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지수가 8.77%, 코스닥 지수가 11.30% 급락한 지난 5일 국내 한 자산운용사 A 대표는 “폭락에 따른 투자 손실은 안타깝다”면서도 증시 추락 자체는 한 번쯤 필요한 시기였다고 말했습니다. 돈을 굴려 더 큰돈을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 입에서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일까요.
일러스트=챗GPT 달리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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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A 대표가 ‘나쁘지 않은 타이밍’이라고 언급한 건 내년부터 시행 예정인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를 염두에 둔 겁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 도입된 금투세는 금융투자로 얻은 이익이 일정 수준(주식 5000만원, 채권 등 250만원) 이상일 때 22~27.5%(지방소득세 포함)의 세율로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입니다. 2023년 1월부터 시행할 예정이었는데, 2022년 말 여야 합의로 2년 유예됐죠.
그간 윤석열 정부·여당과 금융투자업계는 한목소리로 금투세 폐지를 외쳤습니다. 투자자들도 당연히 폐지를 원하는데요.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반대에 막혀 갈등 국면이 이어졌습니다. 물론 민주당도 내부적으로 완벽하게 의견 통합을 이룬 건 아닙니다. 차기 유력 당권주자인 이재명 전 대표는 금투세 유예로 방향을 틀면서 ‘5년간 5억원 면세’ 카드를 꺼냈습니다. 여론 눈치를 본 거죠.
이런 상황에서 지난 5일 ‘블랙 먼데이’ 사태가 벌어진 겁니다. 미국발(發) ‘R(recession·경기 후퇴)의 공포’가 일으킨 패닉셀링(공황매도)을 목격한 정치권 반응은 A 대표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모양새네요. 예컨대 민주당 원내부대표인 임광현 의원은 7일 개최하려던 금투세 개선 방안 모색 토론회를 돌연 연기했습니다. 이재명 전 대표의 금투세 유예 카드를 ‘개인 의견’이라고 선 그은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을 향해선 투자자 항의가 빗발쳤습니다.
여당도 목소리를 높입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6일 “세계 증시가 여러 가지로 불안하다”며 “주가 하락의 계기를 만들 금투세를 강행하면 우리가 일부러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초대형 위기)을 만드는 거란 우려가 든다”고 했습니다. 한 대표는 “정책은 시대 흐름에 따라 국민이 처한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고 바뀌어야 한다”며 민주당에 금투세 폐지를 초당적으로 논의하자고 했습니다.
금융투자업계는 이번 증시 폭락 사태가 한 대표 제안대로 초당적 논의의 계기가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또 다른 자산운용사 대표 B씨는 “전체 투자자 중 금투세 대상자 비중이 작다고 해도 그들 상당수가 시장 영향력이 큰 자산가라면 이야기가 다르다”며 “큰손이 세금 부담을 느끼고 한국 증시를 떠난다면 우리 자본시장의 경쟁력은 더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전준범 기자(bbeom@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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