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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9 (월)

폐업 위기 카페, 죽어가던 '길냥이' 살리자 기적처럼…[인류애 충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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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문 닫을 위기에서도, 친해진 길냥이 살리려 세차장 알바까지
구내염, 오소리 공격으로 두 번 죽을뻔한 고양이 수술비 300만원 들여 살려
"돈쭐내주자" 감복한 손님들 덕분에 되살아나, 택배 주문만 2000여 건

[편집자주] 세상도 사람도 다 싫어지는 날이 있습니다. 그래도 어떤 날은 소소한 무언가에 위로받지요. 구석구석 숨은 온기를 길어내려 합니다. 좋은 일들도 여전하다고 말이지요. '인류애 충전소'에 잘 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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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내염이 심했던 동네 길고양이 '검고'. 몇 달간 정을 주고 받았단 이유로 이를 모른척하지 않고 힘든 재정 상황에서도 치료해준 선한 이들. 함께 산다는 건 그런 것./사진=백종우씨 부부 제공/AFPBBNews=뉴스1/AFPBBNews=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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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조보람 작가(@pencil_no.9)


지난해 12월 강원도 속초에서의 추운 겨울날. 백종우씨 부부가 하는 코코넛그루브 카페 앞. 거기서 모든 연(緣)이 시작되었다.

까만데 하얀 양말을 신은 듯한 동네 길고양이였다. 생존을 위한 많은 게 소멸하는 데다 마실 물마저 꽁꽁 얼어붙는 계절.

사람을 좋아해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고양이에게 종우씨 부부도 맘을 열었다. 체온이 서로 닿는 순간만큼은 따뜻했다. 그리 친해지고 있었다. 동네를 나란히 걷고, 자그마한 머리와 동그란 배를 쓰다듬어 주기도 하며. 밭일할 때면 곁에 가만히 앉아주던 친절한 고양이.

밭일을 할 때면 가만히 곁에 다가왔었던 작고 까만 고양이, '검고'. 사람을 무척 좋아했다. /사진=백종우씨 부부 제공검은 빛깔 고양이라 단순히 '검고'라 불렀다. 실은 동네 고양이를 다 그리 이름 지어 주었다. 회색 고양이면 회고, 그런 식으로. "검고야, 검고야." 익명이었던 생명은 세상에 하나뿐인 의미가 되어갔다.

몇 달이 흐른 뒤 알게 되었다. 검고가 아프단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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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 사는 길고양이는 바이러스에 노출되기 더 쉽고, 구내염에 자주 걸린다. 치료비는 150만원에 달하고, 아픔으로 먹지 못한 채 서서히 고통 받다 죽기까지 한다./사진=백종우씨 부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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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내염'이었다. 바이러스가 원인인데 걸리면 입안이 다 헐어버린다. 그러니 침을 질질 흘리고, 아파서 잘 먹지도 못하고, 심하면 종양이 생겨 피까지 흘리게 된다. 극심한 통증을 견디며 서서히 말라가는 잔인한 병. 그러다 생명까지 앗아갈 확률이 높았다.

나이 들어 죽는 것마저 사치인 길 위의 삶이 그랬다. 검고는 죽어가고 있었다.


폐업 고민하던 때에…치료비가 150만원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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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을 쬐고 있는 동네 고양이 '검고'./사진=백종우씨 부부 제공


그 무렵 종우씨의 카페도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한때는 손님이 몰리기도 했으나, 불경기가 불청객처럼 들이닥쳤다. 손님은 줄었는데 속초에서만 카페 수는 세 배가 늘었다. 수익이 뚝뚝 떨어졌다. 심할 땐 월 매출이 350만원밖에 안 돼 적자까지 봤다.

'검고를 치료해줘야 하는데', 생각하던 그때 경제 상황이 그랬다. 카페 폐업까지 고심하던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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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내염 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한 '검고'. /사진=백종우씨 부부 제공


검고를 동물병원에 데려가 검사한 뒤, 치료비가 얼마인지 물었다. 구내염 치료는 통상 치아를 뽑아야 해서, 비용이 많이 든 편. 수의사가 대답했다.

"150만원 정도 나올 거예요. 치료하시겠어요?"

배는 하얬었구나. 뒹굴뒹굴하는 '검고'./사진=백종우씨 부부 제공카페가 잘 됐다면 당일 치료해줬을 거라던 종우씨. 꺼져가는 생을 앞두고 고민하는 스스로를 보며, 그마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만큼 힘들었으므로 자연스러운 거였다.


"남는 장사잖아요, 서너 달 알바하면 살릴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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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는 폐업 위기. 비싼 검고 수술비를 감당하려 세차장 야간 알바까지 한 종우씨. 누구도 하기 어려운 선택이었을 거다./사진=백종우씨 부부 제공


고민 끝에 종우씨가 선택한 건 '세차장 야간 알바'였다.

검고와 친해진 지 몇 달째. 정들었는데 볼 때마다 너무 짠했다. 밥 먹는 걸 그리 좋아하던 애가 아파서 밥을 먹지 못하고. 보드라운 습식 사료를 챙겨주어도 그마저 이빨에 닿을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다. 그만큼 아픈 거였다.

통통했던 검고가 바짝 말라가는 걸 보며 종우씨는 더 일하기로 결심했다. 카페에서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일하고, 퇴근해서 다시 밤 10시까지 세차장에서 일했단다.

절박한 상황에서 외면하는 게 어쩌면 더 쉬웠을 텐데, 조금 더 고생하며 검고를 살리려던 이유를 물었다. 종우씨가 이리 답했다.

"남는 장사잖아요. 제가 서너 달만 알바하면, 검고를 살릴 수 있으니까요."

서너 달의 고생과 생명의 가치를 놓고 봤을 때, 당연히 후자가 더 귀하기에 그리 결정했단 말. '남는 장사'란 표현이 이리 안온하게 들릴 수도 있단 걸 첨 알았다.


구내염 치료해줬는데…20cm 큰 상처 입고 나타난 '검고'

구내염 수술을 잘 마친 뒤 얼굴을 부비는 검고. 병에 자주 걸리고, 먹을 게 없어 헤매다 로드킬당하고. 인간 위주 세상에서 고단하게 살아가는 길냥이의 생은 길어야 2~3년. 누군가의 따뜻한 마음으로 더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다./사진=백종우씨 부부 제공카페 일을 하고 늦은 밤까지 세차장 일을 하는 건 쉽지 않았다. 힘듦을 견뎌 월급을 받고, 그 길로 수술비 150만원을 감당하며 구내염을 치료해주었다.

두 달의 휴식 끝에 검고는 건강해져 다시 밥도 잘 먹었다. 그걸로 이제 괜찮은 줄 알았다. 지난 6월 말 평범한 낮에, 검고가 크게 다친 채 나타났다. 놀란 종우씨가 급히 병원에 데려갔다.

"다리에 한 20cm 상처가 났더라고요. 작은 몸에 상처만 수십 개였고요. 오소리나 다른 길냥이 공격으로 추정됐어요. 병원에선 상처가 커서, 과호흡이 올 수 있다고 했습니다. 치료 중에도 괴사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떻게든 살려야겠단 생각이 들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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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이 끝난줄 알았건만, 검고는 지난달 다리가 찢어진 채 카페 앞에 나타났다. 그 아픈 몸으로 카페 입구까지 애써 왔다. 자신이 믿는 존재들에게로./사진=백종우씨 부부 제공


보통 큰 상처를 입으면 길고양이들은 숨는다고 하던데. 검고는 그 아픈 몸으로 카페 입구까지 왔다.

치료비가 또 문제였다. 병원 측에서 예상한 비용만 300만원. 아직 구내염 치료비도 할부로 갚는 상황이라, 종우씨는 금액이 크게 느껴졌다. 어떡하겠냐는 말에 종우씨 부부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치료해주세요."

비용이 검고의 치료를 포기할 이유는 되지 않았다. '살려만 주면 좋겠다, 살아줬으면' 하고 마음으로 바라고 또 바랐다.


답답한 마음에 '영상' 올리자, 전국서 택배 주문 쏟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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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검고가 '보은' 하듯, 폐업까지 고민한 카페에 택배 주문이 밀려들었다. 따뜻함이 귀해진 세상에서, 진정 이를 보여준 이들에 대한 작은 마음들이 모인 것. 기적이라 불리는 것들은 대개 그리 시작된다./사진=백종우씨 부부 제공


그럼에도 치료비는 여전히 걱정이었다. 종우씨가 카페 일과 세차장 알바를 계속하고 있었음에도.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마치 검고가 '보은' 하기라도 하듯.

답답한 맘에 종우씨 부부가 SNS에 영상을 올렸는데, 좋아요가 2만6000건, 조회 수가 84만을 넘겼다. 사람들의 응원이 쏟아졌다. 사장님 부부가 아녔다면 검고는 고양이별로 이미 떠났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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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인스타그램에 달린 댓글들./사진=백종우씨 부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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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전국에서 택배 주문이 쏟아졌다. 카페 디저트인 '휘낭시에'를 사겠다며. 선행을 베푼 마음에 돈쭐로 보답하는 이들이었다. 종우씨가 말했다.

"댓글에 누가 '택배 판매'도 하신다고 얘기하신 거예요. 그걸 보고 5일 만에 택배 주문이 엄청나게 들어왔어요. 2000여 건 정도 들어왔습니다. 검고와 영상을 봐주신 분들 덕분에요."

병원에서도 검고 병원비를 대폭 할인해주었다. 2주 치료를 예상했던 검고는 일주일 만에 다행히 건강해져 퇴원했다. 수술비는 150만원 정도 나왔다.


"검고 보러 왔어요"…폐업 위기 카페도 활력 되찾아

종우씨가 가장 좋아한다는 사진. 밭을 신나게 달려가는 검고./사진=백종우씨 부부 제공손님이 없어 늘 고민하던 카페도 활력을 되찾았다.

종우씨 부부는 '검고' 이름으로 라떼를 만들었다. 수익금 중 1000원은 아픈 길고양이들을 위해 기부하겠다고 했다. 이 모든 게 검고가 만들어낸 기적 같은 온기였다.

"1000원으로 되겠느냐고 결제한 금액 1만3000원을 똑같이 더 결제하고 기부하시는 분도 있고요. 손님들께서 보통 '잘 먹었습니다' 하고 반납하고 가시거든요. 근데 좋은 일 한다고 악수하고 가시는 분도 있고, 트레이에 1만원을 꽂아 놓고 가시는 분도 있는 거예요. 보태서 기부하라고 하시는 거지요."

추르를 냠냠, 맛있게 먹는 검고./사진=백종우씨 부부 제공카페 입구에서 '영업 부장' 역할을 톡톡히 하던 검고는, 이제 '기부 부장' 승진을 앞두고 있었다.

외출했다가 공격을 받았었기에, 검고를 위한 공간을 아예 마련했다. 다만 검고를 보고 "카페에 고양이가 있다"며 민원을 넣은 이가 있어, 시청과 보건소와 상담한 끝에 합법적으로 검고를 위한 공간을 마련했다. 테이블을 줄여 '검고의 방'을 만들어준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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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고는 이제 안온한 방도 생겼다. 오래 아프지 말고 안녕한 날들이 이어지기를. /사진=백종우씨 부부 제공


사람 좋은 종우씨 부부가 이리 다짐했다.

"처음엔 검고가 다쳐서 안타까웠지만, 지금은 좋은 일들이 돌고 돌아 더 좋아지는 것 같아 너무 좋아요. 한 달 전까지 폐업을 고민했는데, 지금은 바빠서 언제 쉴 수 있나 행복한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검고와 손님들에게 더 잘할게요. 정말 많이 고맙습니다."

작은 존재를 돌보는 일. 그게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단 것에서 희망을 본다. 세상이 망할 것처럼 씁쓸할지라도, 그런 온기가 있기에 여전히 나아갈 수 있으며 괜찮을 거라고./사진=백종우씨 부부 제공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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