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08 (일)

“몸값이나 하고 죽겠다” 日에 폭탄 던진 그의 마지막 편지엔 과연 무엇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헤럴드경제

[국립중앙박물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헤럴드경제

폭탄 투척 계획을 김구에게 알리는 편지(1925년 7월 28일). [국립중앙박물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소지품(폭탄)은 준비됐는데, 비용 몇백 원만 아직 완전히 수중에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걸릴 뿐이지 안 될 리는 전혀 없습니다. (…) 선생님, 저는 (국내 일제 기관 폭파를) 확실하게 실행할 계획이니, 이러한 사정을 헤아려 제가 목적을 이룰 때까지 사랑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나석주가 1925년 7월 28일 백범 김구에게 보낸 편지 中-[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99년 전인 1925년 7월, 중국 상하이에 있던 백범 김구(1876~1949)에게 도착한 한 통의 편지. 발신인은 나석주(1892~1926)였다. 이듬해 12월 그는 일제의 수탈 거점이었던 조선식산은행과 동양척식주식회사를 향해 폭탄을 던지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헤럴드경제

나석주.


일제에 항거해 국권 회복에 앞장선 열사 나석주의 편지가 대중에게 첫 공개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제79주년 광복절을 기념해 26일부터 상설전시관 대한제국실에서 ‘독립을 향한 꺼지지 않는 불꽃, 나석주’ 전시를 선보인다.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나석주의 흔적으로 백범 김구에게 쓴 편지 2점, 의열단 동지인 이승춘(본명 이화익·1900~1978)에게 쓴 편지 4점, 황해관(본명 황익수·1887~?)에게 쓴 편지 1점 등 총 7점이다.

편지에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나석주의 의거 준비 과정이 담겼다. 34살이라는 젊은 나이로 생을 마치길 작정한 그의 결연한 각오도 엿볼 수 있다. 황해도 출신인 나석주는 10대 시절 김구와 처음 만나 일생 동안 인연을 이어갔다.

헤럴드경제

의열투쟁의 필요성을 이승춘에게 알리는 편지(1925년 8월 14일, 8월 25일). [국립중앙박물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924년 9월 11일 김구에게 쓴 편지에는 나석주가 의열단원으로서 투쟁을 진행하겠다는 결심을 알리는 내용이 담겨 있다. 편지에서 그는 ‘너무 모든 일에 대해 저희로 인해 걱정하지 마시길’ 바란다고 전한다. 같은 날, 그는 이승춘에게도 의거에 함께 참여하기를 권하는 편지를 써서 김구에게 보내는 편지와 동봉했다.

1925년 8월 25일 이승춘에게 편지에는 폭탄 투척 의거를 구체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내용을 알린다. ‘중국에서 동분서주하다가 무심하게 죽기보다는 차라리 본국에 가서 몸값이나 하고 죽겠다’고 적은 그의 글에서 굳은 의지가 드러난다.

헤럴드경제

데니 태극기. [국립중앙박물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폭탄과 권총을 구했다는 보고, 귀국 배편을 구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 귀국 자금 부족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는 내용 등이 편지에 담겼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태극기이자 보물인 ‘데니 태극기’도 함께 전시된다. 데니 태극기는 고종이 외교고문이었던 미국인 데니(1838~1900)에게 하사한 태극기이다.

전시는 10월 9일까지.

dsun@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All Rights Reserved.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