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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0 (화)

[만물상] 西進하는 ‘백색 가전’ 패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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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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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프로레슬링 TV 중계가 있을 때, 동네 사람들은 텔레비전 있는 집에 모여들었다. 그때 스위치를 켜고 30초 이상 기다려야 화면이 뜨던 미국산 제니스 진공관 TV를 보았다. 당시엔 이 TV가 있는 집은 부잣집이었다. 이 TV는 시간이 흐르며 금성사 흑백 TV, 삼성전자 컬러 TV로 바뀌었다. 한국 가전 산업의 발전과 맥을 같이한다. 그런데 몇 년 전 독립한 아들 자취방에 가니 TV, 무선 청소기, 선풍기, 제습기가 모두 중국산이었다. 아들은 “가격, 품질 모두 만족”이라고 했다.

▶백색 가전이란 말은 영어 ‘White Goods’에서 유래했다. 백색 가전 산업의 초대 제왕은 미국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장고, 세탁기 등 백색 가전이 미국 가정에 하나둘 보급됐는데, 제너럴일렉트릭(GE)에서 만든 가전제품이 대부분 흰색이었다. 청결을 강조하기에 적합한 색이었기 때문이다. 전 세계 중산층은 GE·제니스의 TV, 월풀의 냉장고·세탁기에 열광했다.

▶1980년대 이후 백색 가전의 패권은 일본으로 넘어갔다. 소니 TV, 도시바 냉장고가 원가 경쟁력에서 미국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부터는 한국이 백색 가전의 새 강자로 부상했다. 럭키금성(LG의 옛 이름)과 삼성전자 간 피 튀기는 경쟁 덕에 가격·품질 경쟁력을 키운 덕분이었다. TV에선 삼성이, 나머지 백색 가전에선 LG전자가 세계 1위로 올라섰다. 특히 LG는 2019년 월풀을 제치고 세계 1위 백색 가전 기업이 됐다.

▶근래엔 중국이 백색 가전 패권을 노리고 있다. 중국 1위 하이얼은 미국 GE, 일본 산요, 이탈리아 캔디 등 유명 가전 기업을 인수해 세계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성과도 놀랍다. 중국 백색 가전이 일본에선 세탁기, 냉장고 시장의 20% 이상을, 한국에선 고급 로봇 청소기 시장을 80% 이상 장악했다. 중국 로봇 청소기의 독보적 경쟁력은 인공지능(AI), 3D 센서, 라이다 등 차별화된 자율 주행 기술과 가격 경쟁력 덕이다.

▶LG전자가 최첨단 로봇 청소기 개발 및 생산을 중국 기업에 위탁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기술 격차’가 낳은 제휴라는 점에서 뒷맛이 씁쓸하다. 최첨단 중국 로봇 청소기는 백색 가전의 미래를 보여준다. 스마트폰으로 원격조종해 외출 시에도 청소, 세탁, 냉난방 등 모든 가사를 자유자재로 하게 될 것이다. 중국은 AI, 빅데이터 분야에서 세계 최고 기술 선진국 중 하나다. 백색 가전 패권이 미국, 일본, 한국에서 이제 중국으로 서진(西進)하는 흐름을 막을 수 있을까.

[김홍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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