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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8 (일)

출산 두달전 이모가 죽었다…슬픔 속 태어난 아픈 아이, 들풀 속에서 키워낸 엄마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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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신생아가 엄마 손을 잡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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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풀이 무성한 정원에 서서 시인은 말한다. “때로 우리는 부서진 덕분에 살아갈 수도 있다”고. 영국의 시인인 저자는 회복력을 상징하는 데이지, 외로움을 물리치는 붉은장구채, 희망을 안겨주는 보리지 등 작은 들풀들로 가득한 ‘야생 정원’을 가꾸며 삶의 아픔을 치유해왔다. 이 책은 그 10년의 지난 날을 회고한 에세이다.

저자가 들풀을 심기 시작한 건 사고로 친언니를 잃은 뒤다. 어렵사리 마흔 살 가까운 나이에 임신해 새 생명을 맞이하기 불과 70여일 전, 언니의 사망 사고 소식을 들었다. 깊은 슬픔에 빠진 이후 아이가 태어났지만, 아이는 제1형 당뇨 진단을 받는다. 혈당 조절능력을 영구히 상실해 늘 간병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다. 저자는 아픈 아이를 전전긍긍 돌보며,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실의 고통을 견디며, 가난한 예술가로서 생계와 싸우며 이어 나가야 했다. 그는 “내가 상상했던 미래는 이렇지 않았다”는 그의 문장에선 처절함이 배어 나온다.

그때 그는 씨앗을 뿌렸다. 잉글랜드의 한 시골 마을 공공주택의 작은 땅은 석공장 터에 지어져 돌무더기와 철근, 석면이 가득하다. 저자는 음식물 찌꺼기로 만든 퇴비, 지렁이를 풀어 땅을 다졌다. 비싼 모종을 살 돈이 없으니 길에 아무렇게나 핀 들풀에서 씨앗을 모았다. 대체로 작고 쓸모없게 여겨지는 잡초에서 비롯됐지만, 저자는 이 정원에서 난 것들로 식탁을 채우고, 약을 짓거나 차를 우려먹기도 하면서 자신을 구원한다. 또 아픈 아이를 돌보며, 그를 지지해준 여성들을 생각하며 ‘모성’의 의미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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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다룬 들풀은 90종이 넘는다. 일단 저자의 기억 퍼즐을 모아놓듯 짧은 분량으로 쓴 90개의 글에 식물 하나씩 언급했다. 삽화, 학명, 소개글, 관련 격언·전설 등 소소한 이야기를 함께 소개했다. 예를 들어 언니의 사고 소식을 전화로 전해 들었던 그날의 새벽 세 시를 돌이켜본 글에는 ‘가시자두나무’가 다뤄졌다. 가시자두는 전쟁, 부상, 죽음 등을 상징한다. 시간이 흘러 고통이 잦아들고 희망이 싹틔울 땐 레몬밤, 짚신나물, 쇠뜨기, 전호 등의 식물을 언급한다. 또 들풀이 지난 약초로서의 효력, 주술적 의미 등도 다룬다. ‘고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집 주변에 해바라기를 심는다’거나 ‘말린 큰메꽃 부적을 지니면 부정적 기운이 상쇄된다’는 식이다.

저자가 펴낸 첫 책으로, 2024년 영국 노틸러스 도서상 회고록 부문 은상을 받았다. 영국 예술위원회 산하 작가 지원 단체인 뉴라이팅노스에서 수여하는 노던데뷔상, 노던프로미스상 등도 수상했다. 한국어판에는 조아나 작가가 그린 생생하고 아기자기한 식물 세밀화가 더해져 책장 넘기는 재미를 배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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