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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9 (월)

"유도만 잘했던 나라였는데…" 일본은 어떻게 올림픽 1위가 됐나[파리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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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전 유도만 금메달 日

어떻게 올림픽 금메달 1위국 됐나

'부카츠' 불리는 동아리 문화

인구감소는 스포츠 강국 위협하는 변수

"30년 전 애틀랜타 올림픽을 취재했을 때만 해도, 일본은 앞으로도 유도에서만 금메달을 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31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편집위원 칼럼에서 일본이 2024년 파리올림픽 금메달 순위 1위국이 된데 대해 이같이 표현했다. 유도 종목에서 금메달 3개가 전부였던 30년 전과 비교하면 현재 성적은 괄목할만한 성과다. 이날 오후 3시 기준 일본은 금메달 7개, 은메달 2개, 동메달 4개로 가장 많은 금메달을 딴 국가가 됐다. 메달 개수로는 금메달 4개, 은메달 11개, 동메달 11개를 딴 미국이 26개로 1위다.

결과는 언제든 뒤집힐 수 있지만, 초반 흥행에 일본도 들뜬 분위기다. 언론도 이런 성장과 관련해 다양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그중에서도 '부카츠(部活·부 활동)'로 불리는 동아리 활성화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학창 시절 취미로 운동을 시작할 계기가 있었기 때문에 올림픽 메달리스트 배출도 빨리 이뤄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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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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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케이는 해당 칼럼에서 일본의 올림픽 성적이 좋은 이유와 관련해 "3년 전 2020 도쿄 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 펼쳤던 국가의 지원, 즉 세금 투입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2020 도쿄 올림픽 대책에 "일본 대표 선수의 메달 획득을 위해 선수 강화 활동을 지원하는 동시에 장래 유망한 선수를 발굴·육성한다"면서 트레이닝 센터 확충, 스포츠 참여 인구의 확대 등을 약속한 바 있다.
동아리로 시작해 올림픽으로…생활체육 보편화
학생들의 활발한 동아리 체육 활동도 올림픽 순위를 끌어올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일본에서는 학교마다 야구, 축구 등은 기본이고 카누, 체조 등 특화된 스포츠 동아리를 가진 곳도 많다. 닛케이는 과거 칼럼에서 "일본은 학교에서 스포츠를 하는 게 당연한 나라"라고도 언급한 바 있다. 요미우리신문도 "중학생의 70%, 고등학생의 50%는 동아리 중 운동부에 소속돼있다"며 "올림픽 출전 선수 중에서도 동아리 활동 경험자가 많다. 동아리와 올림픽에는 깊은 관계가 있다"고 분석했다. 재능 있는 소수의 학생만 뽑아 선수로 양성하는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일본 동아리 활동은 1886년 도쿄대의 전신 제국대에서 학생들이 설립한 '제국대 운동회'가 시초다. 일본에서는 검도 등 심신을 단련하는 무술이나 무도가 인기 있는 운동 종목이었는데, 개화와 함께 선교사들이 스포츠를 전파하면서 학생들이 다양한 운동을 받아들이게 됐다.

심지어 1912년 일본 최초로 올림픽에 출전한 가나쿠리 시조도 동아리 활동으로 마라톤에 입문한 경우다. 가나쿠리는 '일본 마라톤의 아버지'로 불리는데, 출전 당시 쓰쿠바대학교의 전신 도쿄고등사범학교 지리학과 소속으로 스포츠와는 무관한 전공생이었다. 도쿄고등사범학교는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수영대회, 장거리 달리기 대회를 열 정도로 스포츠 참여 기회 확대에 힘을 쏟고 있었고, 가나쿠리는 이를 통해 재능을 발견하고 올림픽 출전 기회를 얻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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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누 슬라럼에 출전한 유키 다나카 선수. (사진출처=N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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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학생들이 동아리 활동에 임하는 자세도 진지하다. 일단 가입하면 1년 내내 방과 후나 휴일에도 교사의 지도 아래 활동을 해야 한다. 교사 중에서 해당 스포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담당 코치가 된다. 학생들은 주말 연습은 물론이고 방학 전지훈련과 합숙도 불사한다. 특히 야구부의 경우 교사가 학창 시절 야구부 출신이거나 선수를 꿈꿨던 '재야의 고수들'이었던 사례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처럼 일본에서는 교사들이 동아리 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구조다 보니, 때로는 동아리 활동이 '교사들을 착취하는 행위'로 여겨지고 있다. 이에 문부과학성이 동아리 담당을 외부 강사와 위탁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표명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동아리 문화는 현재도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올림픽에서 주목받은 신규 종목은 새 동아리 활동으로 발전한다. 2020 도쿄올림픽에서 처음 채택된 스케이트보드의 경우 일본 선수들이 우수한 성적을 내자 학교들이 앞다퉈 동아리 활동으로 채택했다. 니가타현 가이시국제고등학교는 기존 스노보드부의 강점을 살려 도쿄올림픽 이후 스케이트보드부를 신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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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스케이트보드 스트리트 부문에서 금메달을 딴 요시자와 코코 선수(14). (사진출처=N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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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으면 초·중·고등학교 생활을 하는 동안 한 스포츠에 10년 이상 몰두하게 될 수도 있다. 가령 1949년부터 현 내에 빙상장이 있던 군마현의 경우 올림픽에 출전한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중 군마현의 초·중·고교에서 빙상부 소속으로 활동한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렇다 보니 동아리가 운동 노하우를 후대에 전수하는 장이 되기도 한다. 오사카시 세이후 중·고등학교는 지금까지 15명의 체조선수를 올림픽에 내보낸 '체조 명문'이다. 선배 중에 올림픽 선수가 나오면 학교에 방문해 후배들과 만남의 장을 갖고, 이를 통해 후배들도 자극을 받아 좋은 성적을 내게 된다는 것이다.

나카자와 아쓰시 와세다대 교수는 "미국 등 다른 나라는 스포츠를 학교 밖에서 배우는 것이 일반적으로, 이는 가정 경제 상황에 영향을 받기 쉽다"며 "일본은 입문이 쉽고, 이것이 학교에서 학생을 지도하는 방법과도 연결돼 '동아리 문화'로 부를 수 있는 정도가 됐다"고 요미우리에 전했다.
인구급감은 변수…"야구팀 만들 사람도 없다"
다만 변수는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감소다. 산케이신문은 "일본에서 앞으로도 수많은 메달리스트를 배출할 수 있을지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도 보도했다.

일본 스포츠청이 2019년 3월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48년께 중학교 운동부 소속 학생 수는 역대 최다였던 2009년 대비 36.7%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민간단체 사사가와스포츠재단도 야구를 주 1회 이상 실시하는 10대 인구는 2001년 117만명이었으나, 2021년은 65만명으로 반토막 났다는데 우려를 표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야구, 축구 등 단체 구기 종목의 경우 학교 단위로 팀을 짜기조차 어려워진다. 이미 학교 연합팀으로 경기에 출전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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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고교야구대회 꽃으로 불리는 여름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고시엔) 구장 전경.(사진출처=N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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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인기종목의 경우 타격은 더욱 크다. 일본중학교체육연맹은 1979년부터 주최한 전국중학교체육대회와 관련, 2027년 이후 경기 종목 19개 중 9개 종목을 폐지할 전망이다. 폐지가 결정된 종목들은 동아리 활동으로 쉽게 접하기 어려운 것들로 스모, 스케이트, 아이스하키, 핸드볼, 리듬체조 등이 대표적이다. 핸드볼 동아리가 전국 중학교 동아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남자 7%, 여자 6%에 불과하다. 이에 일본핸드볼연맹 사무국장은 "단 한명의 슈퍼스타로 핸드볼계의 위상은 충분히 바뀔 수 있다"고 언론에 호소하기도 했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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