·자금지원 체감도 기대보다 미흡

기술특례업체, 본업보다 부업하며 안간힘

실패보다 성공사례 주목할때 생태계 형성

서울경제



“바이오를 반도체 수준으로 키운다더니 뭐하는지 잘 모르겠네요.” 최근 만난 바이오벤처 대표가 내뱉은 탄식이다. 바이오벤처들은 생사의 기로에서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데 정부의 규제 완화나 정책 지원은 체감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과연 업계의 볼멘소리로만 여길 수 있을까.

윤석열 정부는 2022년 출범 직후 12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바이오·디지털헬스 글로벌 중심국가 도약’이라는 목표를 제시했다. 국정과제는 2023년 ‘제3차 제약바이오 산업 육성·지원 5개년 종합계획’으로 구체화됐다. 윤 대통령은 바이오를 미래 성장 동력으로 삼아 ‘제2의 반도체’로 키우겠다며 연구개발(R&D) 투자 확대와 인력양성, 규제 완화 등을 약속했다. 블록버스터급 혁신 신약 2개, 바이오헬스 수출 2배 달성 등으로 6대 제약 강국이 될 것이라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역대 정부가 그랬듯이 목표만 거창하고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 장밋빛 비전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지만 “혹시 이번에는”이라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공정과 상식을 원칙으로 세우고 시장과 기업의 자유를 중시한다는 정부였던 만큼 기대가 컸던 것도 사실이다. 현재까지 결과는 대다수의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2년을 돌아보면 정부 투자나 규제 개혁 등에서는 기대보다 미흡했다는 평가다. 중장기계획이라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고려해도 눈에 띌 만한 변화가 없었다는 게 중론이다.

정부는 오히려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예산을 원점에서 재검토한다’며 R&D 예산을 대폭 삭감해 원성을 샀다. 논란 끝에 내년에는 다시 늘리기로 했지만 한 번 홀대받았다고 생각한 업계 입장에서 불신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특히 기술특례상장제도를 둘러싼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기술특례상장은 미래 성장성은 있으나 현재 수익성이 낮은 혁신 기업들이 증시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 성장하도록 돕는 제도다. 2005년 도입 이후 수많은 바이오벤처가 기술특례로 상장했고 현재도 많은 업체가 문을 두드리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파두’ 사태 등의 여파로 올해부터 문턱이 높아지고 까다로운 심사로 상장이 지연되면서 기업공개(IPO)를 통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상장한 업체들도 마찬가지다. 일정 기간 유예를 받지만 연 매출 30억 원 등 상장 유지 조건을 맞추기 위해 신약 개발이라는 본업이 아닌 빵집, 부동산 임대업 등 부업에 치중하는 현실이다. 투자자 보호라는 명분도 좋지만 최소 10년은 적자를 감수하고 R&D에 올인해야 하는 바이오 생태계를 이해하지 못한 상장 유지 조건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A바이오벤처 대표는 “실패 가능성을 인정하고 기다려줘야 혁신도 싹틀 수 있다”며 “상장을 유지하기 위해 부대사업을 하게 만드는 게 정상이냐”고 말했다. B바이오벤처 대표는 “실패 사례를 보지 말고 리가켐바이오·알테오젠·에이비엘바이오 등 성공 사례를 보라”며 “시장을 키울 생각을 해야지 상장 유지에 급급해 무리한 기준을 적용하면 부작용이 더 커진다”고 말했다. 신약 개발은 무엇보다 R&D의 연속성이 중요하다. 뚝심 있게 투자하고 기다리지 않으면 기술이 꽃피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미 지어놓은 농사까지 망칠 수 있다.

바이오벤처들이 R&D에 매진할 수 있도록 바이오산업의 특성을 고려한 규제 완화와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 물론 옥석 구분은 반드시 필요하다. R&D를 소홀히 하며 주가 부양에만 신경 쓰고 투자자들의 신뢰를 갉아먹는 좀비 같은 바이오벤처는 시장에서 퇴출돼야 한다. 하지만 대다수 바이오벤처는 오늘도 생사의 기로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들의 희망을 꺾지 않으려면 기술특례상장의 취지를 살리는 방향으로 제도가 운영돼야 한다.

2008년 창업한 알테오젠은 2014년 기술특례로 코스닥 시장에 입성했다. 상장 초기에는 적자 기업이었지만 원천 기술을 바탕으로 대규모 기술수출에 성공하고 지난해 흑자 전환했다. 시가총액은 공모 당시보다 100배 이상 늘어나 현재 코스닥 2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제2의 알테오젠은 결코 신화가 아니다. 바이오를 제2의 반도체로 만들 생태계를 키우려면 실패보다 성공 사례에 주목해야 한다.

김정곤 기자 mckid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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