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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9 (월)

이슈 고령사회로 접어든 대한민국

"내년부터 초고령사회, 더 심각한 의정갈등 올 것... 사회적 대타협 기구 설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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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점에 선 K의료: ④의정, 갈등 끝내고 관계 재정립을]
조승연 원장: 의정 일대일 대화 상설협의체는 금물
윤종률 교수: 의료정책 둘러싼 복잡한 갈등 대비해야
신손문 교수: 인구학·통계학·사회학 전문가도 참여를

편집자주

정부가 필수의료 정책패키지와 의대 증원을 발표하며 의료개혁 기치를 올린 지 6개월. 의대 정원이 내년부터 대폭 늘어나 의사 인력 부족 해소의 전기가 마련됐지만, 전공의와 의대생의 이탈로 촉발된 의료공백은 의료체계를 보다 지속가능하도록 개혁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국내외 의료현장 취재와 전문가 자문을 통해 의료개혁 성공 조건과 보완 과제를 점검한다.
한국일보

의정 갈등이 길어지면서 환자들의 불안과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 의료정책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막기 위해 사회적 대타협 기구를 만들자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지난달 18일 서울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와 보호자가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뉴스1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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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의약분업, 2014년 원격의료 도입, 2020년 의대 입학정원 확대 등 정부가 의사계 이해가 걸린 의료개혁 정책을 추진할 때마다 의사들은 여지없이 집단행동으로 저지에 나섰다. 의정 극한갈등은 4년 만에 정부가 의대 증원 재추진에 나선 올해도 반복되고 있다. 벌써 5개월 넘게 이어지고 있는 의료 공백 상황을 양측이 대화로 풀 수 있을 거란 기대는 희박해진 가운데, 의료계에선 응급환자 연쇄 사망이나 대형병원 줄도산 급의 비상 상황이 일어나지 않는 한 사태가 해결되지 않을 거란 극단적 비관론까지 제기된다.

한국일보 자문에 응한 전문가들은 거듭된 의정 갈등의 원인으로 '대화와 소통 부재'를 지적했다. 양측이 상호 신뢰 속에 의료정책을 논의하고 조율할 수 있는 제도적·사회문화적 환경이 갖춰지지 않은 탓에, 정부가 정책을 발표하면 의사는 결사 반대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와 국민이 입는 상황이 관습처럼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제시한 대안은 사회적 대타협 기구다. 의료정책에 있어 의사들이 지닌 전문성을 존중하되, 다양한 이해당사자와 전문가 그룹이 함께 참여한 바탕에서 중지를 모아야 실효성과 정당성을 갖춘 승복 가능한 정책을 도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늦긴 했지만 더 이상의 소모적 갈등을 막으려면 속히 기구를 설치해 범국가적 대화를 진행해야 한다는 데에도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를 냈다.

"의정만 참여 안돼… 범국가적 대타협 기구 만들자"

한국일보

의정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들이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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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연 인천의료원장은 "정부와 의료계, 환자, 시민사회, 정치권을 아우르는 사회적 대타협 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의료정책 당사자들이 범국가적 대화기구에 두루 참여해 해당 정책이 의료 현장과 당사자 권익에 미칠 영향을 꼼꼼히 따져 보자는 것이다. 조 원장은 "대타협 기구라고 해서 꼭 거창하게 시작할 필요는 없다"면서 "정부가 의료정책을 검토할 때 여러 집단이 참여하는 자문위원회나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한 뒤 조직과 기능을 키우면 된다"고 제안했다.

조 원장은 다만 정부와 의사단체가 일대일로 대화하는 형태의 '의정 상설 협의체'에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자칫 의사단체가 입맛에 맞지 않는 의료정책은 걸러내는 게이트키퍼(문지기) 노릇을 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조 원장은 "의정 상설 협의체가 만들어질 경우 의사들에게 허락을 받아야만 의료정책이 시행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며 "대타협 기구 안에 정부와 의사단체가 대화하는 소위원회를 만드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초고령사회 의료갈등, 대타협 기구로 막자"

한국일보

내년부터 초고령사회 진입이 예상되면서 다양한 의료갈등이 새롭게 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사회적 대타협기구를 설치해 초고령사회에서 발생하는 의료갈등을 해결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달 11일 오후 경기 수원시의 한 공원에서 어르신이 걸어가는 모습. 뉴스1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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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으로 확실시되는 초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율 20% 이상) 진입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사회적 대타협 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노인 인구가 증가하면 필연적으로 의료정책에 큰 변화를 가해야 하는 만큼 대화 창구를 미리 마련해 두자는 것이다.

노인의학계 원로인 윤종률 한림대 명예교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면 한 번도 예상치 못했던 의료 문제들이 폭발할 수 있다"며 "다양한 시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타협 기구를 당장 설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교수는 노인 인구 증가, 1인 가구 확대 등 사회구조가 변하면서 의료정책을 둘러싼 갈등 구조도 복잡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지금까지는 주로 정부와 의사계를 중심으로 갈등이 빚어졌지만, 앞으로는 의사 내부 갈등, 의사와 간호사 갈등, 의사와 환자 갈등이 복합적으로 터져 나올 수 있다는 통찰이다. 특히 노인 환자를 전문으로 다루는 노인병 전문의 도입, 의사가 환자를 직접 찾아가는 방문진료 확대, 외국인 의사·간병인 확대 문제 등을 극심한 갈등이 예상되는 포인트로 짚었다. 윤 교수는 "당장 눈앞에 놓인 갈등 해결도 중요하지만 10년, 20년 뒤를 내다보는 의료정책 논의가 중요하다"면서 "사회적 대타협 기구가 있어야 장기 의제를 함께 논의하며 갈등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통계학자·인구학자·사회학자 참여시키자"

한국일보

의정 갈등을 막을 사회적 대타협 기구에 인구학자, 통계학자 등을 참여시켜 객관적 데이터를 산출하자는 의견도 있다. 객관적 데이터를 토대로 의료정책을 논의해야 불필요한 갈등을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지난달 18일 오후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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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대타협 기구에 인구학자, 통계학자, 사회학자를 참여시키자는 제안도 나왔다. 기존 의료정책 협의기구는 정부, 의료계, 시민단체가 주축이었지만 여기에 정책 환경 제반을 분석할 전문가 그룹이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손문 인제대 부산백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사회적 대타협 기구의 성공 여부는 얼마나 객관적인 자료와 데이터를 만들어내는지에 달려 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신 교수는 의료정책 논의 과정을 두 단계로 상정했다. 1단계는 기초데이터 수립, 2단계는 정책 논의 과정이다.

기초데이터 수립은 논의 참여자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근거 자료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예컨대 의대 정원 문제를 논의한다면 의사와 정부, 인구학자, 통계학자 등이 참여해 현재 의사 수는 적절한지, 의대 정원이 늘었을 때 교육 환경이나 의료 현장에서 어떤 변화가 있을지 등을 객관적으로 분석한다. 이 과정에서 인구학자는 우리 사회의 인구 구조 변화 양상과 예상되는 문제점을 조언하고, 통계학자는 도출된 통계자료가 충분히 과학적이고 객관적인지를 검수한다. 의정 갈등 때마다 의사계가 "정책의 객관적 근거가 없다"고 불만을 토로한 점을 감안해 봐도, 객관적 데이터 산출이 갈등 완화의 필수적 절차가 돼야 한다고 신 교수는 지적했다.

정책 논의 과정에는 환자단체와 시민단체, 의사단체, 정부, 정치권 등 다양한 구성원들이 참여해 앞서 도출된 근거 자료를 바탕으로 정책 방향과 구체적 시행 방안을 논의한다. 신 교수는 "의료정책은 환자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정권 입맛에 따라 고무줄처럼 움직여선 안 된다"며 "전문가들이 기초데이터를 과학적으로 계산한 뒤 사회구성원 의견을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주용 기자 juy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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