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08 (일)

"몽클레어 패딩이 교복"…FT, 한국 아동용 명품 소비 주목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4살 딸에 티파니 목걸이, 18개월 딸에 골든구스 신발

韓 아동용 명품 시장서 1인당 지출 5년간 연 5% 성장

저출산·과시욕 등 영향…백화점·명품기업 매장 확대

"할머니도 삼촌·숙모도…온가족 소비 자녀 1명에 집중"

"17세 딸 사치품 집착…소비 감당할 직장 얻을지 걱정"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한국에선 아이들이 몽클레어 패딩을 교복처럼 입는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4일(현지시간) 한국 부모들이 어린 자녀에게 사치품을 사주는 소비 성향에 주목하며 이같이 보도했다. 이어 “서울에서 백화점이 문을 열었을 때 새로운 품목을 가장 먼저 사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서거나 밤을 새는 것을 보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데일리

골든구스 신발.(사진=AFP)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다양한 소비 사례도 소개됐다. 경기도 동탄에 사는 김모씨는 최근 4살 딸을 위해 티파니에서 78만원대 은목걸이를 구입했다. 18개월 된 딸을 위해선 38만원대 골든구스 구두를 샀다. 몽클레어 패딩과 셔츠, 버버리 드레스와 바지, 펜디 가운과 신발 등 다른 명품들도 다수 구매했다. 김씨는 FT에 “아이들이 결혼식, 생일 파티, 음악 콘서트에 갈 때 초라해 보이지 않길 바란다”며 “아이들이 그런 옷이나 신발로 마음 편히 다닐 수 있다면 가격은 상관없다”고 말했다.

FT는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은 한국은 점점 더 부유해지면서 자녀의 사치품에 많은 돈을 쓰는 부모가 늘어나고 있다면서, 전문가 견해를 인용해 낮은 출산율 및 소가족화, 과시욕, 소득 증대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유로모니터의 뷰티·패션 컨설턴트인 리사 홍은 “한국의 출산율은 계속 떨어지고 있지만, 유아 럭셔리 시장은 계속 성장하고 있다. 한국인들이 과시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을 할 수 없으면 참지 못한다. 또 많은 가족이 자녀를 한 명만 두기 때문에 최고급 품목을 선택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는 첫 럭셔리 제품 소비 연령을 낮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찌와 루이비통(LVMH) 등 많은 명품 제조업체들은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지역에서 매출이 현저히 줄어들고 있지만, 한국에선 전망을 밝게 보고 있다. 모건스탠리의 2022년 보고서에 따르면 프라다, 몽클레어, 보테가 베네타, 버버리 등 최고급 명품 브랜드의 글로벌 매출에서 한국은 약 10%를 차지했다.

아울러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1인당 지출 측면에서 한국은 고급 아동복 시장에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3대 시장 중 하나다. 지난 5년 동안 연평균 5% 이상 성장했는데, 중국과 터키 다음으로 높은 수치다.

디올 코리아 전 대표였던 이종규현 에트로코리아 대표는 “한국 사회는 경쟁이 치열하고 사람들은 눈에 띄고 싶어한다. 럭셔리 제품은 이를 위한 좋은 도구가 됐다. 몽클레어 겨울 재킷은 10대 청소년의 교복이 됐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롯데, 신세계, 현대 등 백화점들은 경기침체 및 높은 인플레이션에도 아동용 명품 매장을 여는 데 서두르고 있다. 지난해 아동용 명품 매출이 두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현대와 신세계 백화점의 아동용 명품 매출은 지난해 각각 27%, 15% 증가했다. 롯데백화점은 프리미엄 아동용 품목 매출이 25% 늘었다고 밝혔다.

현대백화점 대변인은 “출산율이 낮아서 부모, 조부모, 삼촌, 숙모의 관심이 한 아이에게만 집중되고 아이에게 사치스럽게 돈을 쓴다. 이러한 추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아동용 고급 매장을 계속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티파니와 로에베는 서울 청담동에 신규 매장 오픈을 준비하고 있다. 스위스의 고급 시계 제조업체인 리차드 밀도 이달 같은 지역에 새롭게 단장한 매장을 열었다. 명품 브랜드들이 BTS, 블랙핑크 등 K팝 스타를 앰버서더로 영입하면서 20~30대 명품 소비가 늘어나고 있어서다. 롯데의 2022년 보고서에 따르면 20대 사치품 구매는 모든 연령대 중에서 가장 강력한 성장을 보였다.

이데일리

명품 브랜드 가격 인상을 하루 앞둔 서울 한 백화점 앞 고객들.(사진=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소비 행태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부모들은 경제적 부담이 커질 수 있고, 가족 간 불화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자녀들이 소비 습관을 유지하기 위해 빚을 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서울 잠실에 거주하는 사업가 엄씨는 “17세 딸이 사치품에 집착한다.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비싼 물건들을 선물로 받았기 때문”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그는 “최근엔 마크 제이콥스와 아식스가 콜라보한 80만원짜리 스니커즈를 생일 선물로 줬다”며 “사치품에 너무 익숙해져 나중에 (스스로) 소비를 감당할 수 있는 직장을 구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국가 경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디자이너 제품에 대한 열풍이 통화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며 “가격 탄력성이 훼손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인들은 특정 브랜드가 인기를 얻으면 집단으로 탐내는 드문 경향”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