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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8 (일)

단추가 필요한 시간, 단추를 주려고 [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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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수옥
박소란 지음 l 창비(2024)



박소란 시인의 시를 읽은 다음부터 단추를 유심히 살피게 되었다. 단추, 그것은 무언가를 감싸기 위해 혹은 내밀한 무언가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수호하기 위해, 조각조각 이뤄진 천과 천 사이를 잇는 것. 또는 어떤 구멍은 고독하게 남겨지지 않고 다른 무언가와 연결되어 메워짐을 일러주는 것. 단추의 역할에 대해 떠올리다 보면, 단추는 마치 삶이 이어지기 위해 필요한 관계에 대한 은유와 같이 여겨진다. 상처 입고 헤집어진 마음에 단추를 달 수 있다면, 그 마음을 달래줄 누군가가 있다면 잘 여며지겠지, 덧나지 않겠지, 나아질 수 있겠지.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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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단추는 언제나 누군가에 의해 옷이나 이불, 가방 등의 직물에 심어지거나 떼어지는 것, 섬세한 작업을 거쳐 저의 자리를 찾는 것. 시 ‘재생’에서 시인은 헌 옷을 버리기 전 거기에 달린 단추를 하나하나 떼어 작은 상자에 모아두는 사람을 떠올린다. 그이는 단추에 난 구멍을 가리키며 “꼭 누구누구 얼굴 같”다고 여기던 사람, 수집하는 그것의 소중함을 일찍이 알아보고 매우 작은 크기라 할지라도 그것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던 사람. 시는 이처럼 ‘나’ 자신에게 삶을 어떤 자세로 꾸려가야 하는지를 몸소 일러주었던 사람에 대한 기억이란 쉽게 버리지도, 억지로 잊어버릴 수도 없다고 말한다.



“단추를 모으는 사람이 있다// 헌 옷을 버리기 전/ 단추를 하나하나 떼어 작은 상자에 넣어두는/ 사람// 자세히 보면 좀 징그럽잖아 꼭 누구누구 얼굴 같고, 눈만 댕그랗게 남아서/ 겁이며 원망을 잔뜩 품고서/ 나를 보고 있잖아 이상하게 집요하게// 왜 이런 걸 모아요? 하면/ 글쎄 언젠가 필요할지도 모르니까 하고 답할까// 그러나 사실/ 단추를 모으는 사람은 벌써 죽었다/ 단추가 필요한 시간이란 영영 오지 않을 텐데// 단추는 살아 있다 아직도, 진짜 징그러운// 진짜란 이런 거겠지/ 단추와 단추 사이/ 미처 삭지 못한 한가닥 머리카락을 발견하는 일 한참을 들여다보는 일// 여기 있었구나, 바로 여기// 조그만 비닐에 싸서 너무 깊지도 얕지도 않은 속에 찬찬히 묻어둔다/ 언젠가 필요할지도 모르니까// 또다시, 나는 징그러워지고// 단추가 없는 옷 단추가 없는 가방 단추가 없는 사람, 사람들에게 단추를 하나씩 나눠준다면// 왜 이런 걸 모아요?/ 고개를 갸웃거리겠지 어딘가 께름칙한 듯/ 퀭한 눈을 살피고 서둘러 자리를 뜨겠지// 달랑거리다 툭 떨어져 알 수 없는 방향으로 굴러가는/ 단추, 그 자리 그대로 굴러오는”(‘재생’ 부분)



“단추와 단추 사이” 지금은 사라진 누군가의 “미처 삭지 못한 한가닥 머리카락”이 거기에 그대로 있듯이, ‘내’게 우리 삶에 ‘단추’가 없는 이들을 떠올리게 하고 그이들에게는 단추를 나눠 줄 수 있음을 넌지시 일러주었던 사람에 대한 기억도 여기에 있다. 어떤 그리운 마음은 단추처럼 사소한 크기로, 그러나 벗어날 수 없는 단단함으로 삶을 채우는 것. “진짜란 이런 거”다. 발버둥을 쳐도 사라지지 않는 것, 생활의 태도로 드러나고 마는 것.



그리고 힘을 가진 누군가가 단추를 일컬어 “왜 이런 걸”이라 물으며 고개를 갸웃거릴 때, 슬픔으로 헤집어진 세상 한구석에 단추를 달고 잘 여미는 상상, 거기에 ‘재생’이란 말을 부여하는 상상. “단추가 필요한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가 건넨 “작은 상자”에는 이런 것도 담겨 있다.



양경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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