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는 2019년 국제표준질병분류(ICD-11)를 통해 게임중독(게임이용장애)을 질병으로 분류했다. 사진은 서울의 한 PC방 내부 모습./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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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보건기구(WHO)는 2019년 국제표준질병분류(ICD-11)를 통해 게임 중독(게임이용장애)을 질병으로 분류했다. 게임이 약물, 알코올과 마찬가지로 병적인 중독에 빠지게 하는 요인이라고 인정한 셈이다. 한국도 이르면 내년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인정할지 여부를 결정한다. 국내 전문가들은 게임 중독이 우울증,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ADHD) 등으로 인한 증상이지 질병은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 17일 통계청은 5년 주기로 개정하는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 제9차 개정을 내년 7월쯤 고시하겠다고 밝혔다. 한국 통계법은 국제표준분류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WHO가 2019년 결정한 것과 마찬가지로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할 가능성이 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제10차 개정으로 반영하는 2030년부터 게임 중독이 질병으로 분류된다.
중독은 유해한 물질에 신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의존해 중단하지 못하고 결국 심신을 해치는 상태를 말한다. 마약이나 알코올, 도박 등이 대표적인 중독 요인이다. 이들 요인에 중독되면 뇌가 쾌락을 느끼게 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을 과잉 분비하면서 해당 신경회로가 활성화된다. 이 때문에 중독 요인을 지속적으로 더 많이 섭취하거나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만약 중독 요인을 갑자기 끊으면 몸에 이상이 오는 금단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국내 중독 전문가인 한덕현 중앙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게임 중독은 마약이나 알코올 중독 같은 질병이 아니다”며 “WHO가 게임을 도박처럼 행위중독 중 하나로 설명하지만 아직 과학적으로 명확한 근거가 없어 질병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WHO에서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한 뒤로도 게임 중독 자체로 병원을 찾는 환자는 없다”며 “우울증이나 ADHD, 자폐스펙트럼장애(자폐증) 등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증상 중 하나로 게임 중독이 발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런 정신과적 질환을 치료하면 게임 중독 역시 나아진다는 설명이다. 한 교수는 “게임을 많이 하는 것 자체로 중독, 병이라 보기는 힘들다”며 “성인들도 상당 시간 동안 스마트폰을 사용하지만 이것을 중독이나 질병으로 생각해 병원을 가지는 않는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영국에서 나왔던 연구 결과를 근거로 들어 게임 역시 알코올이나 마약처럼 병적 중독 요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1998년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퀸스퀘어신경학연구소 연구진은 게임을 할 때도 도파민이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냈다.
하지만 한덕현 교수는 “이 연구 결과만으로 게임 중독을 병이라 보긴 어렵다”며 “게임은 마약처럼 어마어마한 양의 도파민을 분출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도파민 분비가 약간 증가하는 것만으로도 전두엽 기능이 약한 사람은 쉽게 충동에 휩싸이며 통제를 잃어버릴 수 있다”면서도 “공부를 즐겁게 할 때도 약간의 도파민이 늘어나므로, 도파민 증가만으로 병적인 중독이라 보기 힘들다”고 했다.
뇌를 봐도 게임을 많이 한다고 중독됐다고 보기 힘들다. 한 교수팀은 2013년 게임 중독자와 프로게이머에게 14시간 동안 한 게임을 하게 한 뒤 뇌 활동을 비교했다. 그 결과 게임 중독자의 뇌는 선조체에서 도파민 분비가 크게 늘어나지만 전두엽의 기능은 비활성화됐다. 게임 충동은 늘었지만 이를 이성적으로 조절할 능력을 상실한 셈이다. 반면 프로게이머의 뇌는 전두엽 부위도 활성화했다. 한 교수는 “프로게이머들이 마치 운동 경기를 하듯이 전략을 세워 게임을 했기 때문”이라며 “만약 게임 자체가 알코올이나 마약 같은 중독을 일으키는 요인이라면 같은 시간 같은 게임을 진행했을 때 뇌가 동일한 반응을 나타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봉석 인제대 상계백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도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대표적인 행위 중독이 바로 도박인데 게임 중독은 이와 패턴이 다르다”며 “중독이라는 말을 남용한 경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게임 중독 자체로 병원을 찾는 환자보다는 ADHD 때문에 결과적으로 게임에 과도하게 빠지는 환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반면 게임 중독 자체도 정신에 해를 미치므로 질병으로 봐야 한다는 전문가도 있다. 최정석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다른 전문가들과 마찬가지로 “우울증이 심하거나 불안증, 다른 정신과적 질환으로 인해 게임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면서도 “게임 중독 자체는 질병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예전에는 게임을 많이 하는 것에 문제를 느껴 오는 환자가 많았다면 지금은 도박으로 변질된 게임에 빠져 경제적인 손실이 크게 발생해 병원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전문가마다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봐야 하는지 아닌지 의견이 나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우울증이나 ADHD 등 정신과적 질환으로 인해 게임에 과도하게 빠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일상생활을 정상적으로 지낼 수 없을 만큼 게임에 빠져 있다면 전문의와 상담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정아 기자(zzunga@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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