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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9 (목)

나라는 없지만 ‘나’라도 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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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사연 있는 난민팀 37명

조선일보

23일(현지시각) 파리 생드니에 위치한 2024 파리 올림픽 선수촌 내 난민선수단 숙소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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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땀을 흘리는 유도 선수 6명. 보통은 고된 훈련 사이 잠시 쉬는 시간이 되면 장판에 누워 숨을 돌리기 바쁘다. 그런데 이들은 쉬는 시간에도 즐거움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 큰 소리로 웃었다. 누워서 끌어안는 등 천진난만한 장난도 쳤다. 자유를 누리는 기쁨이었다. 지난 24일 프랑스 생드니에 있는 오귀스트 딜론 라라켓 유도 훈련장에서 만난 이들은 파리 올림픽 ‘난민 선수단(EOR·Equipe Olympique des Réfugiés)’이다. 아프가니스탄 청소년 국가대표 출신인 남자 유도 81kg 이하급 아랍 시브가툴라(23)는 “얼마나 행복한지 표현하기 어렵다”고 했다.

난민 선수단의 시작은 2016년 리우 올림픽이었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서 인정한 난민 선수 가운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집행부가 선정한다. 리우 올림픽 때는 10명뿐이었으나 2020 도쿄 올림픽에서 29명으로 늘었고, 이번 대회는 37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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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2024 파리 올림픽에 참가하는 '올림픽 난민팀' 37명 사진을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내전과 정치적 탄압 등을 피해 나라를 잃었지만, 힘겹게 올림픽에 참가한 이들을 IOC는 "전 세계 난민 1억2000만명을 대표하는 선수들"이라고 소개했다. /IOC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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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명에겐 저마다 사연이 있다. 내전이나 박해 등으로 조국을 떠나야 했지만 꿈을 잃지 않은 이들이다. 남자 유도 100kg 이하급 아드난 칸칸(30)은 시리아에서 착실히 국가대표 꿈을 키우던 2011년, 시리아 내전과 함께 삶이 바뀌었다. 2013년엔 아침을 함께 먹은 가장 친한 친구가 2시간 뒤 폭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혼란스러웠습니다. 삶은 당연히 살아지는 것이었는데, 이제는 쟁취해야 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칸칸은 떠나기로 결심했다. 2015년, 걷고 트럭과 버스를 얻어 타면서 한 달을 보낸 끝에 튀르키예 국경을 넘었다. 신분증과 비자 서류가 없어 독일 난민 캠프로 이송됐다. 칸칸은 이곳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는 6개월 동안 아무런 훈련도 하지 못하고 구금돼 있어야 했다. 결국 2016년 난민으로 인정받아 풀려났다. 때는 리우 올림픽을 불과 수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20년 동안 매일 올림픽을 위해 훈련했는데, 난민 캠프에서 나오면서 어슴푸레 느꼈습니다. 몇 달간 여정으로 몸이 엉망이 되어 더는 선수 생활을 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요. 소파에 앉아 TV로 리우 올림픽 경기를 보려 했습니다. 그때마다 눈물이 흘러 TV를 껐다 켜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때 칸칸이 우연히 본 것은 시리아 출신 난민팀 여자 수영 선수 유스라 마르디니의 우아한 역영이었다. “난민팀 존재를 알았을 때 다시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다시 매일 훈련했습니다. 다음 올림픽에 나서겠다는 목표를 하루에 두세 번씩 되새겼습니다.” 칸칸은 코치 없이 홀로 연습했음에도 강력한 동기 덕분에 곧 제 궤도에 오를 수 있었다. 2019년 슬로베니아에서 열린 유러피안컵 7위에 오르면서 다시 국제 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2021년 도쿄 올림픽에서는 난민팀에 선정되지 못했지만, 3년을 더 담금질한 끝에 이번 파리에 나선다. 칸칸은 “전쟁에서 승자는 없다. 각자가 패자일 뿐이다. 난민 여러분은 꿈을 믿기를 멈추지 말고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 열심히 몰두하길 바란다”고 했다.

자유를 꿈꾸면서 고된 길을 걸어온 건 다른 난민팀 동료들도 마찬가지다. 여자 브레이킹 선수 마니자 탈라쉬(22)는 5년 전 소셜미디어에서 아프가니스탄 한 청년이 머리를 땅에 대고 ‘헤드 스핀’ 하는 영상을 보게 됐다. 그 길로 카불에 있는 댄스팀에 가입해 꿈을 키워나갔다. 하지만 탈라쉬가 태어난 곳은 여자라는 이유로 초등 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히잡을 쓰지 않으면 체포되는 아프가니스탄. 2021년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면서 여권(女權)이 더 약해지자 탈라쉬는 산을 넘어 파키스탄으로 탈출한 뒤 이듬해 스페인으로 망명했다. 그의 사연을 들은 IOC가 이번 대회 난민팀에 불렀다. 탈라쉬는 “꿈을 이루기 위해 무언가 하고 싶다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야 한다. 그 순간이 떠나야 할 때”라고 했다.

아프가니스탄 출신 남자 태권도 선수 파르자드 만수리(22)도 탈레반 집권 직후 카불 국제공항으로 가서 미군 수송기를 타고 아랍에미리트(UAE)로 떠났다. 그가 착륙한 시각에 카불 공항에선 자살 폭탄 테러가 벌어졌다. 삶과 죽음이 몇 시간 만에 갈렸다. 만수리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지 하는 생각뿐이었다”고 했다. 도쿄 대회 때는 아프가니스탄 기수였던 만수리는 이번 대회 난민팀 기수로 나선다. 그는 “아직 난민 올림픽 선수단에서 메달이 나오지 않았다. 첫 메달리스트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난민팀 선수들은 코치 없이 혼자 훈련하거나 다른 난민 출신이 현역에서 은퇴한 뒤 코치를 맡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훈련을 이어간다. 다른 팀에서 자원봉사 코치가 와주는 일도 있다.

IOC 산하 올림픽 난민 재단 조조 페리스 대표는 “난민팀은 그 자체로도 의미 있지만 전 세계 난민 1억2000만명을 상징하는 역할”이라고 했다. 칸칸은 “난민팀은 언어, 민족, 문화가 전부 다르지만 함께라서 즐겁다. 전 세계도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생드니=이영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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